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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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철희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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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6~2024-04-25
칼럼100%
  • [이철희 칼럼]윤석열 외교, 변주가 필요하다

    지난 주말 미국 하원에서 우크라이나·이스라엘·대만에 대한 안보지원 예산안이 통과됐다. 공화당 강경파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반대로 6개월이나 표류했던 이 예산안은 “연말이면 우크라이나가 패전할 수 있다”는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경고 끝에 하원 문턱을 넘었다. 그나마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이 없었다면 기약 없이 미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의 지원으로 우크라이나는 일단 한숨 돌리게 됐지만 상황은 여전히 암울하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5발 쏠 때 고작 1발로 응수하며 힘겨운 전쟁을 하고 있다. 그만큼 미국의 군사지원은 우크라이나 생존에 절대적이다. 다른 국가들의 지원액을 다 합해도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년은 유럽에는 ‘안보 각성의 시간’이었다. 각국은 방위비를 대폭 늘리고 의무복무제 도입도 추진하고 있지만 ‘유럽안보의 유럽화’는 요원하다. 당장 미군이 빠진 200만 유럽 병력은 허울뿐인 ‘포템킨 군대’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사령관은 미군 4성 장군이 맡아왔고, 유럽 군대는 그 지휘 아래 항공 지원과 정보까지 전적으로 의존했다. 유럽이 자체 방위력을 키우는 데는 최소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일본은 이런 유럽을 바라보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미일 간 동맹 결속의 기세는 예사롭지 않다. 미국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미국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함께한다”고 외쳤다. 지금껏 미국의 일방적 보호(protection)를 받던 일본이 이제 한 축을 맡아 함께 힘을 투사(projection)하게 된다고 미국 측도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으로선 ‘아시아 파트너 1강(强)’의 위상을 확보했다고 자부할 만하다. 일본의 미국 밀착은 거침없는 군사대국화와 맞물려 있다. 지난 2년간 방위비를 50% 늘린 일본은 2027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2%를 달성해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의 군사비 지출 강국으로 발돋움한다. 토마호크 미사일 400기도 도입해 반격 능력까지 확보할 예정이다. 아베 신조 때부터 걸어온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길을 쾌속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행보는 우리에겐 질시와 불안을 부르는 불편한 현실이다. 윤석열 정부도 북핵 위협에 맞서 확장억제 같은 한미동맹 강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국내적 반대를 무릅쓰고 대일관계 개선을 밀어붙인 끝에 한미일 3각 안보 협력도 확고히 했다.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쏴대고, 세계적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하는 터에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노선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쉽고 뻔한 길이었다. 특히 윤 대통령의 행보는 과감했지만 거칠었다. 미국 일변도 외교는 중국의 거센 반발을, 대일관계 급진전은 국내적 반감을 불렀다. 이번 4·10총선에선 야당 대표가 “왜 중국에 집적거리나. 그냥 ‘셰셰’ 하면 되지”라는 경박한 언사를 쏟아놓는데도, 민심은 오히려 정부여당에 박절할 만큼 인색했다. 정부가 자랑하는 외교적 성과가 묻힐 만큼 다른 정부 실책들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총선 참패에도 명시적인 공개 사과를 하지 않은 윤 대통령이다. 마음에 없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 하고 싶은 말은 기어이 하고야 마는 윤 대통령으로선 무엇보다 뚝심 있는 외교로 이룬 성과를 몰라주는 민심에 섭섭할지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도 외교정책만큼은 고집스럽게 밀고 나갈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많다. 하지만 주변을 살피지 않는 직진 외교로는 다가오는 초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 특히 연말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한국 외교는 험난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트럼프에겐 동맹도 돈 계산이 먼저다. 김정은과의 협상도 언제든 꺼내 쓸 와일드카드로 여긴다.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은 유연하고 정교해져야 한다. 단조로운 음악의 볼륨만 높이는 외교는 피로감을 낳을 뿐이다. 이념 편향적 가치외교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는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꽉 막힌 중국과의 외교적 소통부터 나서야 한다. 북한발 충돌 위기를 관리할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일본의 여전한, 오히려 퇴행하는 역사인식에는 할 말을 해야 한다. 일본은 미국과 손잡고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면서도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중일관계’에 대한 언급을 빠뜨리지 않는다. 북한의 도발을 맹비난하면서도 정상회담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한다. 당장 성과가 있을 리 없지만 그럼에도 소통 창구를 열어 두고 관리 차원의 접근을 중단하지 않는 일본 외교를 우리 정부는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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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한반도는 이미 ‘트럼프 태풍’ 영향권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이달 초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플로리다 마러라고 저택으로 찾아가 만났다. 오르반은 회동 후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끝내기 위한 매우 상세한 계획을 갖고 있더라”며 이렇게 전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복귀하면 한 푼도 주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전쟁은 끝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돈을 주지 않으면 유럽도 자금을 대지 못할 것이고 결국 전쟁은 끝난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내가 대통령이라면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공언한 트럼프다. 오르반의 전언대로라면 트럼프의 ‘24시간 내 종전’ 마법이란 결국 우크라이나 지원을 끊어 러시아와의 휴전 협상을 강제하는 매우 손쉬운 방법이다. 사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제물로 바치는 이런 트럼프식 해법은 이미 작동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포함한 안보예산 패키지가 미국 의회에 묶여 언제 처리될지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트럼프는 이미 그의 재집권 가능성만으로 세계질서를 흔들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벌써부터 트럼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라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각국이 부산하게 방위비를 늘리고 있지만 그간 사령부 조직과 전력, 정보까지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했던 유럽이 단기간에 자체 통합방위를 갖출 수는 없는 형편이다. 그런 한편에선 오르반 같은 ‘리틀 트럼프’가 친러시아 행보를 강화하며 유럽 내부의 분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트럼프의 판 흔들기는 유럽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트럼프-오르반 회동에 배석했던 프레드 플라이츠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비서실장은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나와 “트럼프가 북한 김정은과의 개인적 외교를 재개할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용 무기의 러시아 공급 중단을 설득하면 “중요한 성과가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북한과 러시아 두 독재자를 상대로 ‘3각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트럼프 2기 출범 후 북-미 협상 재개는 정해진 수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5년 전 트럼프와의 거래에서 쓴맛을 봤던 김정은이 쉽게 응할지는 미지수다. 그래선지 북한에 내줄 ‘선물’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VOA에 함께 출연한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부차관은 “북한은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다. 그런 인정이 모든 논의의 시작점이다”라고 했다. 북한을 인도 파키스탄 같은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함으로써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논의는 트럼프 2기 국방장관 후보 1순위로 거론되는 크리스토퍼 밀러 전 국방장관 대행이 최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북핵 현실론과 맞닿아 있다. 그는 북핵을 이미 ‘호리병 밖으로 빠져나온 지니’에 비유하며 “이젠 기대가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두고 협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핵 동결-제재 완화’ 협상론에 대해 “검토할 만하다”고 했고, 북핵을 용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군축협상론에도 “난 ‘왜 안 되느냐’에 찬성하는 쪽”이라고 했다. 트럼프 당선 가능성은 여전히 반반이다. 하지만 한반도는 이미 ‘트럼프 태풍’ 영향권에 들어섰다. 트럼프 1기를 돌아보면 그가 불쑥불쑥 던진 무모한 발상들이 실현된 것은 정작 많지 않다. 진짜 괴로운 것은 트럼프의 변덕과 기행, 예측 불가의 불확실성이었다. 트럼프 2기는 난폭한 질서 파괴, 극심한 가치 전복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 핵우산에 의존하는 우리로선 원칙과 가치 못지않게 냉정한 현실 인식 아래 유연성과 민첩성으로 무장해야 한다. 미국 대선은 7개월 남았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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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불안한 김정은 “대한민국 궤멸”

