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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철희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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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3~2026-06-12
칼럼100%
  • [이철희 칼럼]삐걱대는 동맹, ‘동행’은 고단하고 ‘홀로’는 끔찍하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작년 초 한국을 ‘일본과 중국 사이에 떠 있는 항공모함’에 비유할 때만 해도 주한미군의 존재 가치를 강조하려는, 워싱턴을 향한 인정투쟁쯤으로 여겼다. 당장 한국을 대중국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위험한 발상 아니냐는 논란을 불렀지만, 트럼프 2기 들어 다시 고개를 드는 주한미군 감축론에 맞설 유용한 이슈 제기로 볼 만도 했다. 한데 브런슨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11월 이른바 ‘뒤집힌 지도(east-up map)’와 함께 ‘인도태평양의 숨겨진 전략적 이점’이란 글을 보도자료 형태로 주한미군 홈페이지에 올렸다. 한미 간 통상·안보 합의(조인트팩트시트)가 발표된 지 이틀 뒤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부 교육용으로 사용하던 자료를 공개하며 한국 내 여론전에 나선 것이다. 북쪽이 위인 표준지도와 달리 동쪽을 위로 뒤집은 이 지도의 중심에는 한반도가 있고 위로는 일본, 오른쪽으로는 대만·필리핀, 아래로는 중국, 왼쪽으로는 러시아가 위치한다. 평택 미군기지와 각국 수도를 직선으로 그어 각각의 거리도 표시했다. 브런슨은 ‘한국-일본-필리핀을 연결하는 전략적 삼각형’을 강조하며 북한-중국-러시아 3각에 맞설 최전선으로서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부각했다. 브런슨에게 한미 간 ‘동맹 현대화’ 합의는 곧 주한미군의 유연성 확대, 즉 붙박이군대가 아닌 신속기동군으로의 변신이었다. 특히 올해 1월 발표된 미국 국가방위전략(NDS) 보고서가 한국에 ‘북한을 억제하는 일차적 책임’을, 미국에 ‘결정적이나 더 제한적인 지원’을 명시하자 주한미군 역할 조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2월 주한미군 전투기가 서해 상공으로 발진해 중국 측과 군사적 충돌을 빚을 뻔한 사건은 대중국 견제 임무를 본격화하겠다는 신호나 다름없었다. 화들짝 놀란 건 우리 정부였다. 브런슨에게 항의하면서 주한미군이 서해 훈련 계획을 사전에 알렸느니 아니니, 나중에 브런슨이 사과를 했느니 아니니 논쟁까지 벌어졌고 갈등의 골은 깊게 파였다. 이후 정보 누설 논란 같은 불협화음이 잇달아 터져 나온 것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 가운데 브런슨만큼 논란을 몰고 다닌 경우는 드물다. 갈등이 있더라도 물밑에서 조율하거나 퇴임 후 털어놓는 게 관례였다. 그렇다고 브런슨이 유별난 것만은 아니다. 제복 입은 4성 사령관들을 외교 협상에까지 투입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브런슨의 행보는 그리 튀는 것도 아니다. 그는 백악관과 펜타곤 기조에 충실한 군인일 뿐이다. 브런슨은 이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둘러싼 갈등의 중심에 섰다. 그는 지난달 미 의회에 출석해 ‘정치적 편의주의’를 경계하며 전작권 전환의 조건 달성 시기를 2029년 1분기(1∼3월)까지로 제시했다. 이재명 정부 임기(2030년 6월)까지 1년 넘게 여유가 있는 시한이지만, 늦어도 2028년까지 완료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한국 정부는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최근 워싱턴을 다급히 찾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 장관은 미국 측의 ‘약간 다른 생각’만 확인하고선 브런슨의 시간표에 대해 “그건 군사 당국자의 얘기”라고 폄하했다. 물론 최종 결정은 양국 대통령 간 ‘정치적 결심’에 따라 내려진다. 그렇다고 현장 최고지휘관의 발언권을 무시할 순 없다. 이제 브런슨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일을 하도록 떠밀릴 가능성이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고 말한다. 동맹 현대화는 전작권 전환과 미군 유연화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야지 어느 한쪽만 먼저 갈 수 없는 구조다. 