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싸움 한 가운데 ‘OO’이 있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8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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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34)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중요한 소통 창구에서 공공의 적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2주가 지난 지난해 3월 10일(현지 시간). 미국 백악관이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의 유명 크리에이터(제작자) 30여 명을 화상 회의에 초대했다. 전쟁 상황과 미국의 전략 목표 등을 대중에게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회의에는 젠 사키 당시 백악관 대변인과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도 있었다.

백악관 관계자는 미 뉴욕타임스(NYT)에 “많은 국민이 ‘이 플랫폼(틱톡)’에서 최신 정보를 얻고 있다”며 초대 배경을 설명했다. 백악관은 2021년에도 틱톡 인플루언서들을 불러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장려하기 위한 행사를 진행했었다.

미국에서 대국민 소통창구 역할까지 하던 틱톡이 최근 ‘공공의 적’이 됐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라서다. 미 정치권을 중심으로 중국 정부가 틱톡 이용자의 정보에 접근하거나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며 틱톡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나섰다.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의 중국 창업자들에게 보유 지분을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틱톡 사용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압박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15일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최근 틱톡 측에 이 같은 의견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사업을 접든, 회사를 넘기든 선택하라는 통보였다. 바이트댄스 지분은 중국인 창업자 20%, 글로벌 투자자 60%, 직원 20%로 구성돼 있다.

의회도 움직였다. 미 하원이 지난달 23일 싱가포르 출신의 저우서우쯔(周受資) 틱톡 최고경영자(CEO)를 청문회에 불렀다. 외국 기업의 CEO가 미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한 것은 2010년 일본 도요타의 리콜 사태 이후 13년 만이다.

청문회 직전, 중국 상무부 대변인이 “틱톡 매각에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면서 예열까지 마친 미 의회.

공화당, 민주당 의원들은 5시간 동안 “틱톡이 중국 정부를 대신해 미국인들을 염탐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중립국’ 출신의 저우 CEO는 “바이트댄스는 중국 기관원이 아니다. 미국 직원이 관리하는 미국 회사가 미국 땅에 틱톡의 데이터를 저장한다”고 해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면서 화를 낸 의원도 있었다.

통상자원위원회 소속 토니 카르데나스(민주, 캘리포니아) 의원은 “(틱톡 금지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까지 했다. 그는 “증인(저우)은 당적이 다른 의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세상에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라면서 미 의회의 공세가 공포탄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자, 중국 외교부는 “외국 기업을 억압하려 국가 권력을 쓴다”고 비난했다. 자국 내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접속을 아예 차단한 중국이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지만.

일러스트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미국 점령한 ‘8분음표’
틱톡은 중국 바이트댄스가 2016년 9월 선보인 짧은 동영상(숏폼·Short-form) 플랫폼이다. 이 소셜미디어에서는 15초 전후의 영상을 찍어 공유한다.

틱톡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출시 이후 5년 만인 2021년 전 세계 이용자가 10억 명을 돌파했다. 페이스북이 9년 만에 달성한 기록이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도 7년 이상 걸렸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 된 앱 역시 틱톡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봉쇄 기간 10, 20대를 중심으로 사용이 급격히 늘었다”고 전했다.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10대들이 틱톡에 모여 춤을 추거나 동영상을 시청한 것으로 보인다.

틱톡은 미국도 점령했다. 현재 미국 국민 1억5000만 명이 틱톡을 사용 중이다. 절반에 가까운 국민(45%)이 ‘8분음표(틱톡 상징)’에 빠져 있다. 브라이언 노왁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미국 이용자는 틱톡에 연 530억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틱톡의 성장과 알고리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신비월드 5화 ‘디Z털 세대의 시간은 틱톡 흐른다’ 참고)

특히, 젊은 층 사용 비중이 높다. 시장조사기업 이마케터는 미국 사용자의 44%가 25세 미만이라고 분석했다. 페이스북(16%)과 차이를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는 “18~24세 미국인이 하루 1시간씩 틱톡을 사용하는데, 이 같은 사용량은 인스타그램의 2배이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소통할 때 쓰는 페이스북보다는 5배가 넘는 수치”라고 지난달 21일 전했다. (페이스북이 조부모와 대화하려고 쓰는 플랫폼이라니, 의문의 1패다)

미국 Z세대는 틱톡을 음악과 춤 동영상을 보는 용도로만 쓰지 않는다. 식당을 찾거나 제품 후기를 검색하는 데 틱톡을 활용하고 있다. 뉴스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재테크 조언까지 얻는다. 구글, 네이버 같은 검색 엔진으로 쓰고 있는 셈이다.