    북한 김정은의 대남 ‘제1의 적대국가’ 선언 이후 그 배경을 놓고 국내외 많은 전문가의 분석이 쏟아졌다. 자체 핵·미사일 개발 진전과 러시아와의 밀착에 따른 모험주의 발동, 내부 불만과 동요를 잠재우기 위한 체제 결속용, 나아가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을 내다본 전술적 카드 등 저마다 해석이 다양하다. 사실 그 모든 요인이 계산된, 자신감과 위기감 사이 어디쯤에서 내려진 전략적 선택일 테지만 뭔가 충분치 않다. 이런 분분한 논의 속에 북한의 노선 변경을 생존의 핵전략 차원에서 짚은 동아시아연구원(EAI) 하영선 이사장과 김양규 수석연구원의 이슈 브리핑 ‘북한의 대남 노선전환 바로 읽기’는 눈여겨볼 만하다. 이 글은 미국이 북핵 위협에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경고하며 맞춤형 확장억제 전략을 강화하는데도 그에 맞설 실질적 역량을 갖추지 못한 북한이 선택한 차선의 대응책이 바로 “대한민국의 궤멸”을 내세운 ‘북한식 맞춤형 핵위협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북한이 핵무장을 했다지만 보유 핵탄두가 미국의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기술적 한계도 분명한 처지에서 ‘공포의 균형’을 통한 상호 억제는 이뤄질 수 없다. 더욱이 미국은 전술핵탄두를 F-35 전투기에 탑재할 수 있는 신형(B61-12)으로 교체하는 등 한층 첨단화한 억제력을 구축했다. 그러니 대미 억제라는 북한 핵무기의 ‘제1사명’은 작동 불가능해졌고, 결국 ‘제2사명’에 매달리며 동족을 적국으로 겨냥했다는 진단이다. 사실 이런 대남 위협 전략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이미 30년 전 미국의 외과수술식 정밀타격 위협에 맞서 휴전선 일대에 밀집 배치된 장사정포를 들먹이며 “서울 불바다”를 위협했던 북한이다. 특히 김정은이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수십 년 통일 노선까지 폐기한 것은 제아무리 핵무기로 무장해도 정권 생존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군사적 현실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위기감이 전부는 아니다. 날로 격화하는 신냉전 기류에서 지금이야말로 판을 흔들 절호의 기회라는 호기로운 계산도 엿보인다. 나아가 한미 동맹을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에 빠뜨리려는 이간책도 숨어 있다. 연말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대남 위협 수위를 높일수록 한국에선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불신이, 미국에선 북핵을 사실상 용인하는 협상론이 고개를 들 수 있는 수상한 시절이니 더욱 그렇다. 당장 김정은의 거친 협박에서 ‘전쟁하겠다는 결심’을 읽었다는 미국 전문가도 있지만 그런 무모한 공멸(共滅)의 길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무력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다분하다. 그래선지 요즘 미국에선 한국의 과도한 대응이 자칫 확전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한국의 ‘몇 배 응징’을 말리되 조심스럽게 설득할 것을 주문하는 전문가도 있다. 올 한 해 한반도는 어느 때보다 아슬아슬한 위기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가 세운 기념물마저 “꼴불견”이라며 철거를 지시한 김정은의 불경스러운 언사도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EAI 보고서 진단대로 북한은 스스로 미국의 압도적 억제력 앞에 무력함을 드러냈다. 정권 종말의 위기감을 대남 인질 위협으로 버티고 있지만 그 한계도 곧 깨달을 것이다. 경찰 총에 조준된 강도보다 칼부림을 협박당하는 인질의 처지가 더 괴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북한 위협의 칼끝에 있지만 그럴수록 의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자체 핵무장론에 흔들리며 우리 내부, 나아가 동맹 간 균열을 내기보다는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더욱 강화하고,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되 절제된 대응으로 긴장을 관리해야 한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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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문 앞의 야수, 트럼프 시즌2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KBS 대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할 가능성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지난해 방한했던 미국 상원의원단 얘기를 꺼냈다. 미 의원들이 ‘대통령은 바뀌어도 의회는 그대로 있다’고 하더라며 “미국의 대외 기조가 그렇게 왔다 갔다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동맹을 더 강화하고 더 업그레이드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이지 큰 저기(차이)는 없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동맹국의 9개월 뒤 대선 이후를 거론하는 부담을 가급적 피하면서 나름의 기대를 담아 모범 답안을 내놓은 것이리라. 다만 그 답변은 대통령 탄핵의 혼란 속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트럼프 1기를 맞았던 7년 전의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정부 관계자들도 미국 하원 방한단의 얘기를 이렇게 전했다. 미 의원들이 “선거 땐 말이 거칠어지는 법”이라며 별일 없을 거라고, 심지어 한 공화당 의원은 “트럼프를 잘 가르칠(educate) 테니 염려 말라” 했다고. 하지만 트럼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트럼프의 한마디 한마디에 세계가 화들짝 놀랐다. 동맹국 정상들은 트럼프의 막말과 변덕, 기행에 혀를 찼다. 트럼프 재집권 경보에 벌써 국제사회가 긴장하는 이유다. 이미 겪어봤다지만 결코 익숙해지기 어려운 트럼프의 2기는 더욱 끔찍할지 모른다. 1기 때만 해도 참모진의 난색과 사보타주로 미뤄진 경우도 있었지만 충성파 참모들로 채워질 2기 땐 브레이크도 없이 폭주할 공산이 크다. 트럼프가 ‘방위비를 체납한 동맹국은 러시아의 처분에 맡기겠다’며 유럽 국가들을 협박하는 것은 그 예고편일 뿐이다. 트럼프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미국을 벗겨먹는’ 동맹국 대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주석 같은 스트롱맨과의 담판을 즐기며 국제 정치판을 뒤흔들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복귀한다면 한반도 정세에도 격변을 불러올 것이다. 트럼프 2기 국무장관 1순위로 거론되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에도 최대치의 제재를 가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북 ‘최대 압박과 관여’의 재가동, 즉 전쟁 일보 직전의 ‘분노와 화염’ 공세에 이어 김정은과의 브로맨스 외교 쇼를 다시 연출할 수 있다는 기대인 것이다. 트럼프는 그간 우크라이나 전쟁의 ‘24시간 내 종결’을 장담해 왔다. 푸틴과는 우크라이나 휴전을 거래하면서 북-러 무기 거래를 끊게 하고, 중국에는 관세 폭탄을 퍼부으며 시진핑에게 대북 압박을 종용하고, 김정은에겐 거친 말 폭탄과 함께 옛 러브레터를 꺼내 들고 손짓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김정은이 협상에 나온다면 한때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한국은 철저히 소외되는 북-미 직거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한국의 동맹 비용을 놓고도 주판알을 튕길 것이다. 이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5배 증액을 요구했던 트럼프다. 그에겐 한국도 만성 체납국 중 하나일 뿐이다. 방위비 분담금은 물론이고 한미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나아가 대북 핵우산 전력 유지 비용까지 청구서 항목에 포함시키려 할 것이다. 트럼프가 몰고 올 혼란은 이미 우리 문 앞에 닥친 야수와 같다. 트럼프 한마디에 공화당 의원들이 초당적 ‘안보 패키지’ 법안을 좌초시켰고, 친트럼프 방송인이 푸틴에게 침략을 정당화하는 궤변을 늘어놓게 멍석을 깔아줬다. 많은 나라가 안보에서 미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자강(自强)의 노력, 운신의 폭을 넓히는 전방위 완충외교로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도 동맹만 바라보는 관성적 사고부터 벗어나야 전략과 방책이 보인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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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남조선’이 사라졌다