한미가 정교한 조율 없이 각기 유리한 방향으로 속도를 내려 할 경우 동맹은 궤도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 전작권 전환은 조건 충족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군 4성 장군이 연합사령관을 맡으면 미군 부사령관은 4성을 유지하는지, 유엔군사령관의 지위는 어떻게 되는지 그간 묻어둔 ‘뜨거운 감자’가 한둘이 아니다. 주한미군의 유연성을 존중하되 한국이 원치 않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문제는 어떤가. 한국의 발진기지화는 막을 수 있을지, 두 개의 동시 전쟁에는 어떻게 대응할지 전략적 조율이 이뤄져야 한다. 윈스턴 처칠은 일찍이 “동맹과 함께 싸우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딱 하나인데, 그것은 동맹 없이 싸우는 것”이라고 했다. 동맹과 같이 가는 길은 꽤나 불편하고 고단하다. 하지만 동맹 없이 홀로 가는 길은 끔찍하다. 물론 한국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동맹에 일방적 청구서를 내밀고 비용을 강요하는 미국의 갑질 보스식 태도 또한 바뀌어야 한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6-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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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희 칼럼]난폭한 패권과 한통속 열강 사이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한때 임시라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벌써 1년 가까이 겸직하고 있다. 50여 년 전 두 자리를 동시에 맡아 세계를 경략하던 헨리 키신저의 위상에 버금간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실상은 허울뿐이었다. 국무부도 국가안보회의(NSC)도 조직이 대폭 축소된 데다 굵직한 외교협상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친구와 맏사위가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최근엔 이란과의 종전 협상 수석대표마저 J D 밴스 부통령에게 주어졌다. 그러다 보니 루비오의 주 임무는 트럼프의 뒤를 지키는 병풍 역할에 가깝다. 트럼프의 백악관에서 ‘궁정 신하’로 살기란 그야말로 고단함의 연속이다. 주말마다 트럼프의 마러라고 리조트로 향하는 에어포스원 기내에서도 루비오는 시도 때도 없는 보스의 호출을 피하려고 담요를 푹 뒤집어쓰고 잠든 직원인 척 연기하기도 한다. 루비오는 사실 그 기질도 생각도 트럼프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과거 트럼프를 ‘사기꾼’이라며 격하게 비판했던 그에게 지금 자리는 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을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할지 모른다. 루비오는 대외정책에서도 전통적 패권론자지만 소신보다 순응을 택했다. 그러니 마가(MAGA) 진영은 그를 ‘매파 네오콘’이라고 견제하고, 반대편에선 그의 카멜레온 같은 변신을 두고 “마가의 여장 남자(drag queen)가 됐다”고 조롱한다. 이번 대이란 전쟁에 대해서도 ‘달성 불가능한 목표들’을 지적하면서도 반대하진 않았다. 루비오가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내놓은 화두가 바로 ‘다극(多極) 세계론’이다. 그는 취임 첫 인터뷰에서 “세계에 단극(單極)의 힘만 존재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며 “냉전 종식의 결과지만 결국엔 지구 여러 지역에 여러 강대국이 있던 다극 세계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식 세계관에 맞춘 자신의 시각 교정을 합리화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리더로서 미국의 책임 대신 트럼프식 강대국 간 거래 외교를 정당화하려는 논리적 시도였다. 사실 다극화 논리는 일찍이 냉전이 종식된 지 얼마 안 된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과 러시아가 내놓은 전략적 슬로건이었다. 미국의 패권 질서를 견제하면서 자신들도 나름의 세력권을 보장받겠다는 열망이 짙게 담긴 전략적 프로젝트였다. 