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충원 못하면 대학 붕괴”… 학과 정원 탄력조정하며 안간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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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쇼크]
저출산에 휘청이는 대학들
<下>생존-붕괴 갈림길 선 지방대

“정원을 줄여도 신분은 확실히 보장해 드립니다.”

국립대인 강원대 대학구조혁신위원회가 지난해 교수들에게 공언한 내용이다. 강원대는 교수들을 어렵게 설득한 끝에 2022학년도 신입생을 뽑는 올해 말 입시부터 매년 학과별 입학 정원을 조정하기로 했다. 조정 대상은 2년 평균 재학생 충원율이 100% 미만인 학과다. 채우지 못한 정원의 30%만큼 입학 정원을 줄이는 방식이다. 줄어든 정원은 충원율 100% 이상인 학과에 더해진다. 이에 따라 강원대의 2022학년도 입학 전형에서 조정된 정원은 145명이다. 43개 학과의 정원이 줄었고, 40개 학과 정원이 늘었다. 강원대는 학과를 폐지하더라도 교수들을 유사 학과나 교양학부로 옮겨 준다는 조건을 내걸고 국내 최초로 이 같은 ‘탄력정원제’를 도입했다.

이의한 강원대 교학부총장은 “자기 전공 정원이 줄어드는 걸 좋아하는 교수가 어디 있겠느냐”면서도 “학령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마당에 재학생 충원율이 나쁘면 대학 평가에서 좋을 평가를 못 받고 신입생까지 외면하니 교수들도 필요성을 느꼈다”고 전했다.

○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위기의식 고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흐름과 갈수록 줄어드는 학령인구 속에서 국내 많은 대학은 수요에 따라 과별 정원을 융통성 있게 조정하는 탄력정원제를 도입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교수들의 이른바 ‘밥그릇 싸움’ 때문에 어려웠다. 하지만 대학도 생존 문제가 코앞의 현실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강원대도 2015년 1주기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서 거점 국립대 중 유일하게 구조개혁 대상에 포함돼 정원이 강제로 감축되는 ‘충격’을 겪고 이런 결단을 내렸다. 이 부총장은 “학생들이 외면하는 학교는 의미가 없다는 데 모두가 공감한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올해 진행되는 3주기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에서 학생 충원율에 대한 배점이 2배로 높아진 만큼 감점을 크게 받지 않기 위해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학생 정원을 줄여 충원율을 높이는 ‘셀프 구조개혁’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다르다. 동아일보가 취재한 지방대와 전문대 19곳 대부분은 올해 학령인구 급감의 충격을 받고도 여전히 정원 조정에 손을 대는 건 꺼리는 상황이다.

전북 A대는 “올해 처음으로 미달 사태를 경험했는데 등록금 수입만 바라보는 사립대 중 누가 당장 정원을 자율적으로 확 줄이겠냐”고 반문했다. 강원 B대 역시 “충원율 배점을 높였으니 대학이 당장 정원 감축할 거라는 건 착각”이라며 “대학은 기업처럼 어음 못 막았다고 쓰러지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모집 정원이 반으로 줄더라도 시설 투자를 안 하고 교육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돈을 줄여가며 운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갈수록 ‘좀비 상태’에 빠지는 대학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자율 개혁 한계…정부 역할 중요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대학 자율만 외칠 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대학의 역할을 다변화하고 △특색 있는 지방대를 육성하는 한편 △미래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립대의 경우 떠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허준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정원 조정을 시장에 맡기면 양극화가 가속화된다”며 “정부 주도로 지방 쿼터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지역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학은 예외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가 나서서 지방대나 전문대가 지역사회에서 직업훈련 또는 평생교육 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자체 및 기업과의 연계를 도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갈수록 고3 졸업생만으로는 정원을 채우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일본 이시카와현은 지역의 국공립대 6곳, 사립대 8곳, 고등전문학교 2곳, 지자체와 기업 등이 2006년 ‘대학컨소시엄’을 만들었다. 컨소시엄 내의 대학은 어디서든 수업을 들으면 학점이 인정되고, 공동으로 고교 대상 진로 설명회도 진행한다. 상점가 활성화 방안, 장애인 스포츠 진흥, 관광객 재방문 확대 방안, 탁주 제조기법 연구 등 지역과제 연구를 대학이 진행하기도 한다.

정원창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선임연구원은 “일본은 입학정원 1000명 미만인 대학이 전체의 76%”라며 “종합대학도 아니고 2∼4개 학부만 둔 소규모 대학이 많다 보니 지역의 대학, 기업, 지자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역을 살릴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전했다.

더 이상 대학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사립대에는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사립학교법은 대학을 청산하는 경우 잔여 재산을 국가나 지자체로 귀속하게 하다 보니 설립자들이 어떻게든 버티려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사학 설립자의 재산 기여분을 일부 인정해서 자진 폐교를 돕자는 취지다. 교육부는 “부실 사학 운영자들에게 유리할 수도 있는 복잡한 문제”라며 “올해 한계 사학 퇴로 방안 마련을 위한 정책연구를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예나 yena@donga.com·이소정 기자
#학생#충원#대학#붕괴#저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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