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생긴 정신병, 없애려 하지 말고 적응을”

전채은 기자 입력 2021-06-14 03:00수정 2021-06-14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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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성 장애’ 진단 삽화가 이한솔씨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펴내
다양한 정신질환자들과 교류해와
‘리단’이란 필명으로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를 쓴 이한솔 씨.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는 도처에 널려 있다. 관련 책도 많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조언, 치료에 사용하는 약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정보가 쏟아진다. 그러나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병과 탈 없이 공생하려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0년 전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삽화가 이한솔 씨(31)는 ‘정신병자의 세계’를 탐구하며 이들이 원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고립감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에게 ‘정보만 주고 도망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어 만화를 그렸다. 최근엔 에세이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반비)를 펴냈다. 이 씨는 책의 초반부에 “정신질환이 가진 질병으로서의 위험성과 현실적인 파괴력을 강조하고자 ‘정신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정신질환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인 ‘정신병자’도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라는 맥락으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책은 ‘리단’이라는 필명으로 썼다. ‘리단’은 양극성 장애 치료를 위해 복용했던 리튬 성분의 약물 ‘리단정’에서 따왔다. 그를 11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에서 만났다.

“어느 날 정신질환 때문에 환청을 듣는 친구 앞에서 실없는 농담을 했는데, 자기 환청이 제 농담을 듣고 웃었다는 거예요. 이런 기이한 웃을 거리들이 자주 생기는 경험이 정신질환자들에게 무척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책에서 이 씨는 자신이 앓고 있는 질환뿐 아니라 신경증, 우울증, 조현병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폭넓게 다뤘다. 그럴 수 있었던 건 그가 여러 정신질환자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교류해왔기 때문이다. 2015년 트위터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과 정보를 나누던 그는 2016년 ‘여성 정병러(정신질환자를 이르는 조어) 자조(自助·스스로 돕는다) 모임’을 만들어 많은 정신질환자와 소통했다. 이 씨는 “제가 모든 정신질환자의 자조 집단이 돼 줄 수는 없겠지만 그들에게 자신의 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알려주는 것으로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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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을 앓는 가족이나 친구를 둔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까. 이 씨는 “문제는 병이 아니라 관계다. 평소 타인과 관계 맺을 때처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상대방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말했다.

과거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살하려 했던 사람은 자살 시도를 한 곳에 자기의 일부를 두고 온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일부를 어딘가에 두고 온 사람이 현실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합니다.”

그는 책의 첫 장에 “노화보다 빠르게 진화하는 병은 진절머리가 나지만, 병이 펼쳐주는 지평도 상상만큼 나쁘지 않다”고 썼다. 그가 트위터와 만화, 글 등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을 통해 동료 ‘정병러’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신병을 소거가 아닌 적응의 대상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정신병이 생기기 전의 삶을 치료의 목적으로 두면 실패하는 경험이 반복되며 회복을 포기하게 됩니다. 한번 생긴 정신병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죠. 병에 적응하고 병을 관리하는 삶을 상상해야 비로소 정신병에 맞설 수 있습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삽화가 이한솔#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양극성 장애#정신질환#정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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