다만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이라크전쟁의 늪에 빠지면서 그 위상이 예전만 못해지자 서방 학계에서도 10여 년 전부터 단극체제의 종언을 기정사실화하며 양극 또는 다극체제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벌써 4년을 넘기고 미국의 대이란 전쟁이 발발한 지금, 이제 세계가 다극화 시대로 본격 진입했다는 주장이 다시 봇물을 이루고 있다. 특히 호기롭게 전쟁을 시작하고도 그 출구 찾기에 급급한 미국 파워의 한계, 나아가 미국이 지난 80년간 이끌어온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무시하고 동맹 체제마저 흔들어대는 트럼프의 폭주를 지켜보면서 이제 다극체제를 더는 전망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는 기류도 적지 않다. 하지만 과연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는 무너졌는가. 미국이 과거의 힘과는 비할 바 없이 쇠퇴한 게 사실이지만 그 독보적 지위는 여전하다. 경제력에선 중국의 추격이 만만찮다지만 막강 군사력과 달러 패권 등 종합 국력 지수는 중국보다 훨씬 위에, 나머지 나라들에 비해선 까마득히 위에 있다. 학자들도 ‘불완전한(partial) 단극’ ‘불균형한(unbalanced) 양극’ ‘기울어진(lopsided) 다극’ 같은 다양한 형용사를 동원하며 새 체제로의 전환을 단정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진정 우려스러운 대목은 갈수록 거칠어지는 패권의 약탈적 행태와 그에 따라 급속하게 무너지는 동맹 체제다. 미국도 중-러도 다극체제의 안정과 협력을 내세우지만 그건 허상일 뿐 그 불안정성과 분쟁 가능성이 어느 체제보다 크다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강대국들이 서로의 세력권을 인정하며 한통속이 될 순 있으나 역사적으로 다수 강대국 간엔 동맹 관리가 더 복잡해지고 상대 의도를 오판할 가능성도 높아 쉽게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단극의 폭주와 다극의 결탁 사이에서 가장 고달픈 신세는 열강의 반열에 끼지 못한 채 버림받을지 말려들지 걱정하는 미국의 동맹들이다. 트럼프는 벌써 대서양 동맹을 손보겠다고 벼르는가 하면 한국에도 북핵과 주한미군을 언급하며 “우릴 돕지 않는다”고 힐난한다. 힘의 논리가 앞서는 국제사회에서, 더욱이 강대국 충돌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으로선 동맹의 축을 단단히 쥐면서도 중견 민주국가 간 연대도 모색하는 전방위 외교가 절실한 때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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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희 칼럼]트럼프의 전쟁, 두 번째 ‘불량 核국가’ 만들어주나

    연말 연초에 나온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과 국가방위전략(NDS)에는 냉혹한 힘의 질서를 강조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그중에서도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의 ‘공격적 현실주의’ 논리가 짙게 배어 있다. 대외정책의 최우선순위를 서반구(아메리카대륙)에 두고 압도적 우위와 군사적 지배의 복원을 천명하면서 아시아와 유럽에선 중국 러시아를 억제하기 위한 동맹의 책임분담을 강조한 것은 미어샤이머의 논지를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어샤이머에 따르면 어떤 강대국도 글로벌 패권이 되기는 어렵다. 미국도 서반구의 지역 패권일 뿐이다. 다만 미국은 서반구 패권이면서 다른 지역에서 패권의 출현을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특히 다른 지역에선 2∼3개의 강대국이 경쟁하도록 하면서 미국은 ‘역외 균형자’ 역할을 하는 게 현명하다는 그의 주장은 트럼프 대외전략의 핵심을 관통한다. 그 덕분에 미어샤이머가 트럼프 1기 때부터 어떤 학자보다 각광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대외정책이 과연 현실주의에 기초한 합리적 전략인가. NSS 문서는 “현실적이되 현실주의자가 아닌, 원칙적이되 이상주의자가 아닌, 강력하되 매파가 아닌, 절제하되 비둘기파가 아니다”라며 이른바 ‘유연한 현실주의’를 내세운다. 