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제조 바꾸는 AI로봇] 〈2〉 삼성의 ‘AI 팩토리’ 실험
자동화 넘어 공장 전체가 ‘AI 로봇’… 알아서 학습하고 제품 설계-제조
가상공장 구현 ‘디지털 트윈’도 도입
작업자 붐볐던 조선-건설현장 변화… 절단-용접 등 AI로 오차 없이 작업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반도체 제조 및 연구단지 ‘화성 캠퍼스’는 KAIST 대덕캠퍼스(약 143만 ㎡)와 비슷한 158만 ㎡(약 48만 평) 규모다.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지만 이곳에서 전 세계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AI 공장(팩토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기존 자동화 공정을 넘어 공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AI 로봇처럼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며 제조하는 자율형 제조 인프라로 전환 중인 것. AI 팩토리가 피지컬 AI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화성캠퍼스에 1조5000억 원을 투입해 반도체 설계·공정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성능컴퓨팅(HPC)센터를 열어 지난해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이례적으로 반도체 공장에 서버가 빽빽이 들어선 11층 규모의 컴퓨팅 센터를 지은 것에 대해 업계에서는 AI 팩토리 전환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 손잡고 “업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AI 팩토리를 구축해 글로벌 제조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해 12월 말 경기 화성 캠퍼스를 찾아 디지털 트윈, 로봇을 적용한 제조 자동화 시스템 구축 현황을 집중적으로 둘러보며 “본원적 기술경쟁력 회복”을 주문했다.
● 반도체 공정, AI 도입으로 공정 속도 20배↑
AI 팩토리는 먼 미래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회로 설계에 AI를 도입해 공정 속도를 기존 대비 약 20배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AI가 수십억 개의 회로 패턴을 계산해 최적의 설계 조건을 찾아낸 것. 회로 왜곡 현상을 줄여 불량률도 크게 낮췄다.
이는 반도체 제조의 핵심 공정인 광학근접보정(OPC) 과정이다. 미세 회로를 실리콘 기판 위에 왜곡 없이 구현하기 위한 보정 공정으로, 회로를 사진처럼 인쇄한다는 의미에서 ‘포토(Photo) 공정’으로도 불린다. 계산량이 방대해 시뮬레이션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AI 도입 이후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자료: 각 사
AI 팩토리의 ‘두뇌’로 불리는 디지털 트윈 기술도 확산 중이다. 아예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은 ‘디지털 트윈 센터’ 조직도 신설했다. 디지털 트윈은 공장을 통째로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옮겨 최적의 운영 해법을 검증해 현장에 적용하는 기술이다. 수백 개 공정 중 하나만 잘못돼도 불량이 나는 까다로운 반도체 공정의 수율을 높여줄 것으로 예상돼 이미 대만 TSMC도 적용에 속도를 내는 분야다. 삼성전자는 디지털 트윈 등 AI 공장 구현을 위해서 엔비디아로부터 공급받는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 장을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AI 팩토리가 완전히 구현되면 산업 지형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달라질 것”이라며 “불량률 감소와 공정 효율 개선을 넘어, AI가 제품 설계에 본격 관여하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제품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인력 중심 조선·건설 현장도 AI 혁신 진행 중
AI는 인력 중심의 조선·건설 현장에서도 생산성 혁신을 이끌고 있다.
한때 작업자들로 빼곡했던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는 최근 찾아가니 교외 대형 물류창고처럼 한산했다.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의 상당 부분을 AI 기반 자동화 설비가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작업자가 절단기에 직접 작업 내용을 입력하고 철판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 뒤 버튼을 눌러야 했지만, 이제 ‘AI 절단기’는 철판의 코드를 인식해 오차 없이 자동으로 절단하고 다음 공정까지 연속 수행한다. 용접 공정도 달라졌다. 일부 구역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작업하지만, AI가 적용된 공정에서는 ‘AI 용접공’이 스스로 용접 경로와 조건을 판단해 작업을 마무리했다.
