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원재]3년간 225만 개 사라진 청약통장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10일 23시 21분


2000년대 중반 판교, 위례 등 2기 신도시 물량이 쏟아질 때 1순위 청약통장은 많게는 수천만 원에 거래됐다. 불법 거래임에도 수도권 주택가 곳곳에 ‘청약통장 고가 매입’ 광고물이 붙었다. 당시만 해도 ‘황금알’로 불렸던 청약통장이 최근에는 ‘찬밥 신세’가 됐다. 해지가 급증하면서 한때 온 국민이 가입하다시피 했던 청약통장 가입자가 3년 만에 225만 명이나 줄어든 것이다.

▷청약통장을 외면하는 건 원하는 곳에 당첨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 아파트 일반분양은 7358채로 전년 대비 30%나 줄었다. 서울의 재개발·재건축 중 착공에 들어간 물량은 10채 중 1채뿐이라 당분간 대규모 공급도 기대하기 어렵다. 공급이 줄면서 청약 경쟁률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다. 최근 서울에선 4인 가족이 만점(69점)으로도 떨어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1, 2인 가구는 사실상 당첨이 불가능하니 통장을 유지할 필요를 못 느낄 수밖에 없다. 반면 지방에는 미분양 물량이 많아 굳이 청약통장이 필요하지 않다.

▷운이 좋아 인기 지역에서 신혼부부, 생애 최초, 신생아 특별공급에 당첨돼도 문제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오른 탓에 서울 민간 아파트 분양가는 3.3㎡당 4547만 원으로 7년 만에 2배가 됐다. 여기에 대출 규제 때문에 은행에서 중도금과 잔금을 빌리기도 어렵다. ‘갭 투자’ 규제로 전세를 주고 잔금을 낼 수도 없다. 예를 들어 10일 청약을 시작한 서초구 반포동의 84㎡ 아파트는 분양가가 27억 원인데 10·15 대책에 따라 은행 대출은 2억 원까지만 가능하다. 주변 시세와 비교하면 30억 넘게 차익이 예상되지만 현금 25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 보니 ‘그림의 떡’이다. 무주택 청년 중에는 못 먹는 떡을 노리는 것보다 통장을 해지하고 주식과 코인 투자로 돌아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

▷1977년 도입된 청약통장은 그동안 ‘중산층으로 가는 사다리’ 역할을 했다. 목돈이 없어도 매달 성실하게 돈을 모으면 언젠가 번듯한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희망이 통장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나 최근 청약통장을 해지하는 청년들은 “더 이상 월급을 모아 서울 집을 사는 게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거주가 불안한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다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청약통장 해지를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월 납입액을 줄이거나 납입을 중단하더라도 통장을 일단 유지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부동산 시장은 사이클이 있기 때문에 일단 통장을 갖고 있으면 추후 공급이 몰릴 때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여 년 전 2기 신도시 분양 때도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일부 단지가 미달되거나 낮은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이들 단지도 나중에 ‘알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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