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권좌에 오를 때까지 계속될 가짜들의 행진”[석영중 길 위에서 만난 문학]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1-07-16 03:00수정 2021-08-1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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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1591년 어느 화창한 봄날, 러시아 차르 표도르 1세의 배다른 동생인 여덟 살 드미트리가 우글리치 궁궐 정원에서 날카로운 물체에 목이 찔려 죽은 채 발견됐다. 모스크바에서 파견된 진상조사단은 사고사로 사건을 종결시켰다. 그러나 항간에는 병약한 차르의 손위 처남이자 정권 실세인 보리스 고두노프가 차기 제위를 노리고 자객을 보내 드미트리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푸시킨, ‘러 대혼돈기’ 파헤쳐

17세기 익명의 화가가 그린 보리스 고두노프의 초상화.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1598년 차르 표도르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보리스 고두노프가 국민회의의 추대를 받아 황제로 등극했다. 고두노프는 기민한 두뇌와 뛰어난 정치 감각을 지닌 군주였지만 연속되는 재앙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무엇보다도 1601년부터 3년 동안 지속된 끔찍한 기근으로 러시아 인구의 삼분의 일이 아사(餓死)했다. 역병이 뒤따랐고 민심은 폭발 직전까지 갔다. 밖에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모스크바를 넘보았고 안에서는 대귀족들이 정통성을 이유로 호시탐탐 고두노프 축출 기회를 노렸다. 이때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는’, 즉 ‘참칭’하는 사나이가 홀연히 등장하여 민심을 현혹했다. 참칭자는 수도원에서 도망친 일개 수도사였지만 수려한 외모와 번드레한 언변을 앞세워 자신이 1591년 우글리치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태자 드미트리이므로 제위는 자신의 것이라 주장했다. 근거 없는 요설이었지만 참칭자는 도탄에 빠진 백성과 권력에 눈먼 귀족들, 그리고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폴란드 왕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해 왔다. 이미 파멸의 궤도에 들어선 러시아는 종말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외세의 침략과 봉기, 내란과 기근으로 인한 생지옥은 1613년 미하일 로마노프가 새 왕조를 시작할 때까지 지속됐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대혼돈기’라 부른다.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푸시킨(1799∼1837)의 ‘보리스 고두노프’는 대혼돈기를 소재로 하는 무수한 드라마와 오페라 중 하나다. 푸시킨은 황제에게 밉보이는 바람에 1824년 7월 수도에서 400km 떨어진 미하일롭스코예 마을로 추방당했다. 체제 개혁에 대한 젊은 지식층의 열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거기에 비례해 전제 정권의 탄압은 점점 더 강화되던 시절이었다. 흉흉한 시기에 천재 시인은 두메산골에 칩거하면서 권력의 본질을 파헤쳤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드라마 ‘보리스 고두노프’다. 참칭이라고 하는, 독특하게 러시아적인 현상의 밑바닥에 깔린 권력과 민심과 도덕성의 역학관계를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걸작이다.

러시아 역대 차르들이 대관식 때 썼던 모노마흐의 왕관.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이 왕관은 절대 군주가 지고 가야 할 도덕성의 짐을 상징한다. 사진 출처 모스크바 크렘린 박물관
“모스크바는 텅 비었군.” ‘보리스 고두노프’를 여는 첫 번째 대사다. ‘텅 빈 모스크바’의 이미지는 권력의 공백을 상징하면서 드라마 전체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백성이 황제에게 기대하는 것은 혈통과 도덕성이다. 황제는 태어날 때부터 몸속에 거룩한 피가 흐르는 성스러운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야 한다. 따라서 왕조의 피가 섞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왕조의 승계자를 살해한 고두노프는 황제가 될 수 없는 ‘가짜’ 황제다. 백성은 ‘가짜 황제’의 통치는 수용할지 모르지만 그에게 사랑과 신뢰는 주지 않는다. 고두노프가 최고 권력을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속들이 불행한 이유다. 도덕성이 결여된 권력은 그를 짓누르는 짐일 따름이다. “오, 모노마흐의 왕관이여, 너는 어찌 이리 무거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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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황제’를 갈망하는 민심

가짜 황제는 빈 권좌를 채워줄 진짜 황제에 대한 백성의 갈망을 촉발시킨다. 고두노프도, 그를 둘러싼 귀족들도 이 갈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진짜 황제가 어딘가 살아있다는 스토리는 허구지만 진짜 황제를 갈망하는 민심은 ‘팩트’라는 것을 그들은 간과한 것이다. 그들에게 백성은 그저 “진실에는 귀먹고 냉담하지만 황당한 이야기에는 좋아라 날뛰는” 우매하고 미신적인 족속일 뿐이다. 반면 민심의 향방을 정확하게 파악한 참칭자는 가진 것이라고는 세 치 혀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여론 덕분에” 권좌로 직행한다. 그러나 그 역시 백성들이 쳐놓은 도덕성의 엄정한 기준선은 넘지 못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드미트리 일파가 황궁으로 쳐들어와 고두노프의 어린 아들을 비롯한 일족을 살해하고 “드미트리 만세”를 외칠 때 백성은 싸늘한 침묵으로 응수한다. 백성의 시각에서 권좌에 오르기 위해 고두노프의 죄 없는 어린 아들을 살해하는 참칭자는 어린 황태자 드미트리를 살해하고 권좌에 오른 ‘가짜’ 황제 고두노프의 복제품이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백성이 예고하는 가짜의 무한 반복은 섬뜩하다. 부도덕한 황제 고두노프가 가짜 드미트리를 생겨나게 했듯이 부도덕한 가짜 드미트리는 또 다른 가짜의 출현을 초래할 것이다. 진짜가 권좌에 오를 때까지 가짜들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누가 진짜인지, 혹은 무엇이 진실인지조차 불분명해질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 역사는 그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 권좌를 차지한 참칭자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민중의 손에 처형당하고 그 자리에는 대귀족 반란 세력의 대표인 모사꾼 슈이스키가 올랐다. 농민 봉기와 외세의 침략으로 슈이스키의 치세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백성은 여전히 진짜 황제 드미트리가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었으며 향후 10년간 최소한 열 명이나 되는 참칭자가 등장해 그렇지 않아도 참혹한 민생을 더욱 깊은 수렁으로 몰아갔다.


검열 후 출간된 ‘최고의 작품’


민중은 부도덕할 수도 있고 어리석을 수도 있고 미신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는 도덕과 선에 대한 믿음이 뿌리내리고 있다. 바로 이 믿음 때문에 그들은 권력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권력을 조종하고 권력의 몰락을 초래하는 또 다른 권력이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 역사의 아수라장에서 시인이 건져 올린 잠정적 결론이었다.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푸시킨은 1824년 정치적 이유로 프스코프주의 작은 마을 미하일롭스코예로 추방된 후 역사 속 인물 보리스 고두노프를 등장시킨 동명의 희곡을 썼다. 미하일롭스코예의 푸시킨 기념관에 재현돼 있는 시인의 서재. 미하일롭스코예 푸시킨 기념관
푸시킨은 ‘보리스 고두노프’를 자기가 쓴 최고의 작품이라 손꼽았다. “한 국가의 역사는 시인의 것”이라 자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1825년에 완성된 이 드라마는 차르 니콜라이 1세의 검열에 걸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 6년 뒤 여러 군데 삭제와 수정을 거치고서야 가까스로 출간됐다. 절대군주가 이 드라마에서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일까. 도덕성일까, 아니면 민심일까.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러시아 차르 표도르 1세#드미트리#보리스 고두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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