구글도 이를 안다. 구글 검색엔진 부사장 프라바카르 라그하반은 지난해 7월 “젊은 층의 40%가 식사 장소를 찾을 때 구글 대신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을 활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60초 미만의 짧은 동영상이 빠르게 답을 찾아줘서다.

문제는 미국 Z세대가 클럽, 뉴스 채널로 활용하는 틱톡이 자국 안보를 위협하는 중국 기업이라는 점이다. 대만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외교적 충돌이 지속되는 가운데, 올해 2월 중국의 고고도 정찰 풍선이 미 영공을 침범하면서 양국 갈등이 격화됐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틱톡에 대한 우려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NYT는 “틱톡만큼 미국 사회를 점령한 중국 기업은 없었다. 이 앱이 미국 최대의 지정학적 경쟁자 제품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 놀라게 한다”고 전했다. 극단적이지만 네이버, 카카오가 북한 회사라고 상상해보면 미국이 불안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 틱톡과 중국 정부의 밀월
미국 정부와 의회는 틱톡이 베이징에 미국 사용자의 데이터를 넘길까 걱정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는 고객이 여행을 갔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등 수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이용자가 동의하면 스마트폰의 내장 마이크나 카메라, 위치정보에도 접근한다. 사용자에게 더 나은 콘텐츠를 제공하고, 광고 수익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중국이 이러한 정보를 악용할까 걱정하고 있다.

저우 CEO는 “중국 정부가 미국 이용자 데이터를 요구한 적도 없고, 그런 요구가 오더라도 미국 고객 데이터를 넘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미 정치권은 중국법과 중국 정부-기업의 상하관계 등을 고려했을 때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보고 있다.

외신들은 틱톡 모회사인 바이트댄스와 중국 정부의 밀월이 수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고 분석한다. 바이트댄스에 2016년 부편집장으로 합류한 장푸핑(張輔評)은 다음 해 편집장으로 승진했는데, 그는 중국 정부의 공식 행사에서 “‘더우인(抖音·중국 틱톡 서비스)’의 이용자 정보가 정부의 감시 활동에 활용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장푸핑이 공산당의 고위 당료인 당서기였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바이트댄스는 2018년 중국 관영 중앙TV(CCTV)의 전 앵커를 부회장으로 영입했고, 2019년에는 국영기업인 상하이동팡언론그룹과 합작사까지 만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합작사의 공식 서류에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이 사업목적으로 쓰여 있었다”고 전했다.

틱톡의 창업주인 장이밍(張一鳴·40)이 2021년 돌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도 의심스럽다. 2017년 바이트댄스의 기업 가치가 200억 달러(약 26조 원)를 넘어섰을 무렵, 중국 정부가 “온라인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바이트댄스의 한 앱을 종료하라고 명령했다. 장이밍은 다음 날 새벽 4시에 “후회와 죄책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내용의 긴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10년 전, 자신의 블로그에 중국이 구글을 퇴출한 것을 비판했던 인물이다.

WSJ은 “중국 정부 산하 사이버보안감시단이 지원하는 한 펀드가 바이트댄스 핵심 자회사 지분을 1% 가지고 있다”며 “이는 자회사 이사회나 비즈니스 결정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황금 지분’”이라고 지난달 전했다. 중국 정부의 요구를 뿌리칠 수 있다는 저우 CEO의 말을 믿기 어려운 이유다.

틱톡도 나름대로 ‘비싼’ 방어 논리를 준비해 놓았다. 틱톡은 지난해 7월 사용자 정보 유출 문제가 언급되자 미국 고객 정보를 텍사스에 있는 미국 회사 오라클 소유의 서버로 이전하는 ‘텍사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5억 달러(약 2조 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운영비용도 연 7억 달러(약 9200억 원)나 들어간다.

‘틱톡’의 저우서우쯔 CEO(앞줄 가운데)가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하원 청문회에서 “틱톡은 중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콘텐츠를 홍보하거나 삭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틱톡’의 저우서우쯔 CEO(앞줄 가운데)가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하원 청문회에서 “틱톡은 중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콘텐츠를 홍보하거나 삭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 스마트폰에 침투한 ‘스파이 풍선’
그럼에도 의혹이 끊이질 않는다. 미국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는 지난해 6월 “중국 본사에서 미국 틱톡 사용자 데이터에 반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기사는 틱톡 직원들의 내부 회의 녹음본을 인용했는데, 틱톡 직원이 “중국 안에서 모든 것이 보인다”라고 언급한 부분이 포함됐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도 지난해 10월 “바이트댄스가 틱톡으로 개별 미국인의 위치정보를 체크하려 한다. 광고 등이 아닌 감시 목적”이라고 폭로했다. 최근 바이트댄스 직원이 일부 미국 기자들의 계정에 무단 접근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 폭로 기사를 쓴 에밀리 베이커 화이트 기자도 포함돼 있었다. 바이트댄스는 “개인들의 일탈”이라면서 데이터에 접근한 임직원 4명(중국 본사 감사부서 소속)을 해고했다.

