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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돌아온 친문 패권주의…비례정당 꼼수가 대수냐

김순덕 대기자 입력 2020-03-14 14:00수정 2020-03-1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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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세력 내에서 비례정당의 필요성을 맨 처음 거론한 사람을 기억하시는지? 윤건영과 손혜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미래통합당의 비례정당 비난에 열을 올리던 2월 21일 대통령의 복심(腹心)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그 전날엔 대통령 부인의 절친 손혜원 의원은 ‘신호’를 쏘아 올렸다. 과연 우연이었을까.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왼쪽)과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아일보DB

13일 마침내 민주당이 범여권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선언했다. 미래통합당의 비례정당 창당을 핑계 삼고, 민주당의 권리당원 투표 결과를 명분 삼아서다. 윤건영이 “비상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손혜원이 “당 외곽에서 민주당을 위한 비례정당 만드는 것을 검토하려 한다”고 운을 뗀 지 꼭 3주 만이다.

대통령-부인의 복심들 “비례정당 만들라”

당시만 해도 윤건영은 서울 구로을 민주당 후보자로 전략공천 받지 않은 상태였다. 매일 대통령을 만나는 남자였다고 해도 당에서 보면 공천을 고대하는 을(乙)의 처지다. 그때 윤건영의 말을 “개인 의견”이라며 깔아뭉갰던 당 핵심인사들이 지금 청와대를 제대로 쳐다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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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13일 방송인터뷰에서 윤건영은 정국 전망과 청와대 구상까지 밝혔다. “청와대에 7년 넘게 계셨는데 이번에 (국회) 입성하면 당정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것 같다”는 진행자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답한 것이다.

“집권 후반기가 될수록 당정청의 긴밀한 협력이 이완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당선된다면 (나에게) 충분히 역할이 있을 걸로 보고 (진행자의 말은)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당정청의 긴밀한 협의라는 부분이다.”

文의 남자 윤건영이 국회로 가는 까닭은

청와대엔 국회의원 출신 대통령비서실장이 있고 정무수석도 있다. 강기정 정무수석은 작년 초 취임 인사로 “대통령 뜻을 국회에, 국회의 민의를 대통령께 잘 전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왜 윤건영이 굳이 국민의 대표자로 선출돼 당정청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걸까. 윤건영의 천기누설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① 문 대통령이 퇴임해도 ‘친문 패권주의’는 계속된다.
② 민주당의 제1당 유지는 민주당보다 청와대에 더 중요하다.
③ 비례정당이라도 만들어 친문세력이 행정부, 사법부에 이어 입법권력까지 장악해야 한다.

운동권 시절부터 지켜온 패권주의 악습

2011년 8월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혁신과 통합’을 통해 정계 입문할 때부터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사람이 윤건영이다. 친문 세력이 대통령과 연결되는 고리가 ‘부산-대선캠프-민주당-노무현 정부-노무현재단-학생·노동운동’의 여섯 개 고리인데 윤건영은 송인배 전 비서관과 더불어 유이(唯二)하게 여섯 개 모두 연결된다.

댓글 조작 사건으로 2월 대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드루킹’ 김동원은 “과거 민정수석에게 가던 정보가 국정상황실로 들어가서 윤 실장이 사실상 넘버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첫 비서실장 임종석이 비(非) 친문이고, 친문 핵심 양정철이 청와대에 안 들어가는 바람에 친문 패권주의가 사라진 듯했지만 잠시였을 뿐이다. 청와대 2기에 노영민 비서실장이 합류하는 등 친문 패권주의는 계속 강화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동아일보DB


계파 패권주의란 권력을 독점한 패권적 지위를 이용해 사적(私的) 이익을 앞세우는 것을 말한다. 민족해방(NL)을 외쳤던 운동권 시절부터 그들은 자기 진영만이 선(善)이고, 자기네 계파가 조직 내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진보라고 믿는 패권주의 악습을 고수해 왔다.

권력은 부패한다. 친문 패권주의도 마찬가지

친문 패권주의가 강화되면서 야당이 ‘3대 친문 게이트’라고 주장하는 사건 중 2개에 윤건영의 이름이 거론된다.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국장의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사건과 울산시장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에서다.

윤건영은 이번 총선 출마를 결심한 계기가 검찰 조사에 있다고 했다. 청와대에 있는 것이 대통령에게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자못 충정어린 얘기지만 실제로 2년 남짓 남은 청와대보다 4년이 보장되는 금배지가 더 튼튼한 보호막이 될 터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조용히 잊혀지고 싶다고 말해 국민을 놀래켰다. 그러나 친문 세력은 친문 패권주의를 잃을 수 없다. 청와대는 물론 행정부와 사법부 장악만으로는 부족하고, 집권 말로 갈수록 집권당도 못 믿는다. 윤건영 같은 친문 세력이 국회를 장악해 차기 청와대까지 주물러야 한다. “미래한국당의 입법권력 찬탈을 저지하자”는 최재성 의원 발언을 보라. 친문에게는 국민의 대표기관 국회가 입법권력으로, 정권 교체가 왕위 찬탈로 뵈는 것이다.

