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 흐드러진 ‘천년학’의 마을
예술적 영감 부르는 봉우리들

○‘천년학’의 무대, 선학동 유채마을

선학동에서 2.5km가량 떨어진 진목마을에서 태어난 소설가 이청준이 이 마을의 풍광을 보고 스토리를 불어넣었다. 그는 ‘선학동 나그네’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선학동에 밀물이 차고 산이 학으로 변신할 무렵, 남도의 소리꾼인 늙은 아비가 눈먼 어린 딸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 소리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어느덧 소리꾼 부녀가 날아오르는 듯한 학과 함께 소리를 하게 되자 선학이 소리를 불러내는 것인지, 소리가 선학을 날게 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경계에 이른다. 이른바 득음(得音)의 경지다.

영화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선학동은 이후 유채마을로 더욱 유명해지고 있다. 마을 주변 논밭과 산자락이 봄만 되면 노랗게 물든 유채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유채꽃밭은 30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는 규모인데, 길이 산책하기 좋도록 잘 다듬어져 있고 중간에 쉬어 갈 수 있는 정자도 마련돼 있다. 정자에서 바라보면 유채꽃밭이 득량만의 쪽빛 바다와 어울려 몽환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장흥 지키는 스핑크스 산

4월 하순부터 5월 중순까지 펼쳐지는 진분홍빛 꽃밭 길을 거닐다 보면 이곳이 ‘천상의 화원’이라고 불린다는 데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올해는 철쭉이 일찍 만개해 지금 방문하면 진하디진한 꽃빛깔을 놓친 아쉬움이 있을 수 있지만, 주변 경관이 충분히 보상해준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곰재 능선까지 걸어서 올라가면 북쪽으로 1.5km 남짓 떨어진 거리에 제암산의 정상이 보인다. 정상은 임금 제(帝)자 모양의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이가 30m 정도 되는 바위가 3단 형태로 서 있는데, 널찍한 바위 꼭대기는 수십 명이 너끈히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크기다.
이 바위를 향해 주변의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과 봉우리들이 공손히 절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래서 이 바위를 임금바위, 즉 제암(帝巖)이라고 부른다. 천기(天氣)가 뭉친 바위는 신령한 기운이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이곳 사람들은 이 바위를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라는 의미로 ‘제암단’이라고 부른다. 가뭄 때면 바위 기운에 기대 비를 불러들이기 위해서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이다.
곰재 능선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사자산(666m)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사자산은 제암산, 억불산과 함께 장흥의 삼산(三山)으로 불린다. 사자산은 위엄 서린 표정으로 장흥읍을 굽어보고 있는 형상이어서 ‘장흥을 지키는 스핑크스’라고 불리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엔 일본 후지(富士)산을 빼닮았다고 해서 일본인들 사이에 ‘장흥 후지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사자산은 산 아래에서는 방향에 따라 여러 형상으로 보이지만, 곰재 능선에서 바라보면 우람한 사자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정상 서쪽의 사자 머리(사자두봉)에서 능선의 사자 등을 따라 사자 꼬리(사자미봉) 모습이 펼쳐지는데 마치 사자가 하늘을 우러러보는 듯한 모습이다. 사자두봉에는 산신제를 올리는 큰 바위가 제단처럼 마련돼 있고, 가을에는 사자 갈퀴처럼 산등성이가 누런 억새로 우거져 더욱 장관을 이룬다.
결과적으로 곰재 능선에서는 철쭉 축제를 즐기면서도 북쪽의 임금바위와 남쪽의 사자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氣) 체험 스폿(spot)’이 되는 셈이다.
○피톤치드 향과 장흥삼합 건강식

천관산은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봉우리들과 바위들이 불꽃 형상으로도 보인다. 동양의 음양오행론으로 분류하면 화(火) 기운이 강한 산에 해당한다. 이러한 산은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런 기운 때문일까,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한 장흥 출신 문인만 60명이 넘는다. 천관산 기슭에는 이를 기념하는 천관문학관(대덕읍 천관산문학길 301)이 있다.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이청준, 한승원 작가를 비롯해 송기숙, 김녹촌, 이승후 등 장흥 출신 작가들의 흔적이 전시돼 있다.
전남 남해에 있는 장흥을 여행하려면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최소 1박 2일은 잡아야 한다. 건강을 고려한 숙박지로는 억불산 자락의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가 있다. 장흥군이 운영 중인 이곳은 통나무주택, 황토주택, 삼나무 한옥 등 건강 체험이 가능한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40년생 이상의 아름드리 편백나무 숲이 조성돼 몸에 좋은 피톤치드가 가득하고, 편백소금찜질방에서는 힐링도 할 수 있다. 물론 예약은 필수다.


글·사진 장흥=안영배 기자·철학 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