하지만 학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트럼프가 이념과 규범을 내세워 위선을 떨진 않지만 손익계산에 따라 뭐든 입맛대로 해치우는 노골적 속물주의는 낡은 제국주의의 21세기판 변종일 뿐이다. 4주 차에 접어든 대이란 전쟁을 두고도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뚜렷한 목표도 출구전략도 없이 시작된 전쟁의 예정된 실패”를 예견하며 싸늘한 평가를 내놓는다. 미어샤이머는 한층 신랄하다. 이스라엘이 던진 미끼를 트럼프가 덥석 물어버린 “전략적 재앙”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올해 초 미군 전력의 중동 배치 때부터 미국이 전쟁에 끌려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그런데 트럼프는 ‘중동의 질서를 일거에 바꾸는 위대한 업적을 세울 절호의 기회’라는 감언(甘言)에 넘어갔다. 베네수엘라 참수작전의 짜릿한 성공에 도취해 있던 터라 이번에도 ‘짧은 소풍’으로 끝날 것으로, 이란 민중의 봉기로 정권교체까지 이룰 것으로 오판했다. 이제 트럼프는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스스로 금기로 삼던 ‘끝없는 전쟁’의 수렁에 빠진 형국이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엔 이기지 않으면 지는 전쟁, 이란엔 지지 않으면 이기는 전쟁이 되고 있다. 시간은 이란 편이다. 미어샤이머는 “이란이 운전석에 앉았다”고 진단한다. 트럼프는 지상군 투입이 없는 승리를 원하지만 그건 기적을 바라는 일이라며 앞으로 전쟁은 몇 달, 몇 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전쟁은 우연과 돌발이 향배를 좌우하는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거기에 트럼프의 예측불가 독단까지 더해지면서 이 전쟁은 초불확실의 안개에 휩싸여 있다. 당장 이란이 미국의 막강 군사력에 맞서 얼마나 버틸지 의문이다. 한편으론 계산 빠른 트럼프의 재빠른 손절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라면 돌연 승리를 선언하고 철군한 뒤 호르무즈 해협 안전은 다른 나라들에 떠넘긴 채 자신은 천연덕스럽게 피스메이커를 자처하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전쟁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든 트럼프의 패착이 불러올 세계적 불안과 혼란은 장대하게 이어질 것이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 동맹체제에 남길 더 큰 균열과 상처는 물론이고 전 세계 반미 불량국가에 던지는 잘못된 메시지는 향후 핵 안보질서까지 흔들게 될 것이다. 사실 이번 전쟁의 근원에는 이란의 핵개발이 있다. 이란은 실제 핵무기를 만들진 않으면서 핵 기술과 인프라를 보유한 채 그 잠재적 핵 역량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는 ‘핵 문턱(nuclear threshold)’ 전략을 구사해 왔다. 그런데 이 전쟁은 결국 이란이 북한식 신속한 핵무장 경로를 채택하게 만들 것이고, 그 결과 중동의 유일 핵무장국 이스라엘의 핵무기 사용까지 자극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부를 수 있다고 핵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트럼프는 1기 때 북한과는 비핵화 협상을 하면서 이란과는 기존 핵합의(JCPOA)를 일방 파기했다. 김정은과의 현란한 외교 쇼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고 북한은 핵무장을 한층 가속화하면서 트럼프의 ‘핵국가(nuclear power)’ 거래 상대가 됐다. 이제 트럼프는 이란마저 핵 문턱을 넘어 핵무장으로 전력질주하게 만들 것이다. 절제력을 잃은 강대국의 변덕과 횡포가 두 번씩이나 불량국가의 핵 폭주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역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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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희 칼럼]김정은은 트럼프의 ‘러브레터’를 기다린다

