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통보를 이메일로 하다니ㅠㅠ”[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2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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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35)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오징어게임 같은 재택근무
견고했던 미국 노동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말 미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시작된 정리 해고가 최근 소매·제조 업계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기업인 맥도날드는 이달 3~5일(현지 시간) 미국 내 사무실을 일시 폐쇄하고 직원들에게 일시적 재택근무를 지시했다. 비대면으로 해고 통보하기 위해서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정리해고는 영업, 재무, 마케팅 등 부서 전반에 걸쳐 진행됐다. 회사에서 20년 이상 일한 보험 부서의 부사장급 임원도 해고 통보를 받았다.

맥도날드는 일부 직원의 급여를 삭감하고 보너스 등도 변경했다. 올해 2월 기준으로 맥도날드 전체 직원 수는 약 15만 명이다.

맥도날드의 구조조정이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크리스 켐진스키 맥도날드 최고경영자(CEO)는 메뉴 간소화, 인력 감축 등의 구조조정 계획을 일찌감치 예고했다. 그는 올해 1월 “일이 중복되고 혁신이 늦어졌다. 일부 작업이 이전되거나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부터 IT 회사들을 중심으로 대량 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맥도날드의 정리해고 대상은 수백 명가량으로 각각 1만 명 이상을 내보낸 메타, 구글에 비해 놀랄 만한 규모가 아니었다. 맥도날드의 구조조정이 주목받을 ‘뉴스’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맥도날드의 정리해고는 꽤 주목받았다. 해고 통보 방식 때문이다. 맥도날드 직원들은 내부 규정상 재택근무를 최대 주 2회 할 수 있다. 맥도날드는 비대면 정리해고를 위해 직원들에게 이보다 하루 더 많은 3일간의 재택근무를 명령하고, 이 기간에 본사에서 예정된 외부인들과의 회의도 취소하라고 했다.

그러자, 팬데믹(대유행)도 끝났는데, 굳이 정리해고를 비대면으로 단행했어야 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8일 “맥도날드가 직원들을 해고하기 위해 사무실까지 닫았다. 좋은 생각이었을까”라고 물음표를 던졌다.

직원들은 집에서 머무는 동안 이메일과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지 않았을까. 굉장히 긴장되는 재택근무였을 듯하다.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았다고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가까운 동료가 더 이상 안 보일지 모른다. ‘오징어게임(넷플릭스 시리즈)’이 따로 없다.

일러스트 김남복 기자 knb@donga.com
일러스트 김남복 기자 knb@donga.com


● “신종 피싱인 줄 알았어요”
2020년 4월 WSJ은 “여행 관련 스타트업인 트립액션즈가 처음으로 다수의 직원에게 비대면으로 해고를 통보했다”고 전했다. 트립액션즈는 2020년 3월 줌(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전 직원의 25%가량인 300명의 직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수년 동안 회사에 헌신한 직원에게 이메일 한 통으로 해고 소식을 보내는 것이 잔인해 보일 수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코로나19가 한창 확산할 때는 이메일이나 전화로 소식을 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있던 가족도 못 만나는 시기였다.

아리엘 코헨 트립액션즈 CEO는 해고 방식에 대해 논란이 일자 “화상회의로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끔찍할 수 있다”면서도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사실, 비대면 대량 해고는 한국에서 훨씬 먼저 있었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미 사모펀드 론스타는 2004년 2월 27일 오전 3시에 외환카드 해고 대상자들에게 “명퇴를 신청하지 않으면 정리해고하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었다)

미국 직장인들은 경제활동이 정상화되고, 최소 주 1~2회 사무실로 출근하는 현 상황에서도 기업들이 ‘비대면 해고 통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구글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제러미 조슬린은 올 초 본인이 회사에서 잘렸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는 새벽 5시 30분에 개인 메일함에서 이를 확인했다. 처음에는 ‘피싱(사기)’을 떠올렸다. 경기침체로 IT 업계가 인력 감축에 돌입한 것을 악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메일은 “해고자 전용 웹사이트로 접속해 아이디를 설정하라”고 안내했다. 조슬린은 불안한 마음에 회사 이메일을 확인하려 했다. 접속이 되지 않았다. 그는 회사에서 20년을 보낸 베테랑이었지만, 회사와 헤어지는 순간만큼은 지극히 평범했다. 다른 1만1119명의 해고자와 똑같은 이메일 통보를 받았다. 조슬린은 “이메일 내용에 모욕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복스미디어(VOX)에서 근무하던 케렌사 카데나스도 ‘비대면 해고’의 희생자 중 한 명이다. 1월 재택근무 중이던 카데나스는 슬랙(업무용 메신저)을 열었다가 욕설로 가득 찬 메시지를 받았다. 방금 회사서 잘린 동료의 연락이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이메일을 확인했다. 곧바로 메신저를 켜고 동료에게 답장을 적기 시작했다. 키보드를 꾹꾹 눌러 욕설을 채워나갔다. 그 역시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뉴욕타임스는 1월 “정리해고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경험 중 하나로 연구에 따르면 이혼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면서 “원격으로 정리해고를 하다 보면 회사가 실수할 수 있고, 조직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해 11월 트위터를 인수한 직후 성급하게 대량 정리해고에 나섰다가 구설에 올랐다. 트위터는 한밤중에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해고 사실을 통보했는데, 일부 필수인력까지 포함된 것을 깨닫고 뒤늦게 복귀를 간청했다.