총선 승리는 청와대에 더 절박하다

물론 윤건영은 문재인 정부에선 어떤 불법행위도 없다고 강조를 했다. 그런데도 미래통합당이 제1당이 되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히자 그는 2월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이 명령하지 않은 탄핵은 월권”이라고 격하게 반발했다. 바로 그날 손혜원이 처음 비례정당을 언급했다. 다음날 윤건영도 비례정당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나섰다. 희한하지 않은가.

미래통합당의 비례정당을 가짜정당이라고 비난해온 민주당은 이제 와 비례정당을 추진한다는 게 면구스러울 것이다. 청와대는 그런 여유가 사치다. 반드시 제1당이 돼서 국회의장 의사봉을 차지해야만 야당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해도 막는 게 가능하다. 3대 친문 게이트 특검을 막기 위해서도 제1당은 필수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안내문.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민주당의 이번 공천 특징이 친문 강화다. 금태섭 의원처럼 입바른 소리나 하는 자는 공천 못 준다. 그놈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군소정당들과 여대야소를 만든대도 안심할 수 없다(2월 26일 민주당 친문 핵심들과의 회동에서 이인영 원내대표는 “정의당이나 민생당이랑 같이 하는 순간, X물에서 같이 뒹구는 것”이라고 했다). 꼼수로 ‘비례민주당’ 만드는 게 대수냐. 괜히 군소야당 끌어들여 연합정당 꾸렸다가 민주당이 한 석이라도 놓치면 위험해질 판이다.

문 대통령이 먼저 비례정당 생각했을까

여기서 잠깐. 비례정당의 필요성을 이처럼 절절하게 깨달은 사람이 과연 문 대통령일까 궁금해진다. 지금까지 문 대통령에게서 이렇듯 발칙한 ‘정치적 셈법’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손혜원의 절친 김정숙 여사가 비례정당을 원했을 수도 있지만 내막은 알 수 없다.

차라리 윤건영을 비롯한 이른바 ‘청와대’가 고심한 결과로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문 대통령과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정치를 함께 했던 김한길은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은 지난 5년 간 친문패권을 더 튼튼하게 만든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고 했다.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은 총선 출마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셜 미디어 배경화면으로 쓰고 있다. 윤건영 전 실장의 페이스북 캡처


2017년 대선 때 문 대통령을 깎아내리는 발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좌파 논객 진중권도 최근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을 주장한 것도 윤건영이었다”며 “문 대통령에게는 당정에 스며든 586 전대협 출신을 통제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암만 문빠라 해도 문 대통령의 성품을 평가하지, 정치적 두뇌를 높게 치진 않는다.

친문 패권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 말이 맞는다면, 문 대통령은 고 노무현 대통령처럼 그들의 ‘도구’일 뿐이다. 젊은 날 총학생회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선거공학, 정치공학을 익힌 그들은 문 대통령을 택군(擇君)해 권력을 쥘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한 것도 선거 빚 때문이라고 보면 국정운영에 대한 숱한 의문이 풀리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친문 세력의 DNA는 변하지 않는다. 총선을 앞두고 친문 패권주의는 대놓고 당당하게 돌아왔다. 문제는 갈수록 위력을 발휘하는 그들의 패권주의 때문에 나라가 뒤집힐 판이라는 점이다.

2012년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패배한 뒤, 대선평가위원회는 가장 큰 패배 요인으로 계파 갈등을 꼽았다. 친문 패권주의가 기승을 부린 탓에 정작 유능한 인재는 선거운동에 끼지를 못해 ‘이길 수밖에 없는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분석이다. 똑같은 상황이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체주의냐, 자유민주를 지킬 것이냐

경제와 안보만 뒤흔들린 게 아니다.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 친문 세력, 견해가 다른 사람을 토착 왜구로 모는 친문 패권주의는 전체주의로 가는 길이다.

악다구니처럼 달려드는 문빠가 무서워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 지식인들도 입을 다무는 세상이 됐다. 그들만의 공정(公正)이 온 국민의 가치관을 뒤집어놓는 바람에 많은 이들이 내가 이상해졌나, 정신이상이 될까 걱정한다. 아닌 건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는 진중권의 독설이 되레 위안을 줄 정도다.

‘검사내전’을 쓴 김웅 전 부장검사는 야당에 입당하면서 “사기꾼 때려잡는 게 내 전문”이라는 말로 ‘친문 이익패거리’의 사기 행각을 지적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만들기 위해 군소야당에 비례대표제로 사기 쳤던 그들이 이제 꼼수 비례정당까지 만들어 사기를 계속할 태세다. 4월 총선은 대한민국이 전체주의로 갈 것이냐,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것이냐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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