    요즘 북한 대외매체의 보도에서 ‘남조선’은 찾아볼 수 없다. 그 자리에 ‘대한민국’이 들어섰다. 김정은이 작년 세밑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전쟁 중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하고 ‘대남 노선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천명한 직후부터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정은은 남조선을 주로 썼고 대한민국을 언급한 것은 한두 차례뿐이었다. 하지만 새해 들어서자마자 모든 매체에서 남조선이 싹 지워졌다. 그 시작은 6개월 전이었다. 김여정이 작년 7월 미군 정찰기의 북한 EEZ 상공 비행을 비난하는 담화에서 난데없이 남측을 겹화살괄호(≪ ≫)에 씌워 대한민국이라 부르면서다.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은 김여정 명의의 담화에만 등장했고, 편의에 따라 남조선을 섞어 쓰기도 했다. 이후 서서히 시동이 걸리듯 대한민국이 하나둘씩 남조선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단어 하나 바꾸는 문제가 아니었다. 금기어였던 대한민국을 사용하는 것은 당장 거부감을 피할 수 없다. 더욱이 주민들이 받아들일 정서적 혼란은 더 큰 문제였다. 그래서 경멸과 조롱의 의미를 담기 위해 대한민국 뒤엔 늘 ‘족속들’ ‘것들’ ‘놈들’을 붙였고, ‘외세의 특등주구인’ 같은 수식어도 필요했다. 작년 10월 아시안게임 남북 축구경기 중계에선 차마 대한민국을 쓰기 어려웠는지 ‘조선 대 괴뢰’로 표기하기도 했다. 일단 시작하면 적당히 끝낼 수도 없다. 내처 김정은은 연초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헌법에서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 표현을 삭제하고, 역사에서 통일·화해·동족 개념도 완전히 제거할 것을 지시했다. 머지않아 노동당 규약에 있는 ‘남조선’ ‘평화통일’도 걷어낼 것이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만든 남북관계의 틀을 완전히 부정하며 법과 규범, 주민의식까지 뜯어고치는 이데올로기 상부구조의 전면 개편에 들어간 것이다. 그것은 김여정의 수령을 향한 끊임없는 인정투쟁, 그리고 그가 이끄는 선전선동팀의 대내 사상투쟁 끝에 나온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2019년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의 굴욕을 겪은 뒤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이끌며 온갖 험구로 대남 분풀이의 선봉에 섰던 김여정이다. 이젠 정권의 이데올로그 역할까지 자임하며 오빠를 설득해 추인까지 받아낸 것이다. 때마침 러시아와 위험한 거래를 성사시킨 뒤 대남 긴장 수위를 더욱 올릴 필요가 있다는 김정은의 계산과 맞아떨어졌을 수 있다. 40년의 냉전, 30년의 탈냉전을 거치며 도발과 좌절, 도전과 시련의 세월을 겪은 북한으로선 격화되는 신냉전 기류에 재빨리 올라타 호기를 잡았다고 여기는 터다. 연말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복귀를 기다리면서 호전성을 과시해 존재감을 드러내겠다는 속셈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는 결국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 얼치기 이데올로그는 당장 눈앞의 편리를 위해 현실을 무시한 논리적 비약의 늪에 빠져든다. 그 결과가 체제경쟁의 실패를 자인하는 수세적 노선으로의 전환이었다. 결국 독재체제 유지와 김씨 세습정권 보존이 유일한 목표인 북한의 군색한 현실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다. 북한의 행보는 옛 동독의 ‘2민족 2국가’ 노선과 판박이다. 1970년대 에리히 호네커 정권은 ‘독일 단일민족론’을 부정하며 헌법 개정을 통해 ‘독일 민족’을 지우고 분단 극복과 통일 노력 조항까지 삭제했다. 통일을 염원하는 가사가 거슬린다며 국가(國歌) 제창조차 못 하도록 했다. 그렇게 독자적 정권임을 과시했다지만 결국엔 서독에 흡수되고 말았다. 김씨 남매의 무지한 대담성이 불러올 파장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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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김정은, 다시 ‘위험한 도박판’ 벌이나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를 접할 때마다 그처럼 그악스럽고 허풍스러운 표현들을 대체 어디서 찾아내는지 섬뜩함과 뻔뻔함에 혀를 내두르곤 한다. 북한처럼 국제질서의 파괴와 혼란만이 살길인 구제불능의 현상타파 국가로선 공갈과 허세 가득한 불량배 언사가 어쩌면 필수 선택지일 것이다. 겁먹은 개가 더 요란한 법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수사적 과잉을 걷어내고 보다 긴 흐름에서 살펴보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엿볼 수 있다. 작년 세밑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과에는 김정은의 기세등등함이 곳곳에 묻어 있다. 그는 2023년이 ‘위대한 전환의 해, 위대한 변혁의 해’였다며 으스댔다.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두 교전국’으로 규정하고 “고압적이고 공세적인 초강경 대응”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도 지시했다. 새해 들어선 어린 딸의 볼에 입을 맞추는 모습까지 연출하며 4대 세습을 통한 권력의 공고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런 기고만장에는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고체연료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잇단 실패 끝에 쏘아올린 군사정찰위성 같은 성과를 앞세운 자신감이 깔려 있다. 그런 김정은을 두고 일부 외신은 ‘권력의 절정기’라거나 ‘놀라운 회복력’이라는 평가도 내놨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북한 주장대로 ‘자력갱생, 견인불발의 투쟁으로 이룬 경이로운 승리’일까. 2019년 북-미 간 협상 결렬로 씁쓸한 좌절을 맛본 이래 김정은은 긴 시련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당장 남측에 분풀이를 해댔지만 한미 정상과 나란히 국제무대에 섰던 호시절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갈수록 여건은 불리해졌다. 코로나19로 3년 넘게 국경을 꽁꽁 틀어막은 상태에서 달갑지 않은 미국과 한국의 정권교체를 목도해야 했다. 2021년 1월 8차 당대회 때만 해도 김정은은 새로 출범할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 기대를 거는 것처럼 보였다. 남측을 향해 악담을 퍼부으면서도 “태도 여하에 따라 봄날로 돌아갈 수도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미국을 향해선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으로 상대하겠다”며 북-미 담판을 압박했다. 하지만 새로운 ‘실용적 접근법’을 내세워 톱다운식 협상을 거부하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실망은 커져만 갔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머뭇거렸다. 그해 말 전원회의에서 “다사다변한 국제정세”만 거론한 채 대외정책 방향에 대해선 침묵했다. 이듬해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한미의 대북 강경 기조는 결국 북한의 선택지를 제한했다. 달리 대안이 없는 외길, 즉 핵무력 증강과 도발만 남은 것이다. 한편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선명해진 신냉전 대결 기류는 북한에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줬다. 김정은은 2022년 말 전원회의에서 “국제관계 구도가 ‘신랭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며 반(反)서방 진영 가담을 천명했다. 그 결과 김정은은 러시아에 구식 포탄을 제공하고 첨단무기 기술을 이전받는 거래를 텄고 러시아 방문으로 외교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었다. 정세의 변화를 재빨리 포착하고 그 기류에 올라타는 것은 약자의 숙명적 생존방식이다. 분쟁과 갈등, 불안정은 북한 같은 도발자가 노리는 도박판이다. 새해엔 한국 총선과 미국 대선도 앞두고 있다. 김정은은 “변천하는 국제정세에 맞게 미국과 서방의 패권전략에 반기를 드는 나라들과의 관계를 가일층 발전시키겠다”며 ‘반제 공동투쟁’도 내세웠다. 더욱 현란한 대외 공세를 예고한 것이다. 그에 따른 파장과 부담은 곧바로 한국이 감당해야 한다. 면밀한 경계와 기민한 대응, 특히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유연한 전략이 절실하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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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음흉한 현자’ 키신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영화 ‘나폴레옹’을 두고 프랑스에선 격한 불만이 쏟아졌다고 한다. ‘전쟁의 신’으로 불린 천재적 전략가이자 ‘나폴레옹 법전’ 같은 근대 유럽의 법과 제도를 만든 영웅을 한낱 여인의 치마폭에 휘둘리는 시시한 남성으로 그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거기엔 유럽 전역을 혼란과 공포로 몰아갔던 격변의 시기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영국적 시각이 담겨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 쪽에서 “영국인 감독의 반(反)프랑스 복수극”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밖에 없고 나폴레옹을 ‘위대한 영웅’과 ‘하찮은 괴물’ 사이의 존재로 보는 냉소적 시각도 어쩌면 온전한 평가를 위한 보완적 해석일 수 있다. 얼마 전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에 대해서도 ‘외교의 전설’ ‘세기의 경세가’란 칭송에 감춰진 어두운 이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키신저 생전에 이미 그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렸다. 중소 갈등을 기회 삼아 중국의 문을 열고 소련과의 데탕트 시대를 이끈 ‘3각 외교’는 베트남전쟁의 늪에 빠져 있던 미국의 입지를 반전시킨 업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파로부턴 약소국 인권을 짓밟은 ‘냉혹한 전범’이라는, 우파로부턴 동유럽을 소련 영향권으로 넘겨준 ‘유화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키신저의 개인적 삶도 많은 키신저학(Kissingerology) 연구자와 전기 작가들의 해부 대상이었다. 나치 치하 독일을 떠나온 유대인 소년은 자기 능력을 한껏 발휘할 제2의 조국 미국에서도 억센 독일 악센트를 떨치지 못한 경계인이었다. 2차 대전 말 고향 땅에서 보여준 나치 색출 능력, 명석함과 집요함으로 이룬 학문적 명성, 끊임없이 권력을 좇은 끝에 얻은 최고위 외교관 자리까지 그는 내면의 불안을 지적 자존심과 인정 욕구로 채웠다. 키신저는 정의와 질서 가운데 늘 질서를 선택한 보수적 현실주의자였다. 학자로서 천착한 주제도 19세기 유럽의 세력균형 외교였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교묘한 외교 책략으로 40년 평화를 주도한 메테르니히와 철저한 현실정치(realpolitik) 외교로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는 키신저 외교의 롤 모델이었다. 그런 탓에 그의 외교 협상엔 과도한 비밀주의, 진실의 절반만 얘기하는 속임수, 매력과 위선을 넘나드는 음모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카멜레온 같은 처신은 그의 생존 비결이었고, 아부는 만능의 언어였다. 그의 유려한 찬사에 누구든 귀를 열었다. 대통령 앞에선 ‘매파 중의 매파’였지만 리버럴 명사들과 만나선 ‘비둘기’가 되곤 했다. 사교계 모임에도 빠지지 않았고 미녀 스타와 함께 사진 찍히길 즐겼다. 반면 약자에겐 냉혹했다. 남베트남 대통령의 평화협정 거부를 두고 “무례는 약자의 갑옷”이라고 조롱했다. 부하 직원에게 서류를 내던지고 길길이 뛰며 소리 지르기 일쑤였다. 키신저는 퇴임 이후에도 자서전 집필과 정부 자문, 미디어 출연으로 명성을 유지했고, 기업인들을 상대로 지정학 컨설팅을 하며 상당한 재산도 모았다. 전 세계 권력과 부의 네트워크를 동원하는 영향력을 토대로 모든 이들이 그의 의견을 묻는 현자(賢者)로서의 후광을 누렸다. 하지만 그의 마키아벨리적 처세는 말년까지 변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부고 기사의 한 대목은 그런 키신저의 이중성을 잘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안보동맹의 미래를 불안해하는 독일 측에 키신저는 트럼프의 사위이자 백악관 실세인 재러드 쿠슈너를 만나라고 조언한다. 물론 쿠슈너에겐 “동맹의 불안을 이용해야 한다. 