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바이든의 ‘국내 외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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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위한 외교’는 美우선주의 변종?
국내-대외정책 결합 ‘분열 치유’ 분투 중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동맹을 강탈한다고 비판했는데, 본인이 대통령 돼선 트럼프 때 해놓은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익을 편취하는 그런 모습 아닌가.”(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미 간 방위비분담금 협상 결과를 두고 ‘편취(속여 빼앗음)’라고 폄훼하는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의 말본새와 인식수준이 저열하기 짝이 없지만 미국 정권교체 이후 새 행정부의 대외정책 행보에 대한 관전평으론 과히 틀리지 않아 보인다.

이제 갓 출범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책 재검토에 정신이 없기도 하겠지만, 요즘 바이든 외교안보팀은 트럼프 시절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남기고 간 유산을 고스란히 챙기거나 트럼프가 없었다면 못 거뒀을 과실들을 하나씩 따먹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는 그런 유의 지적이 나올 때마다 펄쩍 뛴다지만.

백악관이 최근 공개한 국가안보정책(NSS) 중간지침서는 세계 안보환경을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문을 연다. “우리는 세계가 75년 전, 30년 전, 나아가 4년 전 그때로 쉽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겨선 안 된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슈퍼파워로 부상하고, 냉전 종식과 함께 일극(一極)으로 우뚝 섰던 영광의 시기에 대한 짙은 향수와 함께 적어도 트럼프 이전으로라도 돌아가야 한다는 희망을 담았다.

바이든 외교는 트럼프 시절과의 단절, ‘새로운 길(new course)’을 강조한다. 바이든은 취임 직후 트럼프가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에 재가입하면서 미국의 국제사회 복귀, 동맹과 외교의 복원을 선언했다. 바이든이 표방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민주주의와 인권 같은 보편 가치를 내세우며 동맹과 다자협력을 중시하는 미국의 전통적 노선이다. ‘힘의 과시’뿐 아니라 ‘모범의 힘’으로 세계를 이끄는 리더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정책비전 곳곳에선 트럼프식 힘의 논리가 짙게 묻어난다. NSS 지침은 “전 세계 ‘힘의 분포’가 바뀌고 있다”며 현실주의 학파의 세력균형론을 동원해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위협을 설파한다. 선거 때 내건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을 정교화하고, 외교정책과 국내정책 간 전통적 구분마저 허물며 두 영역의 결합을 공식화했다. 바이든은 이미 백악관 국내정책위원회 책임자로 노련한 외교안보통을 기용하기도 했다. 앞으로 무역협상에서 미국 중산층의 이익을 우선시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동맹의 비용분담 원칙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지금 제 코가 석 자인 형편이다. 지난 대선이 남긴 후유증, 특히 미국 사회를 반 토막으로 가른 분열의 정치를 어떻게든 치유하지 않고선 어떤 대외정책도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미국이 호구냐’며 백인 중산층 유권자를 파고든 트럼프식 포퓰리즘 논리를 바이든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이든 행정부는 지금 국민을 향한 ‘국내용 외교’에 분투하고 있다. ‘국내정치는 국경에서 멈춰야 한다(Politics stops at water‘s edge)’는 초당적 외교 금언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그에게 급한 것은 국민을 상대로 한 직접 설득이다. 국익이 우선이고 중산층을 중시한다는.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론 ‘겸손과 자신감’을 앞세우고 미국의 소프트파워(문화·가치)를 무기로 매력 공세를 펴고 있다. 하드파워(군사·경제)를 바탕으로 원색적인 힘자랑을 하던 트럼프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지만 국익 극대화라는 외교의 기본이 달라질 리는 없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바이든#국내 외교#미국 우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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