    미국의 새 국가방위전략(NDS)은 도널드 트럼프 2기 들어 수행한 네 차례 군사작전을 곳곳에 등장시킨다. 작전명의 철자를 모두 대문자로 써서 강조했는데, 새해 벽두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압송한 ‘확고한 결의(ABSOLUTE RESOLVE)’와 지난해 6월 이란 핵시설을 공습한 ‘한밤의 망치(MIDNIGHT HAMMER)’가 각각 세 차례나 소개된다. 미군의 힘과 속도, 정확성을 언제 어디서든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터프한 지도자’ 트럼프의 구미에 딱 맞췄다. 전광석화처럼 펼쳐진 베네수엘라 작전 성공 직후 ‘트럼프 광신도’로 불리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는 힘(strength)에 의해 지배되고 무력(force)에 의해 지배되며 권력(power)에 의해 지배된다. 이것이 세상의 철칙이다.” 거리낌 없는 힘의 사용은 강대국의 당연한 권리이며, 미국이 지난 80년간 이끌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규범은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라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런 트럼프 2기의 군사적 행동주의는 1기 때와 비교하면 꽤나 낯설다. 과거의 트럼프는 “화염과 분노” 같은 협박을 무수히 날렸지만 종국엔 엄포와 허세로 드러나기 일쑤였다. 트럼프는 누구보다 위험회피 성향이 강했다. 스스로도 ‘새로운 전쟁을 벌이지 않은, 전쟁을 끝내는 피스메이커’임을 자랑하곤 했던 트럼프가 이젠 군사력 사용에 과감해졌다. 물론 트럼프는 짧고 스펙터클한 ‘한 방’, 특히 미군 피해가 없는 안전한 작전만을 원한다. 허나 군사작전이 늘 깔끔할 순 없다. 아직까진 운이 좋았고 여전히 조심스럽다. 그는 이스라엘이 이란 방공망을 완전히 파괴한 뒤에야 ‘한밤의 망치’를 승인했고, ‘확고한 결의’ 때도 지미 카터 행정부의 이란 인질 구출작전 실패를 떠올리며 “재앙으로 끝날까 봐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런 강렬한 성공에 고무된 걸까. 트럼프는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무력 사용 위협은 물론이고 동맹국 영토인 그린란드의 합병 야심까지 노골화했다. 이젠 이란을 겨누며 대규모 전력을 집결시켰다. 이를 두고 과도한 당 섭취에 따른 일시적 과잉흥분(sugar high) 상태라느니, 더욱 진폭이 커진 트럼프식 판 흔들기라느니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그 가운데 조지 W 부시 시절 국가안보회의 선임국장을 지낸 마이클 싱 워싱턴근동문제연구소장의 포린어페어스 기고문 ‘겁먹은 미국(America the Fearful)’이 눈에 띈다. 겉보기엔 자신감 넘치는 패권국의 모습이지만 실제론 위상 상실과 힘의 쇠퇴에 대한 두려움의 표출이라고 싱은 진단한다. 어쩌면 진부한 ‘미국 쇠퇴론’의 연장선이지만 강대국이 아닌 약소국, 심지어 동맹국까지 괴롭히는 ‘강약약강’에는 미국의 불안한 집단 자아가 담겨 있는 듯하다. 싱의 분석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권력 집중과 대만 통일 집착 이유로 회자됐던 ‘중국 피크(peak China)론’을 상기시킨다. 중국 국력이 이미 정점을 찍은 터라 당장 쇠락에 대한 두려움, 나아가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초조감이 군사적 모험주의를 부른다는 경고는 아직도 유효하다. 쇠퇴와 추락에 대한 공통의 두려움이 강대국 결탁의 시대를 이끄는지도 모른다. 이런 강대국 정치에 누구보다 예민하게 움직인 게 북한 김정은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몰락의 분기점에 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절박한 손을 재빠르게 잡는 승부수를 선보였다. 그 결과 푸틴은 트럼프를 만나기 전에 미리 김정은과 통화해 상의하고, 베이징 열병식에도 김정은이 시진핑과 나란히 설 수 있게 주선한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4월 초 트럼프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추진될 북-미 회동을 놓고 김정은은 고심하고 있다. 작년 12월 당 전원회의를 일찌감치 마무리한 뒤 한 달 넘게 당 대회 개최를 늦췄던 김정은이다. 이 와중에 트럼프는 이란을 겨누며 ‘한 방’을 위협하고 있다. 핵 개발 수준이나 정권 내구성 등 북한과 이란의 처지는 크게 다르지만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는 김정은의 공포감은 크다. 갈 길 급한 트럼프와 시진핑의 ‘빅딜’ 거래에 제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하지만 트럼프와 오랜 애증의 브로맨스를 유지해온 김정은으로선 놓치기 아까운 기회다. 미중 대결과 결탁의 게임에 어떻게든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7년 전 판문점 번개처럼 ‘트럼프 쇼’의 들러리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트럼프 친서나 특사 교환 같은 멍석이 깔리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문제는 김정은의 현란한 생존게임을 우리는 뒷전에서 구경만 해야 한다는 점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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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희 칼럼]그린란드를 보며 평택을 걱정하는 시대