계속 안절부절못하게 하라”고 미리 얘기해 둔 터였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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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21세기 차르’ 푸틴의 5번째 대선 출마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잔혹한 이반’ ‘이반 뇌제’로 불린 이반 4세를 칭송하곤 했다. 이반 4세는 말년에 아들을 몽둥이로 살해할 만큼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은 폭군이지만 시베리아로 영토를 넓히고 전제왕권을 확립한 러시아 최초의 차르. 스탈린은 그의 공포정치에 특히 주목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반 뇌제는 보야르(특권 귀족)를 너무 적게 죽였다. 그들을 전부 죽였어야 한다. 그랬다면 통합되고 강력한 러시아를 더 일찍 만들었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년 3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대선 출마 요청에 화답하는 형식이었다. 그로선 다섯 번째 출마다. 최근 여론조사 지지도가 78.5%나 되는 상황에서 선거는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71세인 그는 2020년 개헌으로 두 차례 더 6년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내년 5선에 이어 2030년 6선까지 성공하면 84세까지 집권할 수 있다. 30년 가까이 권력을 유지한 ‘20세기 차르’ 스탈린을 능가하는 ‘21세기 차르’로 최장수 크렘린궁 지도자 자리를 예약한 셈이다. ▷푸틴은 안팎의 분쟁과 위기로 막강 권력을 키웠다. 소련 붕괴 이후 술통에 빠져 자기 몸조차 가누지 못하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눈에 든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의 야심가 푸틴은 1999년 47세에 일약 제2인자 총리 자리에 올랐다. 그해 체첸 사태 때 대규모 공습 강행으로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과시하며 이듬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돈바스 전쟁 와중엔 크림반도를 병합함으로써 지지도 90%로 정점을 찍기도 했다. ▷푸틴의 정치적 입지가 커갈수록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았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야당 인사에 대한 구금과 암살이 판치면서 권력자와 주변 세력이 국가 재산을 훔쳐 끼리끼리 배 불리는 도둑정치가 횡행했다. 커지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푸틴은 국민의 눈을 바깥으로 돌렸다. 영토 확장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환상을 심는 전형적 독재자 수법이었다. 작년 우크라이나 침공도 자신의 종신 집권을 위한 ‘피의 꽃길’ 깔기였을 것이다. ▷푸틴은 최근 암 수술설, 초기 파킨슨병 진단설 등 건강 이상설에 시달렸다. 과거 곰과 싸우는 모습을 연출하거나 상의를 벗고 말을 타며 ‘마초 카리스마’를 뽐낸 것과 대조적이다. 푸틴의 롤 모델은 표트르 대제.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도 표트르 대제의 북방전쟁에 빗대며 “빼앗는 게 아니라 되찾는 것”이라고 정당화했다. 그런 푸틴을 두고선 서구화 개혁을 상징하는 표트르 대제가 아닌, 잔혹과 광기를 남기고 떠난 이반 뇌제와 겹쳐 보인다는 평가가 많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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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우크라이나, 무관심과의 전쟁

    우크라이나군은 지난주 남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작지만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 치열한 교전 경계선이던 드니프로강 건너 동쪽으로 진출해 러시아군을 밀어내고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소식이다.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군이 거둔 가장 뚜렷한 성과이자 미국과 서방을 향해 전쟁 비관론은 섣부르다는 점을 주장할 수 있는 소중한 승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6월 초부터 5개월 넘게 계속된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 작전은 답답할 정도로 더뎠고 성과는 미미했다. 반격 작전 이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의 마을 몇 곳을 탈환했지만 전반적으로 양측 간 전선에는 변화가 거의 없다. 서방의 무기 지원 지연 탓도 크다지만 ‘기대 이하를 넘어 사실상 실패한 것’이라는 실망스러운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까지 포함해 그간 잃은 모든 영토를 회복한다는 목표지만 지뢰밭과 참호, 함정, 요새로 겹겹이 쌓은 러시아군 방어선조차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군 총사령관까지 이런 상황을 제1차 세계대전의 교착 국면에 비유하며 “돌파구가 마련될 것 같지 않다”고 밝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제 그 반격 작전도 계절의 절벽에 다다르게 된다. 우크라이나 흑토지대가 진흙탕으로 변하는 가을 우기로 접어들고 곧이어 혹독한 겨울 추위가 다가오면 이 전쟁은 공세에서 수비로 바뀔 수밖에 없다. 드론을 이용한 양측 간 원거리 폭격은 이어지겠지만 당분간 ‘진흙장군’과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면서 전선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젤렌스키도 최근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신속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초조감을 드러냈다. 사실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더 큰 전쟁은 국제사회를 향한 무관심과의 싸움이다. 중동의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10월 초까지 CNN방송 보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뉴스는 전체의 약 8%를 차지했지만 하마스의 10·7 기습공격 이후 1% 밑으로 뚝 떨어졌다. 그렇게 우크라이나 전쟁이 헤드라인에서 사라지면서 서방세계, 특히 미국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피로감은 한층 커지는 분위기다. 서방 외교가와 싱크탱크에선 이제 우크라이나가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반격 작전의 초라한 성과야말로 실지(失地) 회복이라는 전쟁 목표를 가까운 시일 내엔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만큼 지금의 고강도 공세 전략을 접고 휴전 협상과 함께 장기 방어전 태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명예회장도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이제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정하고 그 수단과 함께 전략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썼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우크라이나 지원을 두고 미국 내 논란이 거세지고 유럽 일부 국가마저 동요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손절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처하기 전에 서둘러 전략 변경에 나서라는 권고다. 국가의 생존전략이 의지와 목표만으로 채워질 수는 없다. 스스로의 역량과 동원 가능한 외부 지원, 그리고 상대와의 엄정한 힘의 비교를 토대로 냉철한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향해 그런 현실적 선택을 한 뒤 민주주의와 경제 번영으로 궁극적 승리를 기약하라는 서방의 압박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쓰디쓴 약을 받아든 우크라이나의 처지가 우리로선 남 일 같지 않다. 70여 년 전 6·25전쟁 와중에 원치 않는 휴전 협상에 직면했던 한국이기에.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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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이겨야 하는 이스라엘, 버티면 되는 하마스

    “평양의 전보는 나로서도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주스웨덴 북한) 대사와 내가 이스라엘 대사를 만나 극비리에 미사일 거래 협상을 진행하라는 지시였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회의원은 회고록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관 서기로 근무하던 시절인 1999년 1월 그곳 이스라엘 대사와 만나 협상을 벌인 일화를 소개했다. 평양의 지시에 따라 “우리 미사일 기술에 이란 등 중동 국가의 관심이 많다. 이스라엘이 현금 10억 달러를 주면 미사일 기술을 수출하지 않겠다”며 거래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 측은 현금 대신 물자를 제공할 뜻을 밝혔으나 북한이 끝내 현금을 고집하면서 협상은 실패했다고 썼다. 하지만 이스라엘과의 협상은 이미 6, 7년 전 진행됐던 프로젝트였음을 태 의원은 몰랐던 듯하다. 이란이 북한 노동미사일을 구매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먼저 접근한 쪽은 이스라엘이었다. 협상은 1992년 10월 이스라엘 관계자의 평양 방문으로 시작됐고, 이후 이스라엘과 유대계 기업들의 10억 달러 투자와 광업 기술지원 같은 제안이 활발히 오갔다. 하지만 은밀하게 진행되던 협상은 미국이 개입하면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뉴욕타임스 1993년 6월 20일자) 그럼에도 이스라엘식 거래 구상은 북한이 미사일 개발과 판매를 포기하면 그 대가로 미국은 북한 인공위성을 대신 쏴주고 매년 10억 달러어치 식량을 3년간 제공한다는 2000년 북-미 미사일 협상안의 큰 틀로 이어졌다. 태 의원이 했던 역할은 미국 측에 과거 북한과 이스라엘의 ‘10억 달러’ 거래를 상기시키려는 일종의 밑밥 깔기였던 셈이다. 거의 성사 단계까지 갔던 북-미 미사일 협상이 결국 실패로 끝난 뒤에도 이스라엘은 북한의 중동 무기 판매가 자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특히 남북 간에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는가 싶으면 한국 정부를 향해 북한이 중동 이슬람 국가나 무장단체에 무기를 팔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하곤 했다. 우리 정부 관계자가 “지칠 줄 모르는 후츠파(당돌한 대담성) 정신”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스라엘은 흔히 골리앗 국가들에 포위돼 외롭게 싸우는 다윗 국가로 묘사된다. 이스라엘은 늘 이런 지정학적 불안을 호소하며 자국 안보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월등한 재래식 전력에다 핵무기까지 보유한,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 대국이다. 