그런데, 미 정치권이 데이터 유출보다 더 우려하는 것이 있다. 여론 조작과 선거 개입이다. 틱톡이 미국 이용자들에게 일부 정보를 보여주지 않거나, 선거 때 특정 후보를 더 많이 내보내는 등 여론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하고 있다.

중국 관련 콘텐츠이기는 했지만, 바이트댄스가 틱톡에서 콘텐츠를 검열한 이력도 있다. 가디언은 2019년 “‘천안문’ ‘티베트’ 같은 ‘논란이 많은 주제’를 금지하라”는 틱톡의 내부 지침을 보도했다. 기사가 나온 뒤 틱톡은 유해 콘텐츠만 삭제하는 방식으로 지침을 수정했다. 물론, 중국은 쏙 빠졌다.

중국의 콘텐츠 검열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중국 밖 외국인들이 많이 쓰는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걸러내고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기업에도 국적이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잊고 지냈다.

바이트댄스는 현재 틱톡을 글로벌, 중국 버전(더우인)으로 따로 운영 중이다. 지난해 6월 이코노미스트의 뉴욕과 상하이 특파원이 틱톡과 더우인에서 각각의 정치 지도자를 검색했다. 중국에서는 온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만 나타났다. 충분히 예상할 만한 결과였다.

지정학적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이 나쁜 마음을 먹고 미국의 틱톡 서비스에 관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 이용자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에 즉각적으로 영향 받을 가능성이 크다. 영국 옥스퍼드대 산하 로이터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틱톡 이용자 중 30% 이상이 앱에서 얻은 정보를 언론사 뉴스처럼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정부가 손을 뻗쳤다고 해도 이를 쉽게 알아채기 어렵다는 점이다.

틱톡은 고객의 취향, 선호도 등을 인공지능이 분석해 이용자에게 적합한 동영상을 틀어준다. 1억5000만 미국 사용자가 전부 다른 화면을 보게 된다. ‘극강의 개인화 서비스’ 때문에 틱톡 콘텐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발견되더라도 한참 후일 가능성이 크다. 마이크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이 “틱톡은 스마트폰에 침투한 정찰 풍선”이라고 말한 이유다.

호주 정부가 3일(현지 시간) 안보 위험을 이유로 연방 공무원 등이 사용하는 모든 기기에서 틱톡 사용을 금지했다. 시드니=AP 뉴시스
호주 정부가 3일(현지 시간) 안보 위험을 이유로 연방 공무원 등이 사용하는 모든 기기에서 틱톡 사용을 금지했다. 시드니=AP 뉴시스


● ‘저커버블’ 터뜨린 틱톡
틱톡이 미 정치권 최대 화두로 떠오른 데에는 실리콘밸리의 입김도 작용했다. 국가 안보 문제를 연구하는 제이콥 헬버그 미 스탠퍼드대 지정학·IT 센터 고문은 최근 미 정부 기관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는데, 그는 격주로 의회에서 의원들을 만나 틱톡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했다.

헬버그는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였던 피터 틸과 비노드 코슬라 등 실리콘밸리 투자자들과 반중국 동맹인 ‘힐앤밸리포럼’도 결성했다. 미국의 기술 이익 보호가 명분이다. 이들이 최근 가진 비공개 만찬에는 IT 기업 임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열성적인 이유가 있다. 틱톡의 성장으로 미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이 큰 손실을 봤다. 광고시장 분석업체 인사이더 인텔리전트에 따르면 틱톡의 올해 미국 광고 수익은 전년 대비 36% 늘어난 68억3000만 달러(약 8조96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만약, 틱톡이 미국에서 사업을 키우지 않았다면 구글(유튜브)과 메타(페이스북·인스타그램·왓츠앱) 등 미 빅테크 기업들의 몫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틱톡은 중국이 미국에서 수행한 가장 강력한 스파이 작전”이라고 언급한 헬버그는 구글 정책보좌관 출신이다.

모건스탠리는 미국에서 틱톡이 금지되고, 고객들 틱톡 이용 시간의 절반을 메타가 흡수하면 2024 회계연도 주당순이익(EPS)을 7% 또는 1달러 추가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직전 분기 메타의 EPS는 1.76달러였다.

