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현진]지속가능한 식탁의 혁명, ‘플렉시테리언’의 미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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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DBR 편집장
김현진 DBR 편집장
“어떤 계기로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채식 식당과 관련 식단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국내 플랫폼 ‘채식한끼’는 가입 시 이와 같이 채식에 대한 입문 계기를 묻는다. 집계 결과, 가장 많은 응답자가 거론하는 키워드가 ‘넷플릭스’란 점이 흥미롭다. 플랫폼 운영진은 “공장식 가축 사육 시스템을 생생한 다큐멘터리로 보게 된 사람들이 잔인성에 놀라 육식 자체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채식은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특히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 소비자 사이에 관심이 급등한 소비 키워드로 꼽히고 있다. 넷플릭스와 반려동물 수요가 특히 이 세대 사이에서 크게 늘었다는 사실도 채식 수요를 높이는 데 기여한 증거가 될 만하다. 이와 더불어 코로나발 팬데믹 사태를 촉발한 근본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환경 위기에 대한 경각심과 건강에 대한 우려 역시 채식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특정 세대 사이에서 특히 관심이 높지만, 채식 선호 현상은 사실 세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시대적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다. 대표적 낙농 국가인 네덜란드에서도 국민의 28%가 ‘육류 소비가 없는 사회를 희망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되기도 했다. 유럽의 채식 관련 비영리단체 ‘프로베지’가 실시한 이 조사에선 ‘다음 세기에는 동물이 더 이상 식량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 응답자가 23%에 달했고 약 25%가 대체육을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꼽기도 했다.

이런 시기, 엄격한 수준의 채식을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간헐적으로나마 채식과 그에 담긴 철학을 실천하려는 ‘플렉시테리언’이 코로나 시대를 상징하는 신인류이자 시대적 산물로 부상하고 있다. ‘flexible(융통성 있는)’과 ‘vegetarian(채식주의자)’의 합성어로 유연하게 채식을 실천하는 이들은 특히 채식 인구 및 관련 산업 확대에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대학내일 20대 연구소가 국내 MZ세대 9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27.4%가 간헐적 채식, 즉 ‘플렉시테리언’을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이미 2년 전부터 소비자의 36%가 스스로를 잡식성(53%)과 구분되는 ‘플렉시테리언’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을 겨냥한 샐러드 배송 서비스, 대체육 개발 등 푸드테크 비즈니스 역시 더욱 확대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전염병 대유행은 인류의 식량 체계 변화에 변곡점이 됐다. 대표적 사건이 1348년 발생한 흑사병 대유행이다. 인구 감소로 수요가 줄고 농산물 가격마저 하락해 유럽이 농업 공황기에 접어들었을 때 작물 농사를 포기하고 축산업으로 전환한 농민이 늘어난 것이 유럽 축산업 발달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코로나19발 팬데믹은 반대로 동물복지, 환경, 건강 등의 화두를 염두에 두고 인류가 의식적으로 채식 기반으로 삶과 가치관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인류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우리의 식탁 위에서 이미 새로운 기회의 단서를 읽을 수 있다.



김현진 DBR 편집장 bright@donga.com


#식탁#혁명#플렉시테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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