위기 때면 언제든 달려와 주는 미국도 있다. 그런 힘과 뒷배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은 주변 세력의 위협을 감지하기 무섭게 그 싹부터 잘라버리는 예방전쟁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이스라엘이 무장세력 하마스의 대규모 기습공격에 맥없이 당한 뒤 가자지구에 대한 본격 지상전에 들어갔다. 인도주의적 재앙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도, 이란 등 주변국이 참전하면서 중동 전역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스라엘 정부엔 통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쌓아온 안보 신화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테러 집단에 몇 배 가혹한 응징을 가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을 미국조차 말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로서도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다. 미국의 베트남전쟁 종결 협상자였던 헨리 키신저는 “정규전은 이기지 않으면 지지만, 게릴라전은 지지 않으면 이긴다”고 했다. 이 전쟁은 하마스엔 전멸을 피하며 버티는 투쟁이지만 이스라엘엔 확실한 승리를 거둬야 하는 결전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완전히 장악한다 해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평화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더 깊은 분쟁의 늪일 가능성이 크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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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트럼프 2기엔 ‘영웅’도 ‘어른’도 없다”

    “재선의 도널드 트럼프는 영화 ‘터미네이터’ 2편의 사이보그 암살자 같을 것이다.” 대니얼 드레즈너 터프츠대 교수가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내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2기 행정부 탄생 가능성에 전 세계가 불안해하고 있다며 전한 유럽 외교관의 말이다. 1편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정교한 킬러로봇이 등장한 터미네이터 2편처럼 ‘트럼프 2.0’은 한층 독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보수우파 진영의 트럼프 2기 준비는 빠르고 꼼꼼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장관이나 고위직으로 일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와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 2025’ 같은 그룹들이 벌써 차기 공화당 정부의 비전과 어젠다, 정부 운영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제2의 로널드 레이건 보수혁명’을 외치며 우파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미국 사회의 전면 개조를 다짐한다. 특히 이들은 좌파 기득권층의 소굴이 됐다는 관료조직의 ‘딥스테이트(Deep State)’를 무너뜨리고 보수의 전사들로 채워 넣기 위해 인력 발굴과 훈련, 검증이라는 야심 찬 프로그램까지 출범시켰다. 그러면서 “대통령 취임 첫날 ‘행정 국가’에 대한 철거용 쇳덩이의 일격을 보게 될 것”이라고 외친다. 이를 위해 트럼프가 임기 말 자신의 국정기조에 반발하는 공무원들을 솎아내 언제든 해고할 수 있도록 했던 행정명령 ‘스케줄 F’를 되살리겠다고 한다. 전례 없는 행정부 개조 계획은 트럼프 1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여준다. 트럼프 자신조차 긴가민가했던 대통령 당선, 요직 인사들의 낙마와 이탈, 트럼프의 변덕에 맞선 안팎의 저항…. 그런 트럼프 1기와는 차원이 다른 정부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차기 행정부엔 앤서니 파우치 박사 같은 ‘영웅’도,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같은 ‘어른’도 없을 것이라고 트럼프 충성파들은 공공연히 말한다.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급진적 공무원 숙청 구상이 뜻대로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오히려 트럼프 1기 때보다 더 큰 혼란과 마비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아무리 충성심이 높아도 예측불허 인사권자의 독단을 버텨낼 인물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보수혁명은 스스로를 잡아먹는 괴물이 될 것”이란 전문가의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만은 않는다. 트럼프 2기가 불러올 충격파는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가, 특히 미국의 동맹과 우방이 트럼프의 재등장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당장 ‘프로젝트 2025’의 정책 제언서는 “비용 분담을 국방전략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며 재래식 방위에 대한 동맹국의 더 큰 책임을 요구한다. 한국에도 “북한에 대한 재래식 방어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은 핵 억제력 확충에 집중하고 나머지 지역 방위 책임은 동맹국들에 지우겠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은 아직 1년 넘게 남아 있다. 그 결과는 온전히 미국인의 선택에 맡겨져 있고, 국제사회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도리 없이 감당해야 할 미래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예산을 둘러싸고 초유의 하원의장 해임 사태까지 낳은 미국 정치의 분열과 갈등은 다가올 ‘트럼프 쓰나미’의 예고편일지 모른다. 더욱이 트럼프의 복귀를 바라는 독재자들의 준동, 특히 북한의 도발은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제 앞가림에 바쁜 조 바이든 행정부에 동맹의 역할을 크게 기대하기 힘들 수도 있다. 앞으로 1년, 한국엔 군사적으로 더욱 자강(自强)에 힘쓰면서 외교적으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지혜롭게 관리해야 하는 전략적 고투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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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金-푸틴이 울린 ‘트럼프 리스크’ 경보

    2000년대 중반 북핵 6자회담이 열리던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각국 대표들이 잇단 양자 협의와 정보 수집에 분주한 와중에도 러시아 대표단만은 구경꾼처럼 유유자적했다. 러시아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러시아 측도 애써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러시아 대표 중엔 아예 넓은 휴게실에 자리 잡고 앉아 종일 TV만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회담이 교착에 빠질 때면 쓱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킬 아이디어를 제시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런 러시아를 당시 미국 측 차석대표는 ‘단역배우’에 비유했다.(빅터 차 ‘불가사의한 국가’) 냉전 종식 이래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선 불쑥 나타났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엑스트라에 가까웠다. 그러던 러시아가 지축을 흔들 만큼 요란하게 한반도 무대로 깊숙이 들어왔다. 러시아 극동에서 이뤄진 김정은과 푸틴 두 독재자의 만남은 그 자체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 결과로 나올 ‘위험한 거래’에 국제사회는 벌써 긴장하고 있다. 사실 이번 만남은 푸틴이 오랫동안 준비한 기획 이벤트일 가능성이 높다. 3년 넘게 ‘코로나 자폐(自閉)’에 들어갔던 김정은 정권이 국경을 다시 열기 무섭게 국방장관을 북한 열병식에 보냈고 이어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까지 끌어냈다.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재고가 바닥나 가는 포탄과 로켓이 절실한 형편에서 북한을 향해 식량과 에너지, 거기에 첨단 군사기술까지 제공할 수 있다고 유혹한 결과일 것이다. 1990년 한-소 수교 이래 북-러 관계는 10년간 사실상 단절됐다. 러시아는 시종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북한은 본격 핵 개발에 나섰다. 그 냉각기를 끝낸 것이 푸틴의 2000년 평양 방문이었다. 러시아 지도자로선 첫 북한 방문이었고, 김정일은 이듬해 장장 24일에 걸친 러시아 방문으로 화답했다. 푸틴의 환대에 김정일은 “흔히 동반자(partner)란 말을 쓰는데, 우리에겐 그런 용어가 필요 없다. 친구를 동반자라고 하지 않는다”며 신뢰를 나타냈다. 푸틴은 과거에도 남-북-러를 잇는 철도·가스관 연결 프로젝트나 미국·러시아가 북한 위성을 대신 쏴주는 제안 같은 그럴듯한 아이디어로 주변국을 혹하게 만드는 재주를 보였다. 이번엔 김정은을 만나 위성 개발을 비롯한 전방위 군사협력을 약속하고 각종 전략무기까지 두루 보여줬다. 유엔 제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뭐든 내줄 수 있다는 듯. 그러면서 푸틴은 “우리는 무엇도 위반하지 않았고 그럴 의도도 없다. 일정한 제한이 있지만 이를 준수하면서 협의가 가능한 것들이 있다”고 앞뒤가 다른 얘기를 했다. 역풍을 부를 노골적 제재 위반은 피하면서 우회 방안을 찾겠다는 뜻일 텐데, 실컷 눈요기 쇼핑을 즐긴 김정은으로선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국가적 총력전이 아닌 변방의 제한전으로 묶어두려는 푸틴으로선 북한 무기 조달도 최대한 은밀한 방식을 찾으려 할 것이다. 김정은과 푸틴은 어떻게든 지금의 국제질서를 흔들려 한다. 적어도 내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복귀한다면 세계정치의 판이 바뀔 것으로 본다. 이미 트럼프는 자신이 재선됐더라면 북핵 문제는 합의됐을 것이고, 당선되면 우크라이나 전쟁도 24시간 내 끝내겠다고 장담한 터. 두 평화 교란자로선 기대를 걸 만하다. 앞으로 미국 대선까지 400여 일, 두 난봉꾼의 칼춤은 더욱 현란하고 교묘해질 것이다. 국제사회가 뾰족한 대책을 찾긴 쉽지 않다. 하지만 북-러가 아무리 은밀히 거래해도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발뺌 못 할 결정적 증거(스모킹건)를 찾아내 검은 거래를 틀어막는 수밖에 없다. 미국 대선 이후까지 염두에 두고 국제공조를 단단히 다지면서.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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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원폭과 봉쇄, 두 아이콘의 좌절

