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트 전시에서 만난 양자역학[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15일 23시 27분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영국 현대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전시를 봤다. 대학생 시절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그의 대표작 50여 점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평일 오전인데도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이 전시를 영원히 기억하려는 듯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감상했다. 외국에 나가지 않더라도 이런 전시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허스트의 작품을 감상했다. 초기 작품인 ‘올라간 것은 반드시 내려온다’(1994년)는 헤어드라이어가 아래에서 바람을 일으켜 탁구공을 공중에 떠받치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중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에 붙들린 채, 지구에 대롱대롱 매달려 살아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은유가 확 전해졌다. 연장선에 있는 ‘사랑의 취약성’(2000년)은 중력을 거슬러 칼날 위에 떠 있는 비치볼의 위태로운 운명을 보여줌으로써, 사랑의 연약함과 불확실성을 암시하는 듯했다. 특유의 페이소스와 함께 사랑의 본질에 대해 묻는 시적인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은 마치 양자역학적인 시선처럼 하나의 결정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파동과 입자라는 양면성을 지닌 양자 세계처럼,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동시에 품고 있었다.

죽음을 표현한 작품 ‘논리가 무너질 때’(1991년)는 충격적이었다.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의 시 ‘태양 없는 곳에서 빛이 생겨난다’에서 따온 제목 또한 인상적이었다. 끔찍한 이미지와 깔끔한 금속성 의료장비를 함께 배치함으로써, 작품의 주제가 하나의 의미로 귀결될 수 없도록 연출했다. 끔찍한 죽음을 바라보는 두 개의 양자적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하나의 분명한 논리가 사라진 존재의 상태를 보여주는 듯했다.

최근작인 ‘체리 블로섬’(2019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개한 벚꽃의 화려한 한순간을 보여주는 듯했지만, 내게는 두 개의 다른 세계가 느껴졌다. 사랑과 환희로 충만한 풍경인 동시에, 어쩐지 상실의 순간처럼 다가오는 풍경이었다. 허스트는 인터뷰에서 이 풍경이 “삶과 죽음의 양가적 암시”를 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양자역학에는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가 있다. 1927년 보어는 전자와 같은 양자적 존재는 입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파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두 모습을 동시에 완전히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모순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양자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의 문제로 이해했다. 서로 모순되는 설명일지라도 둘 다 공존할 수 있으며, 진실은 하나의 시각만으로는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고 봤다.

허스트가 자신의 작품을 말할 때 보어의 상보성 원리를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철학적·미학적 차원에서는 상당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관객이 관여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림을 감상하는 관객이 그 해답을 찾길 바라지 않았다. 관객은 답을 찾는 순간 쉽게 떠나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은 전시장을 나선 뒤에도 관객을 놓아주지 않는다. 허스트의 작품이 오래도록 강렬한 시각적 경험으로 남는 것은 이 때문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허스트의 작품을 감상했으면 좋겠다.

#국립현대미술관#데이미언 허스트#현대미술#중력#사랑의 취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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