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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민석아! 전화라도 받아줄래? 우린 네가 너무 그립다”

입력 2020-10-10 03:00업데이트 2020-10-1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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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히어로콘텐츠 / 증발 <5·끝> 쏟아지는 응원과 연대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 ‘증발 사라진 사람들’ 시리즈가 4회에 걸쳐 나가는 동안 누군가는 “내 얘기 같다” “우리 가족이 숨겨온 아픔과 비슷하다”고 했다. 누군가는 “나도 증발하고 싶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독자들의 인생 사연은 각자 다르지만 하고 싶은 말은 같았다. “증발자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고. 증발자들은 스스로를 삭제했지만, 세상은 그들을 삭제하지 않았다는 연대의 신호탄을 쏘는 셈이다.

○ 나도 증발자다

크게보기동아일보가 4회에 걸쳐 보도한 ‘증발 사라진 사람들’ 시리즈의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들. 증발자와 가족들의 사연에 공감하고 위로를 건네는 독자들의 반응에 시리즈 주인공들은 “다시 힘을 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증발자)가 바로 접니다. 강남에서 대궐집에 살고 사업하며 크게 벌고 IMF도 잘 견뎠지만 한순간의 사업 실패로 월세 15만 원 옥탑방에서 강아지 두 마리랑 삽니다.”

2회 ‘증발자들의 공간, 미래고시텔’ 기사(본보 6일자 A1·4·5면 참조)가 보도되자 자신도 증발자라고 밝힌 온라인 댓글이 화제가 됐다. 글을 남긴 누리꾼(kjwo****)은 “그러할지라도 희망과 미래는 늘 간직하고 살아간다”며 다른 증발자들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댓글에는 ‘암흑의 시간들을 지나면서도 도전하는 모습이 귀감을 준다’ ‘살아줘서 감사하다’ ‘힘내세요’ 같은 격려의 댓글이 꼬리를 물었다.

또 다른 독자(ysch****)는 “주식 투자 실패, 가정의 냉대, 강제 사직 후 증발해 개인회생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면서 “증발자 여러분, 삶이 있는 한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 달라”고 했다. 증발자들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응원하고 나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도 많았다. 아이디가 ‘huti****’인 독자는 “기사 속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게 요즘 내 심정이다. 사업 한번 실패해 다시 힘내서 살아보려 하는데 매출은 엉망이고 빚은 쌓여가지만 바로 정리도 못 한다. 살아가다 보면 꽃길이 나올 줄 알았는데 걸을수록 진흙탕에 빠져든다”고 호소했다. 이 글에는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 ‘바닥을 치면 끝이 아니라 분명 상승한다’ 같은 댓글들이 힘을 불어넣었다.

○ 응원과 연대가 현실로

이미 증발해버린 사람들, 지금 이 순간 증발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관심과 배려를 간직하자는 따듯한 반응도 많았다. 특히 증발자들이 원한다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독자는 동아일보 독자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증발자들이 정상적 시민으로 복귀를 시도하는 과정까지 추적해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1회 ‘증발했던 동생이 돌아왔다’ 기사(본보 5일자 A1·4·5면 참조)의 주인공인 문모 씨(48)를 도우려는 손길도 등장했다. 법무부의 범죄예방 자원봉사단체인 ‘법사랑’이 문 씨가 건설 현장에서 다친 오른손, 그리고 증발의 원인 중 하나였던 환청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 문 씨를 발견하고 실종선고 취소를 도운 인천지검 부천지청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증발 6년 만에 사회로 복귀한 문 씨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문 씨 역시 재활 의지를 다지고 있다. 문 씨는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형편이 나아지는 대로 더 열심히 살려고 한다”고 했다. 문 씨의 누나는 “동생이 떠나 있었던 힘든 시기를 딛고 이제 동생과 서로 돌보며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2회에서 증발자들이 모여 사는 공간으로 소개된 서울 용산구 미래고시텔 측 역시 본보에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미래고시텔 김아림 간사는 “엉켜버린 삶의 문제를 안고 있는 분들과 매일 같이 지내는 게 녹록지는 않다”면서도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그들과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더 좋은 내일을 소망하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끝내 찾지 못한 민석이… “우리는 네가 그립다” ▼






청년증발자 홍민석씨 쫓아 3개월
휴대전화도 복구했는데 흔적 감감
전직장 찾아가고 사망자 DNA 비교
증발만 확인… 친구들 “널 기다려”




어머니 윤모 씨가 스물다섯 살에 증발해버린 아들 홍민석 씨의 유치원 졸업사진을 들고 있다. 윤 씨는 “언론을 통해서라도 아들을 찾고 싶다”며 아들의 실명을 공개해도 된다고 취재팀에 밝혔다.