    “제길, 하필 저는 이 나라를 사랑한단 말입니다.(Damn it, I happen to love this country.)”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원자폭탄 개발의 주역 J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과거 좌익 활동 전력 때문에 비공개 청문회에 불려가 자신의 삶 전부가 발가벗겨진 오펜하이머에게 아인슈타인이 “자네는 자넬 사랑하지 않는 여인(미국 정부)을 쫓고 있네”라며 이제 미련을 버리라고 충고하자 한 말이다. 사실 이 장면은 외교관 출신으로 동갑내기 친구였던 조지 케넌이 훗날 오펜하이머 추도식에서 회고한 둘의 대화 내용을 아인슈타인의 당시 의견과 함께 엮어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런 수모를 당하느니 외국 대학으로 갈 생각은 없느냐고 묻는 케넌에게 오펜하이머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케넌은 8000단어의 ‘긴 전문’과 익명의 ‘X 논문’으로 대소련 봉쇄정책을 기초한 인물. 한때 미국 외교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지만 자신이 주창한 봉쇄정책이 외교를 배제하고 군사 일변도로 흐르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몽상가”라는 손가락질과 함께 정책 결정 라인에서 밀려났다. 오펜하이머는 그런 그를 위해 프린스턴고등연구소에 안식처를 마련해줬다. 케넌은 반유대주의적 편견을 가진 앵글로색슨계였지만 유대계인 오펜하이머와는 죽이 잘 맞았다. 두 사람은 냉전 초기 핵무기 정보 공유와 국제적 통제, 수소폭탄 개발 반대, 그리고 20년 뒤에나 시동을 거는 핵군비통제까지 거의 모든 생각에 공감했다. 그런 케넌도 뛰어난 전략가로서 짧은 각광을 받은 뒤엔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뜰 때까지 긴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다. 케넌은 영화 ‘오펜하이머’에 등장하지 않는다. 수많은 과학자와 군인, 정치인이 나오는 터라 케넌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플롯은 ‘유대인 대 유대인’의 대결 구도로 짜여 있다. 원폭이 초래한 비극을 보고 그 1000배 위력의 수폭 개발에 반대하는 오펜하이머의 대척점엔 유대인 보수주의자 루이스 스트로스가 있다. 이 둘의 뒤편에서 오펜하이머를 동정하는 아인슈타인도, 수폭 개발에 매달리는 에드워드 텔러도 모두 유대인이다. 사실 원폭 개발 자체가 ‘유대인 프로젝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유수의 물리학자 중 유대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데다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도망쳐 나온 유대인 과학자들이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시작된 것이 맨해튼 프로젝트다. 오펜하이머를 파멸로 이끈 스트로스도 한때 유대계 물리학자의 연구를 지원한 후원자였다. 영화는 이런 유대인 간 대결을 통해 과학과 정치의 충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오펜하이머는 핵폭발이 세계를 멸망시킬 가능성이 ‘거의 0(near zero)’임에도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한다. 그런 그에게 대통령은 소련이 언제쯤 원폭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는 ‘모른다’는 대답에 “나는 안다. 결코 못 만든다”고 자신하고, 얼마 뒤 소련이 원폭을 개발하자 내부 간첩부터 의심하는 정부 실력자는 매카시즘의 광풍 속으로 오펜하이머를 몰아넣는다. 놀런 감독이 각각 핵분열(fission·원폭)과 핵융합(fusion·수폭)이란 이름을 붙여 컬러와 흑백을 교차시킨 것은 시간대를 오가는 혼란스러운 극 전개에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기술적 장치로 보인다. 한편으로 컬러와 흑백의 대비는 지식인과 권력자 간의 격렬한 부딪침으로도 다가온다. 인공지능(AI) 무한경쟁과 기후변화 위기의 시대, 핵폭탄을 둘러싼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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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한반도, 우크라戰 탄약고

    얼마 전 외신들은 우크라이나군이 북한산 122mm 다연장로켓(방사포) 포탄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80, 90년대 생산된 이 포탄에는 한글로 ‘방-122’라고 찍혀 있었다. 전장의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우호적 국가’가 한 선박에서 압수해 넘겨준 것이라고만 했고, 우크라이나 국방부 측은 러시아로부터 포획한 것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잦은 오발·불발로 악명 높지만 병사들은 그나마 쏠 포탄이 있어서 다행으로 여긴다고 한다. 북한산 포탄 발견은 북-러 간 무기거래 의혹을 더욱 짙게 하는 새로운 정황이지만 결정적 증거로 삼기엔 부족하다. 지금 우크라이나군에는 옛 소련 시절 장비부터 최신 정밀유도무기까지 온갖 잡동사니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이런 다종다양한 탄약과 장비를 두고 ‘동물원(zoo)’ 같다고 할 정도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 서방 진영은 각국이 보유한 무기들을 우크라이나에 보냈다. 그런데 포탄이 제각각이다 보니 이탈리아 박격포에 핀란드 포탄을 사용하려면 꼬리날개를 일일이 갈아내야 하는 일도 있었다. 나아가 미국과 영국은 소련식 무기로 무장한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할 탄약을 찾기 위해 옛 동구권과 유고연방, 아시아·아프리카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긁어모은 것들 가운데 30, 40년 된 북한 포탄이 끼어 있다고 해도 신기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황이 흑해 연안으로 번지고 있지만 육상 전선에는 큰 변화가 없다. 석 달째로 접어든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성과는 미미하다. 새로 편성된 우크라이나 기계화 부대는 지뢰밭과 대전차 함정, 콘크리트 장애물로 이뤄진 러시아군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있다. 1차 대전을 떠올리게 하는 참호전·포격전 양상은 이 전쟁의 장기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포탄 공급은 여전히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이다. 냉전 종식 이후 방위산업을 대대적으로 축소한 각국이 갑자기 생산을 늘리기는 어렵다. 미국도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곳곳에서 병목 현상이 발목을 잡는다. 일례로 각종 무기에 사용되는 흑색화약 공장은 미국 내 한 곳만 남아 있었는데, 그조차 2년 전 폭발 사고로 문을 닫은 상태였다. 미국이 국제적으로 금지된 집속탄까지 지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포탄 고갈 사태에 주목받는 곳이 한국과 불가리아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 이미 한국, 불가리아와 포탄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일본과도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는 살상무기 지원을 부인하지만 미국의 빈 탄약고를 채우거나 폴란드를 통해 우회 공급하는 등 우크라이나 탄약 지원은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불가리아에선 소련식 포탄 생산을 위해 35년 전 폐쇄됐던 공장이 다시 문을 여는 등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사정은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가 지난달 말 북한 열병식에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참석시킨 데 이어 이달 초 고위급 인사가 탔을 것으로 추정되는 VIP용 공군기를 평양에 보낸 것도 다급함의 방증일 것이다. 김정은은 쇼이구 장관을 직접 무기전시장으로 안내하는가 하면 최근엔 사흘 연속 군수공장을 시찰하며 저격소총 발사 시범까지 보였다. 김정은이 거론한 ‘국방경제사업’도 무기거래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으로 읽힌다. 70년 넘게 냉전적 군사대결이 지속된 한반도가 새삼 신냉전 전장의 탄약고로 주목받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물론 정당성이나 합법성 차원에서 남과 북은 전혀 다르다. 유엔 제재로 모든 무기거래가 금지된 북한의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하지만 보편가치도 국제법도 비웃는 광포한 전쟁의 시대다. 누가 먼저 들키는지 보자던 숨바꼭질도 이제 끝나가는 듯하다. 이후 닥칠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지 면밀히 고민할 때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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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조건 없는 대화’에 고장난 계산기 내민 북한

    요즘 북한 김여정의 등판이 부쩍 잦아졌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전후로 미군 정찰기 활동을 트집 잡아 세 차례나 나서더니 한미 핵협의그룹(NCG) 첫 회의를 앞두고도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를 비난하는 장황한 담화를 냈다. 난데없이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 칭하며 주목도까지 확 높였다. 남북관계를 이제 ‘같은 민족’으로서가 아닌 ‘국가 대 국가’의 적대관계로 보겠다는 색다른 선전선동의 잔재주 부리기일 것이다. 17일 담화에선 은근슬쩍 대화 가능성을 흘리며 미국의 반응을 떠보기도 했다. 김여정은 미국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 제안을 두고 “황당한 망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과거 북-미 협상에 올랐던 거래조건들을 새삼 상기시켰다. 미국이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요구할 테지만 한미 연합훈련 축소와 전략자산 전개 중단, 제재 완화,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 같은 ‘가역적 공약’과 바꿀 수 없다며 “우리는 밑지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화에 대한 미련을 드러내며 미국을 향해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한 셈이다. 북한은 앞서 5월 말 일본을 향해서도 비슷한 신호를 보낸 적이 있다. 일본 측에 전례 없이 군사정찰위성 발사 일정을 통보하더니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조건 없는 만남’ 제안에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외무성 부상 명의의 사뭇 정중한 담화를 냈다. 그즈음 북한은 일본인 납북자의 상징인 요코타 메구미가 북한에서 낳은 딸이 일본의 외할아버지 묘에 자기 이름으로 꽃을 바치고 싶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면서도 교묘한 신호를 보내는 것은 일단 상대의 속내를 떠보면서 한미일 대북 공조에 균열을 내기 위한 상투적 수법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초조감과 조바심이 묻어 있는 게 사실이다. 