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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취약계층 보호할 ‘진짜 통계’가 필요하다[동아광장/김석호]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2020-09-14 03:00업데이트 2020-09-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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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 살릴 통계 구축 요원, ‘적재적소’ 지원계획 신뢰 못얻어
확진자수에 가려진 저소득층 어려움… 장기관점 일상적 방역체계 고민해야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코로나19와 함께 살아온 시간도 벌써 한 해의 4분의 3이다. 짧지 않은 시간, 그간 우리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여왔다. 어느 날 갑자기 선물처럼 코로나19가 끝나지는 않을 것이며 끝나더라도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감염병의 시대에 반복해 묻힌 중요한 문제 몇 가지를 다시 꺼낸다.

방심이 화를 불렀다. 하루 확진자 수가 8월 중순에 증가하기 시작해 28일 441명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9월 들어서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수도권 방역 수위가 2.5단계에 묶여 시민의 삶이 제어되는 동안 카페, 음식점, PC방, 학원 등 일상과 밀접한 자영업자들의 비명은 날카로워져 간다. 정부는 총 7조8000억 원의 추경을 편성해 2차 재난지원금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지급하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보편이냐 선별이냐의 논쟁을 떠나 7조8000억 원의 지출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자영업자의 월세를 메우라는 것인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수혈인지, 취약집단에 생명선을 주는 것인지, 휴대전화로 집에서 답답함을 달래라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나는 여기서 한국 사회 통계 인프라의 결핍을 본다. 정말 어려운 집단을 선별해 필요한 지원을 해주겠다는 장담까진 좋았으나,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서로 다르다. 어디에 살면서 무엇을 하는 누가 어떤 도움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파악할 통계가 없다. 정부의 선별 지원에 대한 장담은 허언일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 국세청, 한국은행 등 공공기관과 카드사와 같은 민간기업에서 통계가 축적되지만, 이들을 연결해 동의할 만한 재난지원금 집행을 가능케 하는 통계 거버넌스의 구축은 요원하다.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지난 1차 재난지원금 집행에서도 선별하는 기간과 비용이 엄두가 나지 않아 보편 지원으로 기울었었다. 그 이후 우리의 통계 거버넌스 수준이 변한 것은 별로 없다. 갑자기 선별 지원에 필요한 통계 요술 방망이가 정부의 손에 쥐어지지도 않았다. 많은 이가 의아해하는 7조8000억 원 지출 계획은 당장 이용 가능한 통계를 짜깁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확진자 통계는 숨기는 것이 더 많다. 확진자 수를 강조해 보건의료적 방역에만 초점을 둘 때 사회적 방역에서 더 큰 구멍이 나고 결국 보건의료적 방역도 실패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흘러나온 독수는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의 생명을 노린다. 현재 수도권이 지난 대구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고 한다. 지난번 대구에서는 어떠했는가? 장애인과 그 가족은 생업을 포기하고 감염되면 끝이라는 마음으로 옥쇄를 택했다.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는 청년들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어 갑자기 곤궁해졌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마스크를 약국에서도 살 수 없었다. 급식소에서 끼니를 이어가던 노숙인과 빈곤 노인은 예고 없이 무료급식이 중단되면서 끼니 걱정을 해야 했다. 쪽방촌 사람들은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쌀이라도 얻을지 몰라 허둥댔다. 그 당시 대구보다 심각하다는 현재 서울과 경기도의 장애인, 청년, 외국인 노동자, 노숙인, 빈곤 노인, 쪽방촌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어쩐 일인지 언론도 그들에 대해선 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중앙정부의 무능 탓만은 아니다. 중앙은 지방을 잘 모르기에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 시민사회의 역할도 절실하다. 사회적 방역에서 난 구멍을 효과적으로 메우기 위해서는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지방정부와 생활세계에 촉수를 뻗고 있는 시민사회가 상호 보완적 체계를 미리 구축해야 한다. 감염병 확산이 나타나고 시작하면 이미 늦다. ‘K방역’의 화려함에 취해 우린 이미 늦은 건 아닌지, 늦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따져볼 시점이다.

정치철학자이자 여성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는 우리를 갈라놓지만 취약함은 우리를 뭉치게 한다고 말한다. 이제라도 코로나19 시대를 관리하기 위한 제대로 된 통계를 구축하고 지역사회에 있는 취약함을 드러내 그 아픔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감염병의 시대를 ‘따로 함께(alone together)’ 살아갈 수 있다. 우리 지역에 일일 확진자 수가 조금 적다고 청정지역이라 과시하며 속으로 곪아 가는 실수를 다시 범해선 안 된다. 모든 지역 모든 사람이 확진자가 될 수 있다. 두려움을 공유하고 타인의 아픔을 배려할 수 있는 일상적 방역체계를 장기적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는 당장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 책임을 호도하기 위해 특정 집단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혐오해서는 코로나 종식은 더 멀어질 뿐이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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