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사피엔스, 디지털 격변의 변곡점에 서다[동아 시론/김경준]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입력 2020-05-09 03:00수정 2020-05-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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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시대부터 진화해온 ‘언택트’
코로나19 촉매제로 산업 전반 급속 재편
열린 생태계… 조직-업무-규제혁신해야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충격을 받으면 정신이 번쩍 들고 행동이 바뀐다. 건강검진이 대표적이다. 40대 후반부터는 당뇨, 고혈압 등 성인병 징후가 많이 나타난다. 검진 결과에 긴장하지만 대부분 작심삼일이다. 그러나 갑자기 졸도하여 실려 간 응급실에서 ‘다음에는 생사를 모른다’는 진단에 충격을 받으면 생활습관이 바뀐다. 수면 아래 진행되던 성인병을 각성하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돌발 상황처럼 역사적으로 전쟁이나 전염병은 사회경제적 변화를 급진전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코로나19는 아날로그 세계에 조용히 스며들다가 최근 불타오르던 디지털 격변에 기름을 부었다. 종말론적 우려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는 일시적 충격이고 본질은 디지털 격변의 가속화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항해하는 좌표 설정에는 이전부터 진행되던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미래학자 페이스 팝콘은 1991년 출간한 ‘팝콘 리포트’에서 10가지 미래 트렌드를 예측해 명성을 얻었다. 가장 우선시한 ‘코쿠닝(Cocooning)’은 본래 누에고치라는 의미로 현대인들이 총기, 마약, 교통사고 등 위험한 외부와 차단된 안전한 집에서 시간을 보내려는 현상이다. 이는 관련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대형 TV, 홈시어터, 인테리어, 실내운동기구 등 하드웨어에서 음식 배달, 영상물 대여, 방범 서비스 등 소프트웨어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가 급성장했다. 아날로그 시대 막바지에 시작된 코쿠닝은 디지털 기술과 접목되어 온라인과 비대면, 언택트로 진화했다.


넷플릭스는 이러한 과정을 대변하는 기업이다. 199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DVD우편대여 사업으로 출발했다. 저장매체인 DVD가 비디오테이프와 비교하여 저렴하고 가볍다는 장점을 살려 우체국을 배송망으로 활용했다. 초기에는 실물 DVD를 배송-수령하는 사업 모델의 한계로 틈새시장에 머물렀다. 그러나 2007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한 동영상 스트리밍 사업으로 전 세계 콘텐츠 시장을 주도하는 위치로 올라섰고 2020년 코로나19로 날개를 달았다. 올 4월 중순 신생 기업 넷플릭스는 100년 역사의 디즈니를 제치고 미디어 산업 시가총액 1위로 올라섰고 그 격차는 계속 커지고 있다. 코쿠닝 트렌드의 연장선상에서 영상물의 아날로그 유통 방식으로 사업 기반을 다지고 디지털 인프라를 활용한 스트리밍으로 도약한 후 코로나19를 촉매제로 글로벌 최강자의 자리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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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피자도 일맥상통하는 경우이다. 1960년 창업 이후 코쿠닝 트렌드를 타고 30분 배달 서비스를 주무기로 급성장하였다. 이후 포화된 시장에서 고전하면서 2008년에는 주가가 3달러까지 추락하였다. 그러나 주문을 포함한 고객경험 전반에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접목하여 면모를 일신하였다. 코로나19 이후 주가는 오히려 최고치를 경신하며 현재 40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도미노의 시사점은 장기적 트렌드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와중에 코로나19라는 충격으로 시장이 급속도로 재편된다는 것이다. 이는 소매유통의 범주만이 아니라 경제산업 전반에서 공통적이다. 특히 방역을 위한 이동제한으로 강요된 재택근무, 원격교육, 원격의료의 실시가 역설적으로 디지털 전환의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기술 발전과는 별개로 각 분야의 비대면-언택트 확산에 장애물이었던 사회문화적 거부감이 실제 경험을 통해 희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분기점으로 디지털 혁신은 개인과 조직에 선택이 아닌 사활을 다투는 차원으로 급전환됐다. 이제는 방향이 아니라 속도가 관건이다. 평상시 10년의 변화가 전환기에는 순식간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디지털의 관점에서 사업 모델, 조직 문화, 업무 방식 등 전방위적 혁신의 속도전을 전개해야 미래의 생존과 번영을 담보하게 되었다.

사회경제적 정책 차원에서는 아날로그 시대의 폐쇄적 규제를 벗어나 디지털 시대 개방적 생태계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 기존 질서를 고착시키고 새로운 가능성을 차단하는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2012년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형마트 규제가 전형적인 사례이다. 디지털 변화로 자연히 입지가 축소되는 운명이었던 대형마트의 쇠락을 앞당기면서 재래시장도 활성화시키지 못했다.

물은 100도를 기점으로 액체에서 기체로 변화한다. 수소와 산소가 결합한 구조는 불변이지만 존재 양상은 달라진다. 코로나19는 아날로그 질서를 디지털 세계로 전환시키는 변곡점이다. 호모사피엔스는 그대로이지만 살아가는 방식과 질서는 급변하고 있다. 개인과 공동체 모두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언택트#디지털 격변 시대#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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