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상훈]2030 일자리 문제, 이렇게 조용해도 되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30일 23시 15분


이상훈 정책사회부장
이상훈 정책사회부장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 정책을 종합한 가장 최근 연설인 지난달 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는 ‘일자리’라는 단어가 총 세 번 등장한다. 장애인 일자리를 확충하고, 노인 일자리를 확대하면서 더 많이 지원받을 수 있게 설계했다는 내용이다. 중요한 과제들이지만, 정부의 핵심 정책으로 보긴 어렵다.

이 대통령 취임 후 6개월간 청년 일자리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면 “청년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정부뿐 아니라 기업의 노력도 필요하다”(9월 16일 국무회의) “청년 한 명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온 나라가 함께 힘을 모으겠다”(10월 22일 페이스북) 정도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사망 사고나 주식시장에 쏟는 관심과 비교하면 빈도와 내용 모두 비교가 안 된다. 용산의 핵심 어젠다에 청년 일자리는 없다는 걸 보여준다.

청년 일자리에 침묵하는 정부-정치권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청년 일자리에 대한 언급이 갈수록 줄어드는 가운데, 2030세대 신규 채용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 2분기 2030세대 신규 채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만6000개 감소했다. 특히 대졸자의 첫 사회 진출 수치를 보여주는 20대 이하 신규 채용(137만 개)이 8만4000개 줄어들며 관련 통계 작성(2018년) 이후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복잡한 숫자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지 못해 발을 구르는 청년, 이들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한숨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상황이 엄혹해졌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조용하다. “인구가 줄면 일자리 경쟁이 완화될 것”이라던 낙관론은 빗나간 지 오래다. 석유화학, 철강 등 주력 산업 불황, 미국의 관세 압박, 경직된 노동 정책 등 일자리를 위협하는 변수들은 더 커졌지만, 고용 확대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 시선이 정년 연장, 산업재해 근절 등 표가 되는 중장년층 대상으로 향하는 가운데,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못 한 청년의 일자리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정책에도 유행이 있다면 정부와 정치권에 청년 일자리 문제는 유효기간이 지난 것 같다. 10년 넘게 대책을 쏟아내도 해결되지 않으니 은근슬쩍 뒷전으로 미뤄 두는 분위기다. 정부와 정치권에는 낡은 숙제일지 몰라도, 당사자인 청년에게는 미래의 생존이 달린 피 말리는 문제다. 유행이 지났다고 고통이 무뎌지는 건 아니다.

청년 취업률이 부진하다는 통계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무실에 설치했던 일자리 상황판은 분명 보여주기식 정치였지만, 적어도 정부가 청년 일자리를 주요 국정 과제로 삼고 있다는 메시지는 전달했다.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등이 앞다투어 내놓은 일자리 정책들은 기업들이 눈치를 보며 채용 규모를 늘리는 시늉이라도 하게 했다.

지난 10여 년간 청년 일자리 정책의 중심에는 마중물 이론이 있었다. 청년 고용 기업에 세금 감면, 보조금 지급 등 마중물을 부어 주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란 논리였다. 지금은 마중물을 부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이 사람을 뽑고 싶어야 보조금이 의미가 있는데, 생존이 불확실한 기업으로서는 다음 달 실적을 낼 경력직 말고는 채용할 여력이 사라졌다.

무관심으로 청년 고용 문제 외면 안 돼

정책에서 가장 무서운 건 실패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실패는 고치면 되지만, 무관심은 문제를 없는 것처럼 만든다. 역량 배양이 시작돼야 하는 청년 일자리가 인공지능(AI)과 매뉴얼로 대체되는 시대다. 기업이 청년을 채용할 때 드는 초기 비용은 어떻게 정부가 분담할지, 노동시장 진입 장벽은 어떻게 낮출지 이제부터라도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 안 풀린다고 덮어놓아선 안 된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한 번 소모하고 폐기할 유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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