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82세에 6번째 징역형 선고받은 장영자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1월 23일 23시 18분


1980년대 사채업계 ‘큰손’ 장영자 씨(82)가 얼마 전 사기죄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사찰을 공동 명의로 인수하자’고 속여 지인 소개로 만난 피해자로부터 1억 원을 챙겼다고 한다. 1982년 단군 이래 최대 금융 사기였던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후 6번째 징역형이다. 형이 확정되면 전체 수감 기간이 35년으로 늘어난다.

▷장 씨는 5공 시대를 돌아볼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다. 사건은 시중에 파다한 소문에서 시작됐다. 이순자 여사의 측근인 미모의 여성이 서울 시내 특급호텔 한 층을 세내어 쓰면서 대형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장 씨는 이순자 여사의 작은아버지 이규광 씨 처제이고, 남편 이 씨는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이었다. 장 씨 부부를 통해 청와대가 비자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자 청와대 민정팀 내사를 거쳐 검찰 수사가 시작됐고, “겨우 안정돼 가던 청와대와 나라 경제를 뿌리째 뒤흔들어 놓은”(이순자 자서전)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장 씨 부부는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에 접근해 현금을 빌려준 뒤 거액의 어음을 받아내고 이를 사채시장에서 할인해 챙긴 현금으로 다른 회사에 같은 수법으로 사기 쳐 돈을 불렸다. 피해액이 6400억 원대로 당시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2%, 정부 예산의 10% 수준이었다. 철강업계 2위 일신제강과 도급 순위 8위 공영토건을 비롯해 여러 회사가 부도났고, 이규광 씨를 포함해 30명 넘게 구속됐다. 정부는 민심 수습을 위해 총리를 비롯한 5공 실세 19명을 교체했다. 그러고도 장 씨는 당당했다. “경제는 유통이다. 날 풀어주면 막힌 돈을 유통시킬 자신 있다.”

▷5공 청산 후로도 장 씨는 출소와 재범을 되풀이했다. 1차부터 6차 사건까지 법원이 인정한 피해액만 6891억 원이다. 장 씨는 왜 멈추지 않는 걸까. 사기는 피해자가 속아 넘어가야 완성되는 범죄여서 사기꾼 입장에선 ‘속는 사람이 나쁘다’고 범죄를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어 재범률이 높다. 특히 장 씨처럼 ‘큰 건’을 성공시켜 본 사람은 그 쾌감이 워낙 커 평범한 삶은 무료해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이철희·장영자 사건은 피해자에겐 악몽이고 정권에도 치명타였지만 돈도 가족도 없고 세금 체납액만 21억 원인 장 씨에겐 그 시절이 화양연화였을지 모른다. 각별한 인맥과 ‘고위층 구권 화폐 비자금’ 같은 거짓말을 흘려 쉽게 돈뭉치를 만들 수 있었고, 당시 서울 시내 20평대 아파트를 사고도 남는 1100만 원을 하루 생활비로 쓰고 외제차 5대를 굴렸다. 지금은 사기 수법도 첨단화하고 있지만 장 씨는 여전히 어음이나 위조 수표 방식을 고수하며 화려했던 ‘큰손의 추억’에 갇혀 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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