올해 1월 한 구글 직원이 업무용 이메일 접속이 막힌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찍어 올렸다. 이 직원은 비대면 해고 통보를 받은 1만2000명 중 한 명이었다. (틱톡)
올해 1월 한 구글 직원이 업무용 이메일 접속이 막힌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찍어 올렸다. 이 직원은 비대면 해고 통보를 받은 1만2000명 중 한 명이었다. (틱톡)


● 페이스타임(영상통화) vs. 페이스타임(대면)
비대면 해고를 ‘재택근무’처럼 새로운 업무 환경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재택근무자들이 혼재된 현 상황에서 대량 해고를 전부 대면으로 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비대면 해고가 덜 창피해서 좋다”는 일부 직원도 있었다.

소비재 회사에 다니던 신시아 황은 2월 사무실 출근과 재택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화상통화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당시, 사무실에 있던 다른 해고자들은 대면으로 같은 이야기를 듣고 출입증을 반납했다.

황은 “사무실에서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짐을 싸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했다”면서 “해고당하려고 사무실로 나가는 건 좀 이상하지 않으냐”고 했다.

‘이메일 정리해고’가 조직의 안정성을 빠르게 되찾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일부 인사 담당자의 의견도 있다. 힘든 소식을 단체 이메일로 한 번에 전달하면, 비(非)해고자들은 두려움을 금방 떨칠 수 있다. 해고자와 비해고자를 빠르게 나누는 편이 낫다는 설명이다.

조직 혁신 및 조직 행동 분야의 권위자인 로버트 서튼 미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책 ‘또라이 제로 조직’ 저자)는 “3년 전에는 (비대면 해고가) 특이한 처벌 같다고 말했겠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업무나 조직 문화가 극적으로 변해서 혼란스럽다”고 했다.

미국의 직장인들은 ‘카톡 이별’ 같은 비대면 해고보다, 상사의 얼굴(또는 인사팀)을 마주한 상태로 해고 소식을 듣고 싶다고 밝혔다.

여론조사기관 서베이몽키가 1월 미 직장인 98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67%가 대면 해고 통보를 선호했다. 11%는 이메일로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답했고, 7%는 화상회의를 택했다. 서베이몽키는 “일부 비대면 해고를 원하는 직장인도 있었지만, 다수는 대면으로 통보받기를 희망했다. 심지어, 재택근무자도 대면 해고를 선호했다”고 했다.

올해 초 1만8000명을 자른 아마존은 이메일로 정리해고를 진행했지만, 해고자들이 상사나 인사 담당자와 직접 대화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픽사베이


● 회사와 직원의 이별 공식
전문가들은 해고 통보 방법보다 전달 내용에 신경 쓰라고 조언한다.

리더십 전문가인 에리카 다완은 “작별 이메일에 각 직원이 회사에서 공헌했던 일들과 회사와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는 연락처 등을 담으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전했다. 직원에게 회사의 마지막 인상을 잘 남기라는 설명이다.

사실, 어떻게 헤어지든 이별은 아프다. 차라리 해고자를 신중히 선택하는데 집중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해고자 선정에는 예나 지금이나 ‘성과’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시대를 이끄는 IT 기업도 해고자를 선정할 때는 구식을 따른다.

NYT는 “메타와 아마존은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스택랭킹’을 활용해 저성과자들을 가장 먼저 해고 대상자로 찍었다”고 전했다. 스택랭킹은 직원들의 성과를 점수나 등급으로 환산해 평가하는 GE의 인사평가 방식이다. 미국기업 역사상 최고의 CEO로 꼽히는 잭 웰치 전 GE CEO가 1980년대에 이를 대중화시켰다.

물론, 과거처럼 성과나 연공 서열만 보는 것은 아니다. WSJ은 “과거에는 (해고자를 고를 때) 성과나 근속 기간이 주요 고려 대상이었는데, 최근에는 보유 기술이나 직무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난달 전했다.

