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지배층이 괴물을 만든다[임용한의 전쟁史]〈116〉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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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10세에 프랑스의 브리엔 육군군사학교에 입학했다. 브리엔 입학은 기적이었다. 전통 귀족이 몰락하던 시기라 프랑스는 가난한 귀족 자제를 위한 무상교육을 확대했다. 브리엔 학교도 그런 학교 중 하나였다. 가난한 귀족이 늘어서 경쟁률이 엄청났다. 코르시카인인 나폴레옹에겐 입학이 불가능한 학교였는데, 코르시카 총독의 추천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귀족 사회의 권력형 비리가 나폴레옹을 군인으로 만들어준 셈이다.

사관학교에서 수학은 잘했지만 천재성은 누구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장교 임관 후의 복무 성적도 판정 불능이다. 그는 온갖 핑계를 대고 부대를 이탈해 바로 코르시카로 건너갔다. 여기서의 활약상도 천재와는 무관했다. 조급하게 야망을 키우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간신히 코르시카를 탈출한 뒤 나폴레옹은 딴사람이 된다. 드러난 증거로만 추측한다면 부대 이탈과 코르시카에서의 경험이 나폴레옹을 환골탈태시켰던 것은 분명하다. 이 각성의 과정을 허락한 것은 프랑스의 형편없이 느슨한 장교 관리 시스템이었다. 1년 이상 이유 없이 유급휴가를 주는 군대는 프랑스 군대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근무지를 떠나 마음껏 돌아다녔고, 혁명과 좌절, 변신을 경험했다.

나폴레옹의 전술은 자신이 창안한 것이 아니다. 나폴레옹이 전매특허인 포병의 중요성을 깨닫고 유럽 최강의 포병대와 장교를 양성한 것도 프랑스의 공이다. 그러나 혁명이 터지기까지 귀족 장군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중요한 자산을 관리하지도 양육하지도 않았다. 결국 그들의 유산은 고스란히 코르시카의 젊은이에게 넘어갔다.

몰락하는 신분의 특징은 자산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 이유도 간단하다. 남 주기 싫어서,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기 싫어서, 무능한 집단일수록 울타리를 크게 치고, 아무도 듣지 않는 자기들만의 논리로 소일한다. 바로 그런 무능과 부패가 자신들의 파괴자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임용한 역사학자
#나폴레옹#포병대#장교 관리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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