    무슨 일을 벌이든 요란하기로는, 멈춤이나 U턴도 느닷없기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능가할 이가 없다. 새해 벽두부터 베네수엘라 권력자를 갈아치우고선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차지하겠다며 협박과 모욕을 일삼던 트럼프가 지난주 돌연 협상 쪽으로 돌아섰다. 한바탕 소용돌이가 지나간 뒤 ‘트럼프는 늘 겁먹고 물러선다(TACO)’느니,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이었다’느니 호사가들의 해설이 이어지지만, 한편으로 트럼프가 그처럼 세상을 뒤집어 놓은 기괴한 발상의 근원을 추적하는 것은 언론의 또 다른 과제가 됐다. 그린란드에 대한 트럼프의 야심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트럼프 1기 시절인 2019년 8월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서였다. 트럼프가 그린란드 구입 방안을 찾으라고 참모진을 끊임없이 채근하고 있는데, 일부 측근도 농담으로 여긴다는 내용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을 위한 거대한 부동산 거래가 될 것”이라고 속내를 숨기지 않았지만, 덴마크도 그린란드도 “터무니없다”고 일축하면서 잠깐의 해프닝으로 묻혔다. 하지만 이번 소동을 계기로 트럼프의 60년 지기이자 글로벌 화장품 기업의 상속자 로널드 로더가 이미 2018년부터 그린란드 구매를 부추겼다는 존 볼턴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의 증언이 나왔다. 볼턴은 “트럼프는 친구로부터 들은 단편적 정보를 진실로 간주한다”고 털어놨다. 평생 이기느냐 지느냐, 뺏느냐 뺏기느냐의 제로섬 세상을 살아온 트럼프다. 일단 입력된 ‘미달성 사업구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사실 트럼프 1기 때만 해도 그는 이른바 ‘어른들(adults)’이 막아서면 주춤하고 물러서는 ‘투덜이 왕’이었다. 지금은 그의 말 한마디면 곧바로 실행 모드에 들어가는 충성파 가신들을 거느린 ‘괴팍한 황제’다. 그는 부통령과 국무장관까지 ‘애들(kids)’이라 부르고, 유럽 동맹기구 수장은 그를 ‘아빠(daddy)’라 칭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자신의 메달을 헌납해도 거절할 줄 모르는, 나아가 노벨상을 못 받았으니 ‘아차상’ 쯤으로 그린란드를 갖겠다는 그 뻔뻔함은 또 어떤가. 트럼프는 재집권하자마자 그간 미국이 이끌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철저히 뒤흔들었다. 무차별 관세폭탄으로 자유무역 질서를 무너뜨렸고, 동맹에도 “FAFO(까불면 다친다)”라고 협박하는 약탈적 패권자가 됐다. 이제 그는 “내겐 국제법도 필요 없다. 내가 생각하는 도덕성만이 유일한 제어장치다”라고 호언한다. 이런 대외적 횡포의 근저에는 미국 민주주의의 퇴행이 있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 국민의 동의와 참여는 사라진 채 분열과 갈등만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1년간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하며 내부 견제장치를 무시하거나 우회하면서 밀어붙였다. 의회도 법원도 머뭇거리는 사이 무차별 이민 단속에 군대까지 배치했고 법무부를 동원한 정치적 복수도 서슴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트럼프의 3선 도전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현실화할지 모른다. 미국의 위기는 곧 세계의 위기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핵우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안보동맹으로서 트럼프의 동맹 모욕은 결코 남의 일일 수 없다. 