틱톡이 흥행할 때마다 메타(페이스북)의 타격이 컸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틱톡의 성장과 메타의 저조한 수익을 비교하면서 ‘틱톡이 저커버블(저커버그+거품)을 터뜨렸다’고 분석했다. 당시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는 틱톡이 최대 경쟁자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저커버그는 그동안 지속해서 틱톡의 검열 문제를 비판해왔다. 2019년 10월 저커버그는 미 조지타운대 연설에서 틱톡을 두고 “이 소셜미디어가 우리가 원하는(자유를 상징하는) 인터넷의 모습인가”라고 되물었다. 페이스북이 Z세대 고객을 한창 뺏기던 시기였다.



● 틱톡과 똑 닮은 뉴스 앱
그런데, 틱톡은 빅테크 공룡들이 자리 잡고 있던 미국을 어떻게 공략했을까. 여기에는 실리콘밸리 진출을 꿈꾼 중국 청년이 있었다.

2010년 크리스마스에 중국인 프로그래머 장이밍(당시 27세)은 영화 ‘소셜 네트워크(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스토리를 담은 영화)’를 보고, 별 5개 만점에 4개를 줬다. 사업가였던 장이밍은 영화를 보면서 실리콘밸리 기업을 동경했다.

그는 부동산 검색 사이트 ‘99팡’을 운영 중이었는데, 지하철에서 신문 읽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온라인 뉴스 서비스였다. 장이밍은 2012년 초 ‘바이트댄스’로 회사 이름을 짓고 새롭게 시작했다. 그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페이스북을 만든 저커버그처럼 사람과 정보를 연결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 20명 넘는 중국인 투자자들이 “알리바바, 바이두 같은 대형 기업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며 외면했을 때, 미국 투자자 맷 후앙이 나타났다. 후앙은 “아이디어는 회의적이지만 장이밍에게 반했다”며 초기 투자를 진행했다. 장이밍은 유머 공유 플랫폼 ‘네이한돤즈’와 인공지능 뉴스 앱 ‘진르터우탸오(오늘의 헤드라인)’를 선보였다.

뜬금없이 옛이야기를 꺼낸 것처럼 보이지만, 틱톡은 진르터우탸오에서 시작됐다. 장이밍은 진르터우탸오를 ‘AI를 활용해 모든 사용자가 매 순간 자신만의 첫 뉴스 페이지를 갖게 만드는 앱’이라고 소개했다. ‘극강의 개인화 플랫폼’의 출발점이었다.

틱톡과 뼈대가 거의 같다. 이 뉴스 앱에는 회원가입이 필요 없다. ‘정치, 경제, 국제 등 관심 있는 뉴스에 체크해주세요’라고 요청하지도 않는다. 기사만 제공한다. 이용자는 기사를 읽거나, 다른 뉴스로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AI가 개별 기사에서 얼마나 머무는지, 특정 단락에 멈춰있는지 등을 연구해 기사 추천을 시작한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많이 쓸수록 성능이 좋아진다. 알고리즘이 똑똑해질수록 고객이 늘어난다. 선순환이다. 뉴스 추천 앱은 출시 4개월 만에 하루평균 사용자 100만 명을 돌파했다.

앱이 잘 나가자 부정적인 여론도 생겼는데, 이 역시 틱톡과 비슷하다. “유명인 가십, 폭력 같은 뉴스만 제공해 사람들을 오래 묶어둔다”는 비판이었다.

AP 뉴시스
AP 뉴시스


● ‘중국 저커버그’의 ‘아메리칸 드림’
2016년 초 해외 진출을 고민하던 장이밍 눈에 립싱크 앱 뮤지컬리(Musical.ly)가 들어왔다.

중국 창업가들이 만든 이 립싱크 앱은 당시 미국 10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장이밍은 바이트댄스에 뮤지컬리 같은 립싱크 앱을 개발하는 ‘프로젝트 X’를 가동했다. 서비스명은 ‘더우인’으로 지었다. 앱을 켜면 짧은 동영상이 나오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위로 올리면 다음 영상이 나온다. 맞다. 틱톡이다.

장이밍은 경쟁사가 보유한 1억 명의 사용자 데이터(특히 미국)를 원했다. 뮤지컬리에 인수합병(M&A)을 제안했다. 2017년 11월 뮤지컬리는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에 회사를 넘기기로 했는데, 2가지 조건을 단서로 달았다. 더우인의 이름을 변경할 것과 마케팅에 10억 달러를 쓰는 것이었다. 바이트댄스 직원들은 영어로 된 서비스명을 고민하다가 아시아, 남미 등 언어와 관계없이 같은 방식으로 발음이 가능한 ‘틱톡’으로 정했다.