북한으로선 1년 반 뒤 미국 대선 때까지 기다리며 도발 일변도의 대외전략을 밀어붙이기엔 한계에 봉착한 듯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우선 북한이 크게 기념하는 7·27 정전협정일(전승절) 70주년을 앞두고 야심 차게 추진하던 정찰위성 발사의 실패는 뼈아플 수밖에 없다. 잇달아 미사일을 쏘아 올렸지만 그 대외적 충격 효과나 대내적 결집 효과는 갈수록 떨어지고 비용도 감당하기에 만만치 않다. 대신 미군 전략자산의 잦은 출몰로 북한군의 긴장도와 피로감은 한층 높아지는 상황이다. 주변 정세도 녹록하지 않다. 그간 신냉전 기류 속에 버팀목이 됐던 중국과 러시아는 제 앞가림에 급급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렁에 빠져 제 코가 석 자이고, 중국은 최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며 고위급 대화를 재개했다. 무엇보다 과거 미중 관계의 타협점을 대북 제재 동참에서 찾았던 중국인만큼 경계심을 늦출 수 없게 됐다. 미국이 동북아 깊숙이 작전영역을 확대하는 터에 중국도 마냥 북한을 감싸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정세 변화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움직이며 생존을 연장해온 김정은 정권이다. 도발과 협박을 일삼다가도 일순간 유화 국면으로 돌아서는 태세 전환에 능수능란하다. 더욱이 어떤 계기든 잽싸게 잡아채 ‘지도자 동지의 주동적 조치’라고 선전하기까지 한다. 3대에 걸친 세습 독재를 유지해온 비결일 것이다. 그제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주한미군의 월북 사건이 일어났다. 과거에도 ‘인질 외교’로 단단히 챙겼던 북한이다. 어떻게든 이 사건을 계기로 도발과 유화 사이를 어지럽게 오가며 한미 간 동요를 일으키려 할 것이다. 북한의 뻔한 수작이지만 한국이 빠진 대화라고 해서 못마땅하게 여길 이유는 없다. 그 노림수를 제대로 읽으면서 긴밀하게 공조하면 된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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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국정원 인사파동, ‘제1고객’의 책임은 없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33년 외교관 경력의 윌리엄 번스 전 국무부 부장관을 임명했을 때 미국 언론은 70년 전 외교관 출신 첫 민간인이자 역대 최장수 CIA 국장을 지낸 앨런 덜레스에 비유했다. 덜레스는 그의 형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과 함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쥐락펴락한 인물이다. CIA의 규모와 역할을 크게 확장시키며 미소 냉전체제의 뼈대를 구축했다. 덜레스 시대는 제3세계 쿠데타 조종과 암살 음모 같은 CIA 역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비밀공작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바이든의 번스 기용은 신냉전 기류에 휩싸인 국제질서 격변기에 외교와 정보를 효율적으로 결합해 세계에 ‘미국의 복귀’를 알리겠다는 구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번스는 일찍이 이란 핵합의를 위한 오랜 비밀접촉을 이끌어 ‘비밀외교무기(secret diplomacy weapon)’라는 찬사를 들었던 인물이다. 당파로 갈라진 상원도 번스 인준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 번스도 굵직한 이슈의 현장마다 그 흔적을 남겼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석 달 전 모스크바를 방문해 바이든의 경고 메시지를 전했고, 이후 동맹과의 정보 공유를 통한 반(反)러시아 전선 구축과 러시아발 가짜 정보를 선제적으로 무력화하는 성공적인 정보전을 폈다. 최근 미중 간 소통의 물꼬를 트기 위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에 앞서 비밀리에 베이징을 다녀간 이도 번스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김규현 전 외교부 차관을 새 정부 첫 국가정보원장으로 발탁한 것도 번스의 사례와 비슷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김 원장에 대해 “30여 년간 외교안보 분야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온, 국제적 안목을 가진 전문가”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 이전에도 외교관 출신 정보 수장이 있었다. 노신영 국가안전기획부장과 이병기 국정원장. 특히 노신영은 외무부 장관 출신으로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역사상 최초의 문민 수장이었고 이후 국무총리를 지내 전두환 대통령의 후계자 반열에까지 올랐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아래서 그 한계는 분명했지만 권력자의 신임을 얻어낸 가히 독보적 인물이었다. 김 원장 기용에 대해서도 확실한 일처리, 원만한 대인관계, 철저한 자기관리 등 호의적 반응 일색이었고 부정적인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국정원 고위직에 대한 전면 물갈이가 단행되고 전직 국정원장 두 명에 대한 고발까지 이뤄졌지만 ‘정권이 바뀌니 또 그러나’라는 곱지 않은 시각 속에서도 김 원장을 직접 겨냥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랬던 김규현 체제에 최근 파열음이 요란하다. 윤 대통령이 재가까지 마친 국정원 1급 인사를 닷새 만에 번복한 것은 유례없는 사태다. 김 원장 측근이 인사를 전횡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그의 리더십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더욱이 대통령의 신뢰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거취를 놓고 입방아에 오르는 처지에 놓였다. 이르면 오늘 발표될 장차관 인사에 김 원장 교체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김 원장에 대한 재신임은 아닌 듯하다. “리더십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조직 안정이 우선이다” “향후 인사 가능성은 어느 조직에나 열려 있지 않느냐”는 얘기가 대통령실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마당이다. 사실 이번 인사 파동을 놓고선 정권교체기 물갈이를 둘러싼 내부 반발을 넘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한 새 권력 내부의 파워게임 양상이라는 관측이 많다. 국정원장이 최측근에 휘둘렸다면 그 자체로 큰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외부 입김에 핵심 안보기구 수장의 입지가 흔들린다면 그건 임명권자이자 ‘제1 고객’인 대통령의 책임일 것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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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中 겁박에 맞선 호주의 ‘조용한 완승’

    이른바 ‘늑대전사 외교’와 함께 중국식 겁박 외교의 대명사가 된 ‘경제적 강압’을 국제사회가 맞서 싸워야 할 핵심 이슈로 공론화한 나라는 호주였다. 2020년 호주가 중국의 코로나19 기원과 책임 규명을 공개적으로 요구하자 중국은 대놓고 호주의 국내 정치에 간섭하고 언론 논조까지 문제 삼으며 호주산 보리와 와인, 석탄, 목재, 바닷가재의 수입을 막는 대대적인 보복 조치를 취했다. 대중국 수출 비중이 37%에 달한 호주로선 전례 없는 위기였다. 호주는 굴복하지 않았다. 동맹과 우방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 중국의 강압에 맞선 대항전선 구축을 촉구했다. 호주 외교장관은 외부 인사를 만날 때마다 안주머니에서 중국 측이 던진 모욕적 요구, 이른바 ‘14개 불만 사항’ 메모지를 꺼내 보이며 분노와 결의를 표시하곤 했다. 그런 호주의 배짱은 통했다. 호주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은 일시적이었다. 잠시 위축됐던 호주의 대외 수출은 다시 치솟았고 작년엔 사상 최대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이미 올해 초 호주산 석탄을 사들이기 시작한 중국은 최근 목재 수입을 재개하고 보리에 매긴 80% 관세도 재검토에 들어갔다. 중국이 부과한 무역장벽이 거의 다 철회된 것이다. 사실상 완벽한 호주의 승리였다.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상어의 공격으로 뜯긴 보드에 의지해 살아 돌아온 서퍼처럼 호주는 놀랄 만큼 강건한 모습으로 부상했다”고 극찬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3월 말 ‘거부하고 뿌리치고 억제하라’는 제목으로 낸 보고서도 중국의 강압이 목표 달성은커녕 역효과만 냈다며 호주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표적이 됐던 8개국 사례를 분석한 결과 중국의 강압은 미미한 성공에 그친 전반적 패착이었다고 진단했다. 호주 리투아니아에선 전술적·전략적으로 모두 실패했고, 한국 일본 캐나다에선 엇갈린 전술적 성패 속에 전략적 실패를 맛봐야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여전히 군사적 수단보다 리스크가 적은 경제적 강압을 앞세운다. 경제적 약소국과 비대칭 우위 분야를 표적으로 삼아오던 중국은 최근 미국의 최대 메모리칩 제조업체 마이크론에 대해 ‘안보 위협’을 이유로 제재를 가했다. 미국은 “명백한 경제적 강압”이라고, 중국은 “미국이 협박 외교의 원조”라고 맞선다. 그 와중에 한국은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메우는 문제(backfilling)로 미중 반도체 전쟁의 한복판으로 끌려들어 갔다. 이런 미묘한 시기에 중국은 미국과 한층 밀착하는 우리 정부를 향해 거친 언사를 서슴지 않고 있다. 석연찮은 이유로 한국인 축구선수가 4주 가까이 구금돼 있고, 난데없이 한국 포털사이트 접속이 차단되는가 하면 연예인 방송 출연이 취소되는 등 조짐이 심상치 않다. 벌써부터 제2의 사드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부 핵심 인사들은 중국의 오만한 기세가 꺾이기 전까지는 ‘당당한 외교’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이 중국에 저자세를 보일 이유는 없다. 동맹과 국제연대의 힘, 더욱이 중국에도 절실한 우리 반도체 기업이 있는 만큼 중국도 한국을 다시 표적으로 삼기는 쉽지 않다. 다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정교한 대응책, 나아가 예방적 관리외교일 것이다. 호주가 중국에 맞서 이길 수 있었던 데는 그 배짱 못지않게 자원부국이란 행운이 작용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호주의 철광석은 중국도 건드리지 못하는 든든한 지렛대가 됐고, 중국 수출이 막힌 품목들은 쉽게 대체시장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해 정권교체의 효과도 한몫했다. 새 정부는 “용(龍)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며 조심스럽게 중국에 퇴로를 열어주는 실용외교를 폈다. 요즘 호주는 그 승리를 드러내놓고 자랑하지도, 국제무대에서 중국에 날을 세우지도 않는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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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美 대중 정책라인 줄교체… 바이든의 해빙 신호?

