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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란 모순[동아광장/이지홍]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22-01-28 03:00업데이트 2022-01-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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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대표 참여해 방만 경영 통제한다지만
이익단체인 노조의 대정부 영향력 강화될 것
노동이사는 국민에게 또 다른 리스크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도입된다. 이에 따라 36개 공기업과 95개 준정부기관은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얻거나 근로자 대표 추천을 받은 1인을 이사회와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노동이사제가 경영 투명성을 제고해 보다 좋은 경영 성과로 이어진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이사가 의사결정을 어렵게 해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거란 우려도 나오는데, 향후 노동이사제의 민간 부문 확대가 치열한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공기업 같은 공공기관을 흔히 ‘주인 없는 회사’라고들 한다. 노동이사제 입법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소수 경영진의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경영으로 인해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입법 배경을 밝혔다. 경영진을 제대로 감독하는 주인이 없으니 대리인 문제가 심하고, 따라서 근로자 대표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면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통제하는 효과를 본다는 게 정부·여당 논리의 요지라 볼 수 있다. 문제의식엔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노동이사제가 유효한 처방이란 주장엔 모순이 있다.

공공기관의 주인은 사실 국민이다. 엄연히 주인이 있는데 왜 없다고 할까. 주인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민간기업엔 대개 경영진 감시를 주로 담당하는 총수 일가나 기관투자가 같은 몇몇 ‘대주주’가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5000만 주인은 전부 평등하게 1인 1주씩 들고 있는 ‘소액주주’다. 경영진을 감시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데, 그렇다고 모두가 감시 행위에 매달릴 필요도 없어서 소액주주들은 서로에게 그 책임을 미루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가 불충분한 견제를 받는 경영진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인 것이다. 삼성전자의 주인들이 죄다 소액주주인 상황을 상상해 보라. 누가 그 막강한 경영진을 감독하려 하겠나.

국민들 스스로 정부와 공공기관을 감시하는 게 힘들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에선 그 역할을 선거를 통해 정치인들에게 위임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라고 해서 결코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눈앞의 선거만 바라보는 정치 이기주의와 포퓰리즘, 그리고 감시를 하는 정치인과 감시를 받는 공공기관의 암묵적 담합은 국민에서 정치와 정부로 이어지는 복층의 대리인 문제를 특히 풀기 어렵게 만든다. ‘탈모약 급여화’ 같은 황당한 공약이 좌우에서 쏟아지는데도 공공기관장들이 하나같이 조용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매출 280조 원을 올리며 영업이익 52조 원을 냈다. 600조 원 넘게 쓰면서 세수(稅收) 계산도 엉성하게 하는 정부는 새해 벽두부터 또 추경을 하겠다고 한다. 누구의 지배구조가 더 탄탄한지 묻는 건 난센스다. 이렇게 허술하기 십상인 정부 지배구조 아래서 정치인과 공무원을 움직이는 집단이 바로 ‘이익단체’다. 한국에서 독보적 입지를 다진 이익단체 하나가 노동조합이고,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의 본질은 결국 노조의 대(對)정부 기능 강화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사실이 있다. 노조 같은 대형 이익단체가 정부 의사결정에 특수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 기업에서 대주주가 경영진을 감독하는 상황과 흡사하단 점이다. 온갖 기업 지배구조 규제가 대주주의 우월한 정보와 무리한 경영권 행사에서 비롯되는 소액주주의 불공정한 손실 우려 때문에 생겨났다. 재벌개혁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주주의 ‘일감 몰아주기’가 그 대표적 불공정 사례인데, 그러고 보면 사실상 똑같은 폐해가 정부와 이익단체 관계에서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국가의 ‘눈먼 돈’이 이익단체(대주주)에 불투명하게 흘러가거나 그들의 일방적 관점이 소득주도성장같이 왜곡된 국정 운영으로 이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소액주주)들에게 돌아간다.

여당이 지적한 공공기관의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경영의 근본 원인은 낙후한 정부 지배구조다. 단순히 일부 경영진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한테 노동이사는 또 다른 대리인 리스크란 뜻이기도 하다. 그의 일탈을 제어할 사회 규범과 제도적 장치 역시 부족한 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그 어디보다 개혁이 절실한 곳들이 이번 규제의 대상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전력공사, 국민연금공단…. 노동이사제가 과연 개혁에 도움이 될까?

그러나 무엇보다 이해하기 힘든 건 정부와 여당의 앞뒤 안 맞는 오락가락 잣대다. 민간기업에 ‘공정경제 3법’을 밀어붙일 땐 대주주 의결권은 제한하고 소액주주 권리를 확대하자더니, 이제 와선 공공기관의 실질적 대주주나 다름없는 노조의 의결권만 공식화했다. 누굴 위한 정부인지 헷갈린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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