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세금의 목적’을 잊고 있다[동아 시론/안창남]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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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은 재정사업 중장기 관점서 지원
성실 납세자 고려 않는 징벌적 과세
집값 잡기 명분 근시안 정책만 남발
거래세 내려 다주택 매물 유도해야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는 국민이 출제한 ‘집값 안정화 정책을 세우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22번째 쓰고 있다. 최종 답안 제출 시한도 명시하지 않는다. 답안이 부실하면 계속 수정하겠다는 말도 부끄럼 없이 덧붙인다. 어떻게 채점하라는 것인지 난감하다.

사실 부동산 관련 사안은 과거 정부도 모법 답안을 제출한 적이 없을 정도로 난해한 문제다. 물가상승률과 금리 등을 감안한 최소한의 가격 상승을 용인하되 실수요자에 대한 공급을 확실하게 하는 게 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이동의 영향으로 특정지역의 부동산 수요와 공급을 제때 맞추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과거 어떤 정부도 현 정부처럼 ‘조자룡 헌 칼 쓰듯’ 빈번하게 세금 정책을 남발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답안지는 핵심을 놓치고 있다. 즉, 세금은 세금일 뿐이라는 점, 세금 본연의 목적은 정부 지출을 충당하는 재원 마련에 있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정부 지출은 1년 단위로 편성한다. 세금은 이를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원한다. 따라서 세금은 기본적으로 1년 이상의 긴 안목을 토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도 부동산 대책 마련에 급급해 깊은 고민 없이 자주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결과, 개정할 법률을 이미 주택을 구입한 사람에게도 적용하며 소급 과세 시비까지 불러일으켰다. 세금을 과도하게 부동산 대책에 활용하다 보니 ‘조세 부담의 예측가능성’이 훼손되고 있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기본 원칙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현 정부는 1가구 1주택자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들 1주택자들이 정부더러 집값을 올려 달라고 한 적이 없다. 정부가 정책을 잘못해 집값이 올랐을 뿐이다. 그럼에도 집값이 뛰었으니 세금을 더 내라고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현행 세법은 비과세가 허용되지 않는 고가주택 기준금액을 9억 원으로 정하고 있다(소득세법 시행령 제160조). 이는 12년 전인 2008년 정한 기준이다. 그때의 9억 원과 지금의 9억 원이 같은 값어치인가? 성실한 납세자를 생각했다면 최소한 토지가격 인상률이나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기준을 조정했어야 했다. 더구나 최근 3년 새 서울 지역 중위 아파트 가격이 50% 넘게 오르며 9억 원을 넘어섰다. 이러니 증세 목적의 세금 대책이 아니라는 정부의 강변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시민들이 지난 주말 “우리가 내야 하는 것은 세금이 아니라 벌금”이라며 서울 도심에서 항의 집회에 나서고 있다. 조세저항이 우려될 지경이다.

‘1가구 1주택’은 국민의 기본권인 거주 이전의 자유와 관련된다. 서울 강남에 거주하다가 시골로 이사하려 해도 양도소득세 부담 때문에 망설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 투기 목적이 아닌, 거주 목적으로 서울 강남권 아파트를 구입해 살아왔는데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거액의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받아들고 부담스러워하는 정년퇴직자들도 상당수다.

이들이 세금을 내기 위해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할 정도라면 이는 세금이 과세물건인 재산의 원본(元本)을 침해하는 ‘사실상 재산 수용(收用)’에 해당하는 것으로 위헌 소지마저 있다. 1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는 오히려 현 수준보다 낮춰야 한다. 세제의 역사를 보면 부동산 경기가 침체됐을 때 정부가 나서 세금 지원을 했던 때도 있었다. 현 정부도 임대주택사업에 세금을 지원하며 권장했다가 올 7·10대책에선 이를 거둬들였다.

집값 급등 문제를 합리적으로 푸는 방법은 단순하다. 다주택자에 대한 거래세 부담을 낮춰 이들이 갖고 있는 집들을 시장에 내놓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다주택자가 투기했다면 애초 투기장 진입을 방조하거나 통제하지 못한 책임이 정부에도 있다. ‘퇴로’를 열어 시장을 정상화하는 것이 정부의 실책을 만회하는 길이기도 하다. 다주택자가 보유 주택을 내놓지 않고 버티면 ‘매물 잠김’ 현상이 일어나고, 늘어나는 세금을 전월세 값에 전가하는 행위가 나타난다. 그 피해는 실수요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정부의 부동산대책은 아직 확정 단계 전이다. 대부분 세법 개정으로 뒷받침해야 하는데, 그 권한을 정부가 아닌 국회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합리적이고 현실에 합당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세법은 성실한 납세자들에게 두렵지 않은 존재여야 한다. 채점자인 국민들은 이 시간에도 주택 문제 답안지를 들여다본다. 그 채점 결과는 다음 선거 때 공개될 것이다.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부동산대책#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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