6월 22일 낮 12시. 밤새 청소 일을 하고 오전 10시경 집으로 돌아온 윤모 씨(60·여)는 빌라 현관 문을 열어둔 채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라진 아들 홍민석 씨(33)를 함께 찾자는 취재팀의 제안을 받은 지 13일 만이었다.(본보 8일자 A1·2면 ‘증발에 운다’ 기사 참조)

앞서 취재팀은 실종선고문 6000여 건 중에서 홍 씨를 찾아냈다. 실종선고 서류를 접수한 법률사무소를 찾아내 취재팀의 연락처를 남겨둔 끝에 윤 씨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 윤 씨는 “내 직장 동료들이 알게 될까 걱정된다”며 망설였다. 하지만 아들을 찾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윤 씨는 8년 전 아들이 남기고 간 휴대전화 잠금 패턴을 여태 풀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의 소식을 물을 곳이 없었다. 마침내 윤 씨는 “기자들이 아들을 찾기 위해 애써 달라”며 취재에 응했다.

취재팀은 석 달간 홍 씨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졸업 앨범을 단서로 친구들을 접촉했다. 휴대전화를 데이터 복구업체에 맡겼다. 증발 직전 5년 치 소득금액증명원을 열람해 그가 다녔던 직장들도 찾아갔다. 그러나 완벽한 증발만 확인했다.

윤 씨는 “아들의 생사라도 알고 싶다”며 유전자(DNA) 검사도 받았다. 수사당국이 보유한 사망자 DNA와 비교해 사망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다. 경찰이 “일치하는 DNA가 없다”고 알려온 순간, 못 찾았다는 절망과 어딘가에서 살아 있을 거라는 희망이 교차했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만 남았다. 홍 씨의 대학 지도교수와 동기들에 따르면 그의 꿈은 소믈리에. 자퇴 후 와인을 배우기 위해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좋은 커피나 와인이 있으면 꼭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홍 씨의 고교 친구 황동한 씨(34)는 “민석이는 내 진로에 큰 영향을 준 친구”라며 “같이 술집과 카페를 돌아다니며 키운 안목 덕분에 나는 커피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홍 씨가 사라진 이후 한동안 같이 하던 게임 접속 기록을 살피곤 했다. 고교 졸업 앨범으로 찾은 동창 남재환 씨(34)는 가끔 홍 씨의 예전 휴대전화 번호를 몇 번씩 눌러본다고 했다. “이러다 언젠가 민석이가 전화를 받으면 참 좋겠네요. 그날을 기다립니다.”


나락으로 내몰려… 스스로를 삭제한 사람들

우발적 가출-범죄 연루와 달라… 상처 등 쌓이며 자발적 단절 선택


실직, 파산, 사별, 이혼, 질병…. 인생이란 언제 어떤 시련이 닥쳐올지 모른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 그 누구에게도 손길을 뻗지 못할 수도 있다.

남들은 실패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나의 존엄성을 해치고 싶지는 않다. 벼랑 끝으로 밀려 추락하기 직전이지만 거리로 나가 구걸하며 살아가고 싶진 않다. 그럴 때 누군가는 생각한다. 사라져버리고 싶다고.

여기, 정말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리는 이들이 있다. 홧김에 집을 나가는 가출이 아니다. 범죄나 사고에 연루돼 숨거나 숨겨진 것도 아니다. 증발은 자발적인 의지로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 이웃, 동료 등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모두 단절하는 것이다. 자신이 존재하던 세상에서 자신을 완전히 삭제하는 일이다.

오늘도 우리 주변 어딘가에선 ‘증발’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해서, 이혼으로 인한 상실감을 채우지 못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받아온 상처가 쌓이고 쌓여서 사라져버리는 이들이 있다. 남겨진 이들의 마음에 생긴 멍은 시간이 갈수록 크고 진해진다. 이들 주위에는 증발하려는 자를 돕는 이가 있는가 하면 증발한 자의 뒤를 쫓는 이들도 있다.

누군가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95%에 달하는 2020년 대한민국에서 완벽히 증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에 동아일보가 3개월간 추적한 증발자와 그 가족들은 묻는다.

“당신, 정말 벼랑 끝까지 밀려나 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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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히어로콘텐츠팀을 출범시켰습니다. 동아미디어그룹 저널리즘의 가치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구성원들이 협업하는 조직입니다. 히어로콘텐츠는 깊이 있는 취재와 참신한 그래픽, 동영상, 디지털 등을 결합해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복합 콘텐츠를 뜻합니다. 히어로콘텐츠팀은 동아일보가 한 세기 동안 축적한 역량을 발휘해 탐사보도나 내러티브 스토리부터 기존에 없던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파급력이 큰 콘텐츠를 구현해 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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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히어로콘텐츠 / 증발 <1> 세상을 등지고 증발을 택하다
https://original.donga.com/2020/lost1

동아히어로콘텐츠 / 증발 <2> 증발자들의 공간, 미래고시텔
https://original.donga.com/2020/lost2

동아히어로콘텐츠 / 증발 <3> ‘증발’ 돕는 자와 찾는 자
https://original.donga.com/2020/lost3

동아히어로콘텐츠 / 증발 <4> 상처 안고 살아가는 ‘남겨진 자들’

https://original.donga.com/2020/los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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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콘텐츠팀

▽팀장: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기사 취재: 김기윤 이호재 사지원 기자
▽사진·동영상 취재: 송은석 양회성 이원주 기자
▽편집: 홍정수 기자
▽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프로젝트 기획: 김성규 이샘물 기자
▽디지털 제작: 배정한 윤수미 이현정 김수영 윤태영 김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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