트럼프는 작년 8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평택 미군기지를 두고 “그 땅을 임대가 아닌 소유 형태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싶다”고 했다. 앞서 2017년 방한해선 평택 기지를 둘러본 뒤 ‘한국이 건설비 90%를 부담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왜 100%를 받아내지 않았느냐”고 따졌던 트럼프다. 지금 우리는 그린란드 사태를 보면서 평택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내부의 제도적 견고성은 어떤가. 불과 1년 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를 겪었던 한국이다. 최근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12·3 내란 가담에 대한 법원의 중형 선고는 2020년 미국의 1·6 의사당 난입 사태 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행동을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의 대선 불복 요구와 폭도들의 “펜스 처단” 외침에도 민주적 절차에 충실했던 2인자의 강직한 처신이 마지막 순간 친위 쿠데타의 성공을 막았다. 물론 4년 뒤 트럼프의 복귀를 막을 순 없었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권력은 서로 닮아가며 타락한다. 트럼프가 권위주의 독재자들을 선망했듯이. 우리의 오랜 모델이었던 미국이지만 그 퇴락까지 닮아갈 수는 없다. 세계가 뒷걸음칠수록 우리는 안팎으로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대외적으로 동맹과 연대를 정교하게 관리하고 내부적으로 민주와 법치를 더욱 단단히 다져야 한다. 그것이 거센 탁류가 몰아쳐도 버틸 수 있는 안전자산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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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희 칼럼]강대국 결탁의 시대가 온다

    참으로 요란한 한 해였다. 물론 진원지는 미국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와 함께 전 세계는 불확실성의 혼돈에 내던져졌다. 트럼프는 교역의 규칙을 다시 쓰고 친구와 적의 기준을 무너뜨렸다. 세계 질서의 보증자였던 미국이 난폭한 파괴자가 됐다. 그래서 트럼프는 과연 원하던 성과를 거뒀는가. 관세 수익으로 국고는 늘렸다지만 세계로부터 미국의 신뢰를 까먹은 것은 물론이고 연말에 받아든 국내 지지율 성적표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반면 그 최대 수혜자, 즉 결과적 승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었다.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21세기 패권을 위한 2025 라운드 대결에서 승리는 중국의 것이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의 145% 관세에 희토류 수출 통제로 대응한 결과였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에드워드 루스는 ‘적이 실수하고 있을 땐 절대 방해하지 말라’는 명언으로 중국의 승리를 설명했다. 시진핑은 저절로 굴러오는 전략적 선물을 조용히 챙기기만 했다는 얘기다. 외부의 압박을 버티는 데는 이골이 난 중국에 관세 폭탄이 먹히지 않을 터인 데다 함께 스크럼을 짜야 할 동맹과 우방까지 화나게 만든 상태에서 벌인 싸움에서 승리를 기대하긴 애초부터 무리였다. 어쨌든 그 결과 중국 제조업의 세계시장 지배력과 놀라운 첨단기술 추격 속도, 특히 독점적인 희토류 공급망의 무기화까지 ‘중국의 힘’을 선명하게 각인시켰을 뿐이다. 트럼프는 이제 중국과의 빅딜에 매달리고 있다. 10월 말 부산에서의 미중 정상회담 이래 중국을 향한 타협의 손짓은 더욱 노골적이다. 특히 이달 초 한밤중에 슬그머니 백악관 홈페이지에 공개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선 트럼프 1기 때 ‘강대국 경쟁의 시대가 왔다’며 한판 붙어보자고 벼르던 것 같은 결의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새 NSS는 마치 신생 정당의 정강정책처럼 파격적 레토릭이 가득하지만 그 어떤 일관성도 맥락도 찾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합성물 같다. 