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실어증 소년의 언어장애 극복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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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있잖아/정용준 지음/172쪽·1만3000원·민음사

‘마야코프스키’ ‘무연’ ‘모티프’ ‘아르페지오’.

명찰에 쓰인 온갖 특이한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는 이곳은 스프링 언어교정원이란 곳이다.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용기를 내서 말하라”고 할 때, 그 용기 자체가 없는 사람들. 내면의 문제로 평범한 일상조차 어려워진 이들이다.

2009년 등단 후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을 수상하며 활발하게 활동해 온 저자가 새로 펴낸 신작 장편소설은 말문이 막힌 듯 폐쇄적이었던 열네 살 소년의 세계가 글쓰기란 세상에서 새롭게 빚어지는 과정을 유머러스하면서도 가슴 찡하게 그려낸다.

열네 살이 된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서 이 교정원에 오게 된 사람 중 하나다. 무명 소설가, 곧 쓰러질 것 같은 할머니, 더벅머리 아저씨 등 한눈에 봐도 좀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고장 난 사람들만 모아둔 창고 같은 곳”이라고 느낀다.

말더듬이인 ‘나’의 일상은 항상 괴롭다. 학교에서는 친구도 없고 괴롭힘만 당한다. 국어교사는 괴롭히기로 작정한 것처럼 늘 책 읽기를 시킨다. 하지만 ‘나’는 비슷한 아픔을 지닌 교정원 사람들과 원장의 따뜻한 도움과 연대 속에서 더듬더듬 겨우 터져 나온 말이 글이 되고 이야기와 소설로 승화되는 놀라운 성장을 체험하게 된다.

외환위기 직후 세기말 어수선한 시대를 배경으로 실어증에 걸린 소년과 그를 둘러싼 사회의 어두움을 그려내면서도 유머와 관조를 잃지 않아 재밌게 읽힌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내가 말하고 있잖아#정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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