삼성중공업은 2030년을 목표로 AI 기반 완전 자율운항 선박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테스트 선박 ‘시프트-오토’를 통해 충돌 자동 회피, 태풍·파고를 고려한 최적 항로 탐색, 저궤도 위성통신을 활용한 원격 제어 기술을 검증 중이며, 누적 1만 km 이상의 자율 운항을 이미 마쳤다.
박정서 삼성중공업 ADX 총괄(상무)은 “AI 도입으로 생산성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숙련 인력의 노하우가 데이터로 축적돼 회사의 자산이 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건설 현장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삼성물산이 시공 중인 판교 엔씨소프트 RDI센터는 스마트 건설 기술을 집약 적용한 파일럿 현장이다. AI 센서가 부착된 굴착기는 사람과 사물, 구조물을 구분해 사람이 접근했을 때만 경고를 울려 오경보를 크게 줄였다. 외관 촬영용 드론 등도 주목받고 있다. 드론은 정해진 일정에 맞춰 자동 비행하며 데이터를 전송하는 등 100% 자동화됐다. 삼성물산은 향후 내부 촬영도 이 같은 AI 로봇에 맡길 계획이다.
이와 함께 삼성물산은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함께 ‘AI 입찰 제안서 리뷰어’, ‘AI 계약 매니저’, ‘AI 프로젝트 엑스퍼트’ 등 3종의 AI 에이전트를 개발해 올해 현장에 적용할 예정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앞으로 AI 도입을 통한 변화 폭은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AI 컴퍼니로”… 반도체 AI센터 인력만 3000명 배치
DS부문 디지털트윈센터 신설 DX 사업부별 ‘AI 혁신 사무국’ 설치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스마트폰, 가전 등 전 사업 영역에 걸쳐 인공지능(AI) 관련 조직을 확대·재편하며 ‘AI 드리븐 컴퍼니’로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특히 공장 등 현실 공간을 가상 환경에 그대로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AI 전환의 핵심 축으로 삼고, 이를 전담하는 조직을 대폭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은 ‘AI 팩토리’ 구현을 위해 지난해 말 정기 인사에서 ‘디지털트윈센터’를 신설하고, 센터 산하에 디지털트윈사무국, A-팹 기술팀, A-인프라 기술팀, DS설비아카데미 등 4개 팀을 구성했다. 이들 팀은 공장 자동화를 위한 장비나 인프라 개발 및 표준화 작업을 담당한다.
DS부문은 AI 팩토리 등 AI 전환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은 AI센터에 3000명 이상을 배치하기도 했다. 이는 DS부문 전체 인력(약 7만 명)의 4%를 넘는 규모다. 그만큼 AI 전환에 대규모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스마트폰과 가전 등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부문 역시 AI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DX부문은 지난해 ‘AI 생산성 혁신 그룹’을 신설하고, 사업부별로 ‘AI 생산성 혁신 사무국’을 설치했다. 여기에 실행 조직 성격의 ‘이노엑스 랩(InnoX Lab)’도 새로 꾸려 주요 AI 전환 과제를 집중 추진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경영 전반에서 AI 전환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열린 글로벌 전략협의회에서도 AI가 핵심 안건 중 하나로 다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 한 임원은 “글로벌 전략협의회에서 AI 전환과 관련해 부문별로 강력한 주문이 있었다”며 “올해 출시되는 대부분의 제품이 AI와 직결되는 만큼, AI를 빼고는 경영 논의를 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과 노태문 DX부문장(사장)도 각각 신년사를 통해 “AI 전환을 통해 AI 시대를 선도하자”며 한목소리로 AI 중심 경영을 강조했다. 전 부회장은 “반도체 원스톱 솔루션 역량을 바탕으로 고객과 함께 AI 시대를 선도하겠다”고 했고, 노 사장도 “AI를 활용해 일하는 방식과 사고까지 혁신해 업무 속도와 생산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디지털트윈
제조 현장을 통째로 가상공간으로 옮기는 AI 공장의 핵심 기술. 미리 모든 변수를 가상세계에서 돌려보고, 이를 통해 실제 공장에 대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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