일부 해고자가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내가 살아남은 동료보다 못한 게 뭐가 있느냐”고 항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사 컨설팅사인 PGHR컨설팅의 필리스 하트만 대표는 “엄격한 기준 없이 다수를 해고하면, 불만을 품은 일부 직원이 법적으로 대응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했다. ‘소송의 나라’ 미국답다. 메타나 아마존이 해고자를 선별하는데 1980년대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도 이러한 분쟁을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차라리 법적 대응이 나을 수 있다. 일부 회사들은 퇴사자의 ‘복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장 큰 피해는 기밀 등 ‘데이터 유출’이다.

글로벌 보안업체 사이버헤이븐은 직원들이 퇴사 직전에 데이터를 가져갈 확률이 평소보다 69%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난해 9월 보고서에서 밝혔다. 특히, 해고되기 전날 데이터 전송이 2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해고 당일에는 109% 증가했다. 이들이 가져간 데이터 중 절반 가까이(45%)가 민감한 고객 데이터였다.

글로벌 사이버 보안기업 시만텍의 보안 연구원 딕 오브라이언은 “해고자의 데이터 유출이 회사가 보안에 신경 쓰기 어려운 상황(구조조정을 해야 할 만큼 재무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발생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분석했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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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 회사들의 정리해고
최근 미국에서 ‘비대면 해고’가 주목받은 이유는 그만큼 잘린 사람이 많아서다.

지난해 말 미국 IT 관련 업계는 15만 명 이상을 해고했는데, 올해 초에는 더 많은 책상이 비워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1만1000명을 자른 메타는 최근 1만 명을 더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2023년을 ‘효율성의 해’라고 지칭했다.

구글의 알파벳(약 1만2000명 해고)과 아마존(2만7000명), 델(6600명), 디즈니(7000명) 등 다수의 기업이 구조조정에 한창이다.

실리콘밸리의 구조조정 칼바람을 두고 ‘화이트칼라 경기 침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통상 경기가 안 좋아지면 생산직 근로자인 ‘블루칼라’가 타격을 입는 게 일반적인데, 반대의 상황이 나타난 것. 최근 미국 경매 사이트에는 책상, 소파, 커피머신 등 트위터 본사에서 쓰던 물품 630개가 나와 주목받기도 했다. 트위터를 상징하는 ‘파랑새 조형물’도 포함됐다.

사람이 잘리는 판국에 사무실에 ‘안마의자’가 남아 있을 리 없다. 메타는 최근 직원들에게 제공하던 무료 세탁 및 드라이클리닝 서비스를 중단했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구글은 간식으로 채워진 휴식 공간을 일부 폐쇄했다. 경영진은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환경 핑계를 대다니.

그동안 구글의 ‘특전’이 좀 과하긴 했다. 미 경제 매체 패스트컴퍼니가 2019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은 전 세계 사무실에 말린 해초, 칠면조 육포, 콤부차 등으로 채워진 1300개의 휴식 공간(마이크로 키친)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IT 회사들은 왜 이렇게 직원을 많이 자른 것일까. 향후 경기에 대한 우려와 이익 감소의 영향도 있지만, 기업들 형편이 당장 어려워서는 아니다. (코로나19 확산 기간에 많은 돈이 풀리면서 IT 기업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메타의 소프트웨어 채용 담당자였던 에린 썸너는 구직자들에게 회사의 빠른 성장을 자랑하곤 했다.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회사의 가치가 1조 달러(약 1300조 원)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직원들 사이에서 정리해고 소문이 돌았을 때 “회사가 은행에 저금해 놓은 현금이 400억 달러(약 53조 원)가 넘는다며 별일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막상 썸너가 해고자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그는 “무엇도 보장할 수 없다. 난 세계에서 (재무적으로) 가장 안전한 회사에서 해고됐다”고 한탄했다.

픽사베이


● ‘포켓몬 카드’ 모으기
팬데믹 동안 필요 이상으로 사람을 많이 뽑은 것이 문제였다. 2010년 이후 IT 업계는 매년 10만 명씩을 채용했다. 지난해에는 무려 26만 명이나 뽑았다. 미 테크 분야 인력 컨설팅업체인 컴프티아는 “지난해 IT 업계에 채용된 인원은 2000년 이후 연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고 평했다. 많이 뽑고 많이 자른 셈이다.

메타는 최근 3년 동안 직원 수가 2배로 늘었고, 주식 거래 플랫폼 로빈후드는 2020년과 2021년에 직원 수를 6배로 확대했다.

디자인 소프트웨어 회사 캔바의 애이미 슐츠 인사팀장은 “2021년 구인·구직 플랫폼 링크드인에서 개발자 채용 공고(34만2586명)보다 IT 회사들의 인사팀 채용 공고(36만4970개)가 더 많았다”고 했다. 기업들이 인사 담당자를 앞다퉈 늘릴 만큼 채용 열기가 뜨거웠다. NYT는 이에 대해 “IT 회사들이 몇 년 동안 정말 흥청망청 사람을 뽑았다”고 전했다.

