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쓰는 법]“진짜 민중의 삶, 역사책엔 없죠”

민동용 기자 입력 2020-08-01 03:00수정 2020-08-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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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박건호 씨
27년째 역사 가르치며 자료 수집… 기록 뒤에 숨겨진 시대의 삶 조명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길이 1m 남짓한 한지에 써 내려간 가사체(歌辭體) 글귀. ‘이 하늘에 비가 올까/저 하늘에 비가 올까∼’로 시작하는 이 글의 제목은 ‘애타는 한여름의 가뭄’. 맨 끝에 ‘병자년(丙子年)’이라고 적혀 있다. 조선왕조실록 등을 검색해 보니 병자년인 1876년, 엄청난 한발로 왕이 숱하게 기우제를 올렸다. 그런데 역사책은 이해를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이 맺어진 해로 기술한다. 하지만 당대 조선 사람의 진정한 관심은 가뭄이었을 게다.

“그걸 알고는 ‘내가 배운 역사는 반쪽짜리였다’고 생각했어요. 공식 역사가 말하지 않은 것을 자료를 통해 보충해주고 싶었습니다.”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휴머니스트)의 저자 박건호 씨(51·사진)가 수집에 새롭고 큰 의미를 부여한 순간이었다.


대학에서 국사를 전공하고 고교와 재수학원에서 27년째 역사를 가르치는 박 씨는 당초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보여줄 만한 조선시대와 근현대 자료를 수집했다. 주로 그 시대를 살던 필부필부의 자료였다. 그런데 자료에서 스토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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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사진을 무심코 수집했는데 모으다 보니 주례 뒤편 태극기가 걸려 있는 게 스무 장쯤 돼요. 국가주의가 심했던 1970년대 찍은 거라고 봤는데 사진들 뒤를 보니 1950년대예요. 뿌리를 찾으니까 일제강점기, 집이 아닌 식장에서의 ‘사회결혼’이 유행할 때 일장기를 걸었던 것이 광복 후 태극기로 바뀐 거였어요. 수집하다 이야기가 보이게 된 거죠.”

책은 1920년대 경성자동차학교에 다니던 청년 김남두가 고향 집에 보낸 편지, 1907년 정미의병 때 충북 제천에서 실종된 통역관 조용익을 찾는 훈령, 1941년 육군특별지원병으로 전장에 나가기 직전 찍은 조선인 청년 9명의 사진, 1952년 7월 강원도 육상대회에서 우승한 삼척공고 기념사진 등 당대 서민 민중 민초가 남긴 미시사다. 역사책은 알려주지 않던 그 시대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책의 11장 ‘전쟁도 지우지 못하는 민중의 삶’은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6·25전쟁 때 군인들이 꽃을 들고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전쟁 통에 꽃은 무슨…’ 하겠지만 그 와중에도 꽃이 있고 웃음이 있습니다. 삶이 있습니다. 삶이란 ‘독립운동’이냐 ‘친일’이냐같이 획일화, 규격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다기합니다. 150mm 박격포 탄피로 재떨이를 만들어 쓰고, 미국 원조품 포대로 바지를 지어 입었습니다. 민중은 역사에서 둥둥 떠다닌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삶과 대면했습니다.”

종이로 된 자료 중심으로 약 1만 건을 수집했다는 박 씨는 60세가 될 때까지 4권의 책을 더 낼 생각이다. 그것이 운명적으로 자신에게 온 자료들에 예를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자께서 하나만은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사소한 자료는 있어도 사소한 사람, 사소한 역사는 없습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박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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