“서해맹산 정신으로”… 충무공 詩 인용하며 다시 등판한 ‘文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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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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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개각]2주만에 복귀한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문재인
 대통령이 9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조국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2017년 대선 직후 초대 민정수석을 지내는 등 
‘문재인의 남자’로 불려 왔다. 사진은 올해 5월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서울 삼청동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문 대통령과 조 전 
수석 등이 걸어서 청와대로 돌아가는 모습. 동아일보DB
문재인 대통령이 9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조국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2017년 대선 직후 초대 민정수석을 지내는 등 ‘문재인의 남자’로 불려 왔다. 사진은 올해 5월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서울 삼청동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문 대통령과 조 전 수석 등이 걸어서 청와대로 돌아가는 모습. 동아일보DB
문재인 대통령이 9일 단행한 개각에서 예상대로 ‘조국 법무부 장관’ 카드를 고수했다. 개각 전부터 야권이 강력하게 조국 후보자의 인선을 반대했지만 문 대통령은 개의치 않았다. 조 후보자의 재기용은 단기적으로 사법 개혁의 완성, 중장기적으로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를 염두에 둔 포석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날 조 후보자에 대해 “검찰 개혁, 법무부 탈검찰화 등 핵심 국정과제를 마무리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질서를 확립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미 문 대통령은 5월 취임 2주년 인터뷰에서 당시 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해 “(권력 기관 개혁을) 법제화하는 과정이 남아 있는데, 그 작업까지 성공적으로 마쳐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사법 개혁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난 지 2주 만에 다시 조 후보자를 공직 무대로 불러들였다.

야권은 “지난달 26일 청와대 수석 인사를 서둘러 단행했던 것도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성토했다. 그러나 조 후보자는 9일 기자들과 만나 “뙤약볕을 가리지 않는 8월 농부의 마음으로 다시 땀 흘릴 기회를 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야권의 비판과 상관없이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조 후보자는 오전 10시 청와대의 장관 후보자 발표 이후 4시간 반 만에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 1층 로비에서 소감을 발표했다. 장관 지명 직후 법무부는 조 후보자의 요청이라면서 기자들에게 소감 발표 시간과 장소를 알린 뒤 “생방송 촬영은 가능하지만 별도의 질의응답은 없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조 후보자는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정신으로 공정한 법질서 확립, 검찰 개혁, 법무부 혁신 등 소명을 완수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해맹산’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지은 한시 ‘진중음(陣中吟·진중에서 읊는다는 의미)’의 한 구절이다. 충무공이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무찌르겠다는 의지를 담아 쓴 ‘진중음’의 5, 6구가 “서해어룡동(誓海魚龍動)/맹산초목지(盟山草木知)”다. ‘바다에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풀과 나무가 알아준다’는 뜻이다. 한일 갈등 국면에서 문 대통령이 연일 임진왜란과 충무공을 언급하는 것처럼 조 후보자도 취임 일성으로 충무공의 시를 택했다.

조 후보자가 오랜 시간을 두고 골랐을 이 메시지를 두고 여권 일각에선 ‘용이 감동한다’는 대목에 주목하기도 한다. ‘용’이란 표현이 상징하듯 차기 대권 구도에 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 친문(친문재인) 적자(嫡子)인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드루킹 사건’으로 발목을 잡혔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정치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조 후보자를 국정의 전면에 재배치한 것은 친문 결집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한 친문 인사는 “여권 전체로 봐도 PK(부산경남) 출신인 조 후보자와 호남 출신인 이낙연 국무총리의 동시 포진은 좋은 구도”라고 했다.

반면 야권은 조 후보자가 첫 과제로 ‘공정한 법질서 확립’을 꼽은 것을 두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수사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며 촉각을 세우고 있다. 경찰은 4월 패스트트랙 대치 상황에서 벌어진 충돌을 수사 중이지만 야당 의원들은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다. 율사 출신의 한 여당 의원은 “패스트트랙 수사는 국회선진화법 위반이 명백하기 때문에 검찰이 의지만 있다면 여러 의원이 처벌을 받아 내년 총선 출마를 못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부산(54) △부산 혜광고 △서울대 공법학과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로스쿨 석·박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문재인 정부#개각#조국#법무부 장관#검찰 개혁#서해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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