다음 해 8월 더우인과 뮤지컬리가 틱톡으로 통합됐다. 바이트댄스는 AI 뉴스 앱의 ‘비밀 레시피(알고리즘)’를 틱톡에 장착하고 미국 10대들의 개별 취향을 공부시켰다.

동시에, 뮤지컬리를 살 때 약속했던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빅테크 기업들 중에 틱톡에서 광고비를 안 받은 곳이 없었다. 이때만 해도 틱톡이 최대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틱톡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와 자주 비교되는데, 사실 근본적으로 속성이 다르다. 기존 소셜미디어가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틱톡은 오로지 이용자의 취향과 관심에 집중한다.

예로, 페이스북을 이용하려면 회원 가입, 친구 맺기(팔로우)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익숙해지고, 빠져드는 데 상대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서비스에서는 종종 원치 않는 (직장 상사의) 콘텐츠가 사용자 화면에 덮기도 한다. (그래서 중독성이 덜한 편이다)

틱톡은 관계보다는 취향, 재미 중심의 플랫폼이다. 회사는 가입자들이 올린 무수한 콘텐츠들을 수백, 수천 개의 하위문화로 분류한다. 춤·노래부터 코로나19, 프랑스 연금 개혁 이슈, 특정 책의 서평 모임까지 없는 게 없다.

그다음, 사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추천 알고리즘이 찾아준다. 고객이 이용하는 ‘시점’의 기분과 관심, 취향에 맞춰 동영상(하위문화)을 제공해주는 점이 핵심이다. 사람이 아니라, 순수한 관심의 연결이다. 중독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바이트댄스는 뮤지컬리에 자체 알고리즘을 탑재한 뒤 고객들이 앱에 머무는 시간이 2배로 늘어났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현재 틱톡의 전 세계 이용자는 약 15억 명에 달한다. 바이트댄스는 지난해 120억 달러(약 15조4000억 원)를 벌었다. 저커버그를 꿈꾸던 장이밍의 ‘아메리칸 드림’이 현실이 됐다.

지난달 22일 미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자말 보먼 미국 뉴욕주 하원의원(가운데)과 틱톡 크리에이터들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미 의회의 규제법안에 항의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지난달 22일 미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자말 보먼 미국 뉴욕주 하원의원(가운데)과 틱톡 크리에이터들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미 의회의 규제법안에 항의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 호랑이와 뚱뚱한 고양이
틱톡은 알고리즘으로 우뚝 섰지만, 결과적으로 이 기술 때문에 수세에 몰렸다.

최근 미국에 이어 영국, 캐나다가 안보를 이유로 정부 소유 기기에서 틱톡 사용을 금지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도 나토가 지급한 기기에서 직원들이 틱톡을 내려받는 것을 막았다.

미 정부의 중국 기업에 대한 압박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중국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를 제재했고, 지난해 10월에는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 수출통제까지 발표했다. 전부 실체가 있는 하드웨어가 대상이었다. 중국의 무기 개발 등에 활용될 수 있다는 명분도 있었다. 이 때문에 제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크지 않았다.

이번에는 10대들이 춤이나 추는, 장난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 안보 논쟁 중심에 서 있다. 틱톡 이용자들은 의회 앞에서 시위하는 등 격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 정치권은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번에는 정말 칼을 꺼내 들 분위기다. 미국 국민 절반이 사용하는 중국 온라인 서비스를 제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의 ‘틱톡 축출’을 의미 있게 보고 있다. 린지 고먼 마셜펀드 기술 담당 연구원(전 백악관 고문)은 “지정학적인 고려 없이 미중 비즈니스 관계가 지속되기 어려워졌다”면서 “틱톡 전쟁은 한 시대의 종말을 나타낸다”고 지난달 WSJ에 전했다.

중국은 자유를 추구하며 타국 기업을 억압하는 미국의 모순적인 세계관을 비판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미국은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낮추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대만 위협을 그만둘 리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되돌릴 수도 없다. 국제 정세가 변했다는 의미다.

다웨이 중국 칭화대 국제안보전략센터(CISS) 소장은 미국과 중국의 상황을 동물에 빗댔다. 그는 “강대국이 호랑이처럼 강해지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이 호랑이가 되기보다 ‘뚱뚱한 고양이’가 되기를 희망한다. AI, 첨단 반도체 같은 중국 산업과 군사력을 강화하는 ‘이빨’을 뽑아내려는 것”이라고 했다.

미중 갈등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미국의 압박에 중국 역시 적대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몇 년간 치열한 힘겨루기가 불가피해 보인다”면서 “중성화를 원하는 호랑이는 세상에 없다”고 전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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