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는 절벽에서 새끼를 떨어뜨릴까[서광원의 자연과 삶]〈34〉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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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흔히 듣는 얘기가 있다. 사자는 자기 새끼를 절벽에서 굴려 살아남은 새끼만 키운다고 말이다. 초원의 제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새끼도 강하게 키운다는 뜻이라 다들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사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사자들의 고향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 가 보면 정말이지 광활하기 그지없다. 개조한 랜드로버 차량으로 몇 시간을 달려도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사바나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넓이다.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절벽을 찾을 수 없다. 마치 바다 같은 초원에 어쩌다 작은 섬 같은 바위들이 솟아 있다. 사자들이 이런 곳을 좋아하긴 하지만 절벽이라 하기엔 너무 작고 아담하다.

사바나 주변으로 멀리 가면 더러 절벽 같은 지형이 간혹 나타나긴 하지만 이런 곳에는 대개 사자가 살지 않는다. 좋아하는 먹잇감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자들이 사는 곳에는 새끼를 굴릴 절벽이 없고, 설사 있다 해도 귀중한 새끼를 절벽에 굴리는 비정한 어미도 없다. 새끼를 절벽에서 굴리는 사자 얘기는 잘못된 것이다.

언젠가 지위 높은 분이 ‘중앙아메리카 밀림에 사는 호랑이’라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대로 인쇄되어 나온 것을 보니 내부에서도 이의가 없었던 모양인데 이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시아 밀림에는 호랑이가 살지만 아메리카 밀림에는 살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밀림의 왕’이라는 관용적인 표현에 영향을 받아 그런 것 같은데 어쨌든 아메리카 대륙은 호랑이 서식지가 아니다. 동물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게 또 있다. 30∼40년 정도의 수명을 가진 독수리나 솔개가 수명이 다할 때쯤 깊은 산속 절벽으로 가서 털을 다 뽑고 부리와 발톱을 바위에 가는 방법으로 완전히 거듭나 원래 수명의 두 배를 산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혁신을 얘기할 때 흔히 쓰고 지금도 공식석상에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아니라고 해도 철석같이 믿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언젠가 강의에서 “일종의 우화”라고 하자 “그럴 리 없다”며 강력하게 반박한 사장님도 있었다.

아마 이런 독수리나 솔개가 있었다면 새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다들 그곳으로 몰려가 샅샅이 관찰해 논문이나 책으로 냈을 것이다. 모두들 좋아하는 내용이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에 관한 논문이나 책이 단 한 편도 나온 적이 없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런 독수리나 솔개를 본다면 꼭 연락주시면 좋겠다. 세계적인 뉴스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사자#절벽#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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