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에서는 연초부터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일(현지 시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에서 발생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백인 여성 사살 사건 때문이다. 이 여성은 동네에 나타난 ICE가 싫어서 차로 길을 막았다가 머리 등에 총 세 발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사건의 잔혹성도 충격적이지만, 시민들이 더 크게 분노하는 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 때문이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트럼프 대통령 이하 관련 부처들은 일제히 ‘여성이 사망한 건 본인 잘못 때문이고, ICE 요원은 아무 죄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런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에 대한 분노 키운 미네소타 사건
사람은 언제 가장 화가 날까. 심리학자들이 꼽는 건 크게 세 가지다.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 억울할 때, 그리고 국가나 친한 친구처럼 믿었던 대상으로부터 배신을 당했을 때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일은 분노의 삼박자를 모두 갖췄다. 당초 트럼프 행정부는 “해당 여성이 차로 일부러 ICE 요원을 쳤기 때문에 요원은 정당방위”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공개된 영상자료가 거의 없는 다른 ICE 총격 사건과 달랐다. 밝은 아침 주택가 한복판에서 일어났고, ICE 등장에 이미 여러 주민들이 촬영을 하고 있었던 탓에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영상이 존재했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이 “국내 테러 행위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밝힌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여러 언론의 영상 분석을 통해 여성의 차가 ICE 요원을 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오히려 여성은 요원이 강제로 차 문을 열려고 하자 차를 빼 피하려 했고, 사고 전 요원에게 “당신(개인) 때문에 (차를 막고) 화가 난 건 아니에요”라고 말한 정황도 확인됐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가 ‘테러 행위에 대한 정당방위’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자 전국적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는 모양새다.
갈수록 낯설어지는 미국
사실 미네소타주 주민들은 이번 사건이 있기 전부터 살얼음판을 걸어왔다. 미네소타주는 지난 미 대선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팀 월즈 주지사가 이끄는 대표적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또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몹시 못마땅해하는 소말리아 난민 출신 이민자들의 집단 거주지가 있다. 이에 따라 ICE의 서슬 퍼런 단속이 집중돼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일부 미네소타주 주민들은 평소 호루라기를 걸고 다니며 ICE 요원들이 보이면 짧게 두 번, 누군가를 잡아가면 길게 한 번 불어 주변 이웃들에게 경고를 보내 왔다. 수백 개의 오픈 채팅을 통해 단속 정보와 사진을 공유하고, 학부모 자원봉사자를 동원해 ‘인간 사슬’을 만들어 학교를 지켜왔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은 ICE 요원의 과잉 대응 논란이 한창인 중에도 계속되고 있다. 9일 미국 농무부는 미네소타주의 저소득층 식비 지원(SNAP) 등에 쓰였던 약 2000억 원의 연방 지원금을 끊겠다고 밝혔다. 미네소타주에서 최근 확인된 연방정부 지원금 횡령 사건에 대한 대응 조치라는 게 이유다. 하지만 미국 국민 8명 중 1명이 SNAP에 기대 살아가는 현실에서, 없는 이들을 사지로 모는 대응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국민들의 공분을 낳을 수밖에 없다.
독재국가가 아닌 미국에서, 이런 분노에 찬 이야기가 이어지는 건 혼란스러운 일이다. 한때 세계 민주주의와 번영의 상징이었던 미국은 점점 낯선 곳으로 변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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