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면역 여권’[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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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가 21일 백신을 접종받지 않으면 대중교통 이용이나 특정 장소 접근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내놓자 야당에서 ‘보건 독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코로나19 항체 보유’ 여부에 따라 국가 간 이동은 물론 국내 활동도 제한하는 ‘면역 여권’ ‘면역 면허’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면역 여권’은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했거나 백신을 접종한 뒤 항체가 형성돼 면역력이 생겼음을 국가가 자격증처럼 인증하는 것이다. 여행과 항공 분야 등의 경기를 살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 이미 몇몇 국가에서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에스토니아가 7월 세계 처음으로 ‘디지털 면역 여권’을 발행했고 헝가리는 9월 관련법을 통과시켰다. 발트 3국 국가 간,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 간에는 ‘면역 여권’이 있으면 입국 후 2주간 자가 격리를 면제해주는 ‘트래블 버블’도 시행 중이다.

▷‘면역 여권’이 코로나 봉쇄를 돌파하게 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도 크지만 부작용 우려도 만만치 않다. ‘면역 여권’은 소지자가 바이러스를 막아낼 수 있는 항체를 보유해 자유롭게 활동해도 감염 우려가 없다는 것이 근본 전제다. 하지만 미국의 150여 개 혈청 검사 중 12개만이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승인받았지만 정확도가 81%에 그친 것도 있을 만큼 혈청 검사의 정확성과 신뢰성은 논란이 있다. 더욱이 코로나19는 항체가 있어도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 데다 항체가 생긴 뒤에도 2차, 3차 감염 사례도 속출하는 괴질(怪疾)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면역 여권’은 믿을 수 없다고 반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윤리적인 논란도 있다. 면역 보유에 따라 사람과 국가를 차별하는 증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19세기 미국에서 치사율 50%의 황열병이 돌자 이 병을 앓고 나은 사람이 아니면 일자리는 물론 집도 못 구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면역 여권’이 사회 활동에 필수 증명서가 되면 위조가 판치고 암시장이 형성될 수도 있다. 가짜 증명서 소지자가 ‘면허받은 감염원’으로 활개 치는 모습을 그려 보면 오싹하기까지 하다.

▷스페인 마드리드는 7월 ‘면역 카드’를 발표하면서 “다른 나라에 수출해야 할 모델”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지만 “면역 여부로 차별하는 거냐”며 시민들이 강력히 반발하자 하루 만에 취소했다. 각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돼, 코로나19 제압에 조만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와 싸우면서 생겨난 사회적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코로나19#면역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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