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산타[횡설수설/김영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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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한 일간지는 2015년 12월 산타클로스 부음 기사를 실었다. 산타가 북부 노르카프에서 227세를 일기로 사망했고 북극 교회에서 장례식이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동심 파괴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화들짝 놀란 신문사는 이 소식이 오보였다며 사과문을 게재했다. 곧바로 웹사이트에서 관련 소식을 삭제한 뒤 진상조사에 나섰지만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동심을 잃어버린 순간이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하는 어른은 많지 않다. 그보다는 자녀들이 산타를 믿지 않게 된 시기를 기억하는 이가 많다. 무심코 집 안에 내던진 선물 영수증을 아이들이 본 순간, 카드에 남겨진 산타의 글씨체가 엄마와 똑같다는 걸 깨닫는 순간 등 각양각색이다.

▷올해 모든 걸 집어삼킨 코로나19는 성탄절 풍속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성탄절이 내년 1월 초로 옮겨졌다는 우스개가 유행했다. 해외에서 입국한 산타가 2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니 늦출 수밖에 없다는 것. 성탄절에 맞춰 선물을 주려고 이미 입국해 자가 격리 중이라는 ‘반론’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방역을 담당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한 전문가는 “산타는 바이러스에 면역을 갖췄다. 각국 정상들이 검역조치를 완화해 산타가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산타의 자가 격리를 걱정하지 말라는 건데, 동심을 지키려는 WHO의 착한 거짓말인 셈이다.

▷산타의 방문이 코로나 확산이라는 ‘최악의 선물’로 번지는 일도 벌어졌다. 최근 산타로 분장한 자원봉사자가 다녀간 벨기에 북부의 한 요양병원에서 확진자가 무려 75명이나 나왔다. 방문 당시엔 증상이 없었고 2m 거리 두기를 지켰지만 일부 거주자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게 사태를 키운 원인이었다고 한다. 산타가 슈퍼 전파자가 된 것인데,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는 산타클로스와도 충분한 거리 두기를 해야 할 판이다.

▷꼭 흰 수염에 빨간 옷을 입고 썰매를 끌어야만 산타클로스는 아닐 것이다. US여자오픈 골프대회에 처음 출전한 김아림이 15일 짜릿한 우승 소식을 전했다. 1998년 박세리가 외환위기로 절망에 빠져 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전했던 감동이 되살아났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김아림은 4라운드 내내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해 골프 팬들과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김아림은 자신이 코로나에 걸리는 것은 무섭지 않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지 몰라서 불편을 감수했다고 한다. 김아림은 이런 말도 했다. “나의 우승이 누군가의 기쁨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따뜻한 마음이 바로 산타클로스의 마음이 아닐까.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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