채용 담당자들을 지나치게 많이 뽑아서 관리가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까지 메타에서 채용 담당자로 일한 메를린 마차도는 7일 WSJ에 “회사에서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고 강조했다. 마차도만 ‘월급루팡’이었던 것은 아니다. 소셜미디어에는 일하지 않고 월급을 받고 있다는 인사팀 직원들의 인증이 이어졌다. 일부는 이 게시물 때문에 회사에서 해고당하기도 했다.

페이팔의 임원이었던 키이스 라보이스는 당시 대형 IT 회사들의 고용 경쟁을 “일종의 ‘허영심 지표’”라고 비판했다. 그는 “IT 기업이 더 잘 나간다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사람을 많이 뽑았다. 다른 회사에 인재를 뺏기지 않으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메타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그들은(IT 기업들은) 마치 우리를 ‘포켓몬 카드’처럼 비축하려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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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루 같은 채용 공고
그래도 지난해까지는 재취업이 어렵지 않아 고용 시장 분위기가 어둡지 않았다. 실제로, 몇 개월 치 월급을 받고 재취업하려고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도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국의 노동시장이 빠르게 식었다. 숫자만 봐서는 현재의 분위기를 알기 어렵다. 미국의 IT 개발자 실업률은 2.2%로 여전히 낮다. 해고된 기술자들이 다시 어딘가로 유입되고 있다는 의미다.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WSJ은 “IT 개발자들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이나 비(非)기술 기업의 개발직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9일 전했다. 그동안 구글, 메타와의 채용 경쟁에서 밀린 유통, 제조 기업들이 개발자들을 뒤늦게 뽑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으로는 눈높이를 낮춰도 재취업이 힘들 수 있다. IT, 금융사들뿐만 아니라, 소매 및 서비스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확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맥도날드가 대표적이다.

물류기업 페덱스도 최근 글로벌 관리 직원의 10% 이상을 해고했다. 미국에서만 1만2000명을 잘랐다. 완구업체 하스브로 역시 전 직원(글로벌)의 15%를 자를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해고된 직원들이 급변한 분위기를 이미 체감하고 있을지 모른다.

미 텍사스주에 사는 브룩 윌레몬은 경영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채용 공고를 보고 500곳에 지원했다. 그런데, 아무런 답장을 받지 못했다. 윌레몬은 “신기루처럼 느껴졌다”고 표현했다. 기업들이 채용 공고는 유지하고, 실제로 뽑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광고비를 내고서라도 채용 공고를 내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 ‘회사가 성장하고 있다(경기가 어려워도 우리는 채용 중)’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채용 공고로 이력서들을 추려놓으면, 내부 직원이 갑작스럽게 그만뒀을 때 빠른 채용도 가능하다. 여러모로 ‘취준생’만 속이 탄다.

게티이미지


● 재택근무 대신 인도에서 김 대리 뽑기
미국 노동시장의 변화에 ‘경기’ 이외의 복병도 있다. ‘일자리 아웃소싱’이다. 급격한 임금 상승이 부담된 일부 미 기업들이 인도 등 나라 밖에서 채용을 늘리고 있다.

하청기업을 둔다는 의미가 아니다. 글로벌 기업도 아닌데 해외에서 사람을 뽑아 일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채용 플랫폼 딜은 “지난해 기업들의 자사 서비스 이용(해외 채용)이 평년보다 2배 이상으로 늘었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데에는 IT회사 직원들이 그토록 선호하는 ‘재택근무’가 영향을 미쳤다. 기업들이 재택근무와 해외 채용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미국인사관리협회의 한 직원은 지난해 버지니아주 사무실 대신,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근무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협회는 원격근무를 허용하는 대신, 인도에 있는 사람을 뽑았다. 인도 직원의 원격근무로 인건비의 40%를 절약했다.

지난해 8월 미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조사에서 미 기업 임원들의 7.3%가 “원격근무 때문에 해외 채용을 늘리게 됐다”고 답했다.

해외로 업무를 이전하는 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수의 기업이 임금이 낮은 곳에 제조나 일반 사무를 맡겨 비용을 아꼈다. 인도, 중국에서 콜센터를 운영하는 미국 기업도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 같은 고급 일자리를 해외로 옮기기 시작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미 텍사스주 오스틴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금융사 큐투(Q2)는 지난해 직원 90명을 멕시코에서 채용했다. 멕시코 직원들은 집에서 제품 설계와 엔지니어링, 프로젝트 관리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회사는 “전체 직원의 20%가 현재 해외에 있다. 주로 인도와 멕시코에 있는데, 해외 직원을 더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큐투처럼 미국에서 사무직의 해외 이전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니콜라스 블룸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미국 IT 개발, 인적자원 일자리의 10~20%가 10년 안에 해외로 이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재택근무 하고 싶다는 말이 쏙 들어갈 만한 소식이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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