고립주의 마가(MAGA) 진영부터 전통적 패권론자, 중국 견제론자, 딜 메이커 그룹까지 다양한 이들의 손을 거쳤지만 제대로 걸러지지도 다듬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저마다 트럼프의 생각일 것이라며 내놓은 주장들을 얼기설기 엮은 ‘트럼프 세계관 탐구 보고서’ 수준이다. 그렇게 나온 NSS 곳곳에선 은퇴를 앞둔 노쇠한 챔피언의 심리상태를 연상시키는 대목이 적지 않다. 자국 이익 외엔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제국의 피로감 속에 확장과 전진보다는 축소와 후퇴의 기류가 역력하다. 건국 초기의 비(非)개입주의 전통을 상기시키면서도 뒷마당 중남미에 대해선 완벽한 장악을 추구하고, 유럽에는 ‘문명 소멸’을 전망하며 대놓고 극우세력에 대한 지원을 천명한다. 나아가 세계에 대한 지배가 아닌 세력균형을 추구할 것이며 “더 크고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의 특별한 영향력은 국제 관계의 변치 않는 진실이다”라고 천명한 대목은 ‘다극화 질서’나 ‘세력권 분할’ 같은 세계질서의 근본적 전환, 나아가 19세기 유럽의 강대국 협조체제 같은 ‘강대국 간 결탁’의 시대를 예고하는 듯하다. 대중국 정책과 관련해선 트럼프가 모종의 빅딜을 위해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 대신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할 수 있다던 백악관 안팎의 우려는 일단 불식시켰다. 다만 NSS 보고서는 대만해협의 일방적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던 바이든 시절의 언명에서 ‘지지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물러섰다. 나아가 미국은 최근 고조된 중-일 갈등에 거리를 두고 있고, 며칠 전 공개된 ‘2025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서도 적대적 톤을 누그러뜨렸다. 이 모든 게 내년 4월 중국 방문을 앞둔 트럼프에게 딜의 공간을 열어두기 위한 유화 제스처일 것이다. 트럼프 2기 출범 이래 강대국 간 대결 기류가 느슨해지면서 한때 유행하던 ‘디커플링’ ‘신봉쇄정책’ 같은 대결의 언어는 어느덧 사그라진 듯하다. 내년에도 미-러 간, 미중 간 타협의 분위기는 이어질 것이다. 그게 잠깐의 해빙일지, 결탁의 본격화일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그 사이에 낀 나라들로선 자신의 운명이 스트롱맨 간 거래에 좌지우지될 수 있는 더 큰 불확실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연초 한반도 남쪽과 북쪽에서도 중요한 변화의 모색이 이뤄진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일본 방문, 북한의 9차 노동당대회 개최가 예정돼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수상한 계절, 어느 때보다 유연한 대응 능력과 균형 감각이 절실한 때다. 물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자강력 확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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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변동불거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배리 아이켄그린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대) 교수는 세계가 ‘초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Hyper-Uncertainty)’로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존 갤브레이스의 저서 ‘불확실성의 시대’가 출간된 1977년 세계가 겪은 석유 파동과 스태그플레이션 같은 불확실성은 그 40년 뒤인 2017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올해야말로 8년 전의 불확실성을 무색하게 했다. 유일하게 예측이 가능한 일관성이란 그 비일관성, 즉 예측 불가능성이었다. ▷세계에 불확실의 혼돈이 밀려든 올해, 한국 사회가 겪은 격변도 만만치 않았다. 대학교수들이 올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변동불거(變動不居)를 가장 많이 꼽은 것도 작년 말 느닷없는 비상계엄 이후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 등 쉴 틈 없이 이어진 격동의 한 해를 떠올린 때문일 것이다. 교수신문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