    1979년 미중 수교 이래 역대 미국 대선은 ‘중국 때리기’의 경쟁장이었다. ‘베이징의 도살자’라고 비난한 빌 클린턴,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조지 W 부시 등 역대 대통령은 선거전에서 한껏 중국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당선 뒤엔 그 톤을 누그러뜨리며 중국과의 교류에 집중하곤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이후부턴 ‘선거 때 비판, 재임 중 협력’ 공식마저 깨졌다. 매사 발언에 신중한 조 바이든 대통령도 대선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민주주의의 뼈가 없는 깡패”라고 했고, 취임 이래 트럼프 시절의 대중국 견제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그랬던 바이든 행정부가 역대 최악이라는 미중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어제 워싱턴에선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 간 회담이 열렸다. 양국이 격화된 경제전쟁에 상호 우려를 표시하는 수준이었다지만 일단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데 의미를 두는 분위기다. 최근엔 미국의 대중국 외교라인이 잇따라 교체됐다. ‘차이나 하우스’로 불리는 중국정책 총괄팀 책임자인 릭 워터스 국무부 부차관보가 다음 달 물러나고, 앞서 중국 외교를 이끌던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이 은퇴를 선언했다. 로라 로젠버거 백악관 중국·대만 담당 선임국장도 대만 주재 미국대사관 격인 미국대만협회(AIT) 회장으로 옮겼다. 중국도 5개월간 비어 있던 주미 대사 자리에 온건파 셰펑 외교부 부부장을 보냈다. ▷이런 움직임이 바이든 대통령의 예고대로 ‘해빙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은 그간 중국 견제 노선을 강화하며 대결과 경쟁, 협력을 함께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되 대결은 피해야 하며 충돌 방지를 위한 가드레일을 세우자고 했다. 사실 그런 기조 아래 지난해 말 미중 정상은 인도네시아 발리 회담에서 고위급 대화의 재개를 약속했다. 하지만 올해 초 중국 정찰풍선의 미국 영공 침입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으로 양국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모든 것이 끊겼다. 결국 6개월 가까이 늦춰진 미중 대화가 이달 초 양국 외교안보 사령탑 간의 오스트리아 빈 회동을 계기로 서서히 재개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향후 미중 관계를 낙관하긴 이르다. 미국은 최근 ‘디커플링(공급망 단절) 아닌 디리스킹(위험 제거)’이라는 유럽연합(EU) 측 접근법을 수용했다. 다만 그런 정책 전환도 어차피 불가한 공급망 분리 대신 첨단기술 접근 차단 같은 핵심과제로 좁혀 정교한 실행전략을 가동하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이제 미국은 본격적인 대선전에 들어간다. 공화-민주 양당이 드물게 초당적 합의를 이룬 대중 강경노선에서 벗어나는 어떤 유화 제스처도 국내정치의 제물이 될 수 있다. 이래저래 엇갈리는 신호와 전망 속에서 미중 간 갈등관리 외교가 어떻게 전개될지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요즘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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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한미 핵협의그룹에 숨겨진 ‘아시아 核 쿼드’

    4·26 한미 정상회담 결과 나온 핵협의그룹(NCG·Nuclear Consultative Group)을 두고 ‘사실상 핵 공유’라느니 ‘속 빈 강정’이라느니 그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어떤 제도나 기구든 시작은 낯설고 어설프기 마련이다. 첫발을 떼자마자 주저앉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몸집을 불리고 힘도 키우기 마련이다. 일단 자리를 잡으면 쉽게 소멸하지도 않는다. 냉전과 함께 탄생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탈냉전 이후에도 확장을 거듭하는 것은 그 제도화의 힘이다. NCG도 앞으로 무엇이 담기고 어떻게 변화할지 주목해야 한다. NCG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 연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재작년 2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 나온 시카고국제문제연구소(CCGA)의 보고서 ‘핵 확산 방지와 미국 동맹 안전보장’이 그 시작으로 보인다. 여기엔 척 헤이글 전 미국 국방장관과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 맬컴 리프킨드 전 영국 외교장관이 공동의장을 맡고 여러 나라 안보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 보고서는 호주 일본 한국을 미국의 핵 기획 과정에 참여시키고 이들과 미국 핵전력 정책을 논의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나토의 핵기획그룹(NPG·Nuclear Planning Group)과 같은 ‘아시아 핵기획그룹(ANPG)’의 창설을 제안한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개국 안보협의체 쿼드(Quad)와는 별도로 핵 억제에 특화된 ‘아시아판 핵 쿼드’의 설립을 주문한 것이다. 그 제안의 동인은 미국의 정권 교체였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경시와 자국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동맹국들의 의구심을 씻어내지 않으면 여러 나라의 독자 핵무장 등 세계적 핵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나아가 작년 2월엔 한국인의 71%가 자체 핵개발에 찬성한다는 CCGA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미국 방위공약에 대한 한국의 불신이 이슈로 떠올랐다. 또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의 ‘핵 보유 가능’ 발언은 세계 안보전문가 그룹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워싱턴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 말실수인지, 국내 여론 관리용인지, 미국을 향한 압박용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도 커져가는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반감을 관리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중 눈에 띄는 정책구상이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의 ‘신뢰의 위기: 아시아에서 확장억제 강화의 필요성’ 보고서였다. 클링너도 한미일 3국과 호주가 참여하는 나토식 다자 NPG 설립을 제안한다. 다만 “한국은 NPG란 이름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것이든 불만족스럽게 여길 것”이라며 한미 전력의 통합성과 한국의 다급한 요청, 국가적 자부심을 감안해 일단 양자 NPG를 만든 뒤 4자 그룹으로 묶는 2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이런 배경 아래 태어난 한미 협의체 NCG는 미국의 전략적 큰 그림에선 한미일 3자, 이어 아시아판 4자 NPG로 가는 첫 징검다리일 것이다. 실제로 NCG가 핵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갖추려면 위협 인식을 공유하는 한미일 3각 협력은 필수적이다. 나아가 북핵 위협이 더욱 커지고 미중 대결이 한층 격화되면 호주의 합류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한국이 불가피하게 중국과의 갈등을 최전선에서 감당해야 하는 지정학적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는 데 있다. 중국은 쿼드 같은 안보협력체를 두고 ‘배타적 패거리 짓기’라며 강력 반발해 왔다. 한국은 북핵에 맞선 한반도 안보에 초점을 맞추고 싶지만 미국은 대만해협은 물론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 NCG가 미국엔 아시아판 핵 동맹의 시험대지만, 한국엔 미중 간 선택의 시험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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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태국 왕실과 군부 동시에 심판한 ‘정치적 지진’

    2016년 10월 방콕 근처 골프장에서 일본인 20명이 태국군 차량 3대에 실려 군 시설로 연행된 적이 있다.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 국왕의 국상 애도 기간에 먹고 마시며 떠드는 불경죄를 저질렀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다행히 ‘엄중 주의’를 받고 풀려났다. 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게 왕실모독죄를 처벌하는 나라다. 왕과 왕비, 왕세자를 비방하거나 위협한 사람은 최장 15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그럼에도 와치랄롱꼰(라마 10세) 현 국왕의 각종 기행과 사생활 논란이 끊이지 않자 그토록 금기시되던 군주제 개혁도 정치적 도마에 올랐다. ▷14일 치러진 태국 총선에서 왕실 개혁과 군부 타도를 내세운 진보정당 전진당(MFP)이 하원 500석 중 152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됐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이 이끄는 프아타이당도 141석으로 선전했지만 2001년부터 유지하던 제1당 자리를 빼앗겼다. 군부 축출을 내건 양대 야당이 60% 가까운 하원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반면 육군참모총장 출신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창당한 룸타이상찻당(UTN)은 36석에 그치는 등 군부 계열의 정당은 모두 80석에 못 미쳤다. 무능한 군부에 대한 철저한 심판, 신뢰 잃은 왕실에 대한 깊은 회의, 나아가 탁신 가문의 포퓰리즘에 대한 실망까지 태국 민심의 현주소를 보여준 결과였다. ▷외신이 ‘정치적 지진을 일으켰다’고 평가한 전진당은 43세의 피타 림짜른랏이 이끄는 신예 정당이다. 피타는 기업 출신의 엘리트 정치인. 대학 졸업 후 부친이 경영하던 쌀겨기름회사를 잠시 운영했고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석사를 땄다. 동남아 모빌리티 플랫폼 ‘그랩 타이’의 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태국 선거사에서 처음으로 왕실모독죄 폐지를 공론화한 그는 징병제 폐지와 동성결혼 합법화 같은 급진적 정책까지 내세우며 2030세대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뛰어난 토론과 연설 솜씨로 청년층에서 록스타급 인기를 누리고 있고, 총리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도 진작에 1위를 예고했다. ▷피타는 어제 트위터에 “여러분이 동의하든 아니든, 제게 투표했든 아니든 저는 여러분의 총리가 되어 봉사할 것”이라고 썼다. 하지만 그가 총리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의 2017년 헌법 개정으로 총리 선출에는 하원 500명 외에 군부가 임명한 거수기 상원 250명도 참여한다. 상하원 합동 투표에서 과반인 376석 이상을 얻어야 하지만 전진당과 프아타이당 두 야당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군부 주도 연립정부에 참여했던 품짜이타이당 등 중도 정당을 끌어와야 한다. 당장 군주제 개혁에 대한 다른 정당들의 경계심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전진당의 최대 숙제가 됐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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