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종이 오려 달 만들고… 아이 그림 같은데 낭만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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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열 ‘무구한 눈’展

오세열 화백은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 ‘무제’란 것도 결국 제목이 되기 때문에 아무 말도 붙이지 않는다. 바람난 여자를 그렸다는 그림(왼쪽)과 꽃을 든 남자로 보이는 그림.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오세열 화백은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 ‘무제’란 것도 결국 제목이 되기 때문에 아무 말도 붙이지 않는다. 바람난 여자를 그렸다는 그림(왼쪽)과 꽃을 든 남자로 보이는 그림.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 여자, 바람나 신난 여자예요.”

한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가로누워 있는 그림이었다. 노랑 바탕색의 그림 앞에는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미니 샘플 크림, 베이비로션, 단추, 립스틱 등이 놓여 있다. 그림 속 여성은 몸에 꼭 맞는 체크무늬 바지를 입고, 머리엔 꽃핀을 꽂았다. 분홍 립스틱 바른 행복한 표정을 보니 정말로 바람난 것처럼 보였다. 절로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오세열: 무구한 눈(The Innocent Eye)’ 전시에서 16일 만난 오세열 화백(72)은 “일단 그림들부터 보라”고 했다.

아, 빠져든다. 까만색 얼굴의 아이 옆에는 말풍선이 그려져 있고, 빼뚤빼뚤한 글씨로 ‘애들아, 놀이하자’라고 쓰여 있다. 땅따먹기 놀이일까. 화폭 곳곳에는 숫자들이 연필로 쓰여 있다. “전체적 그림 구도를 고려하면서 숫자를 써 넣어요. 어릴 때 글은 몰라도 숫자 갖고 많이 놀잖아요.”

어린이 그림 같은데 낭만적이다. 콜라주(오려 붙이기) 기법을 즐겨 사용하는 작가는 색종이를 오려 하늘색 달을 만들어 붙이고, 풍성한 단추 꽃다발을 이룬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서일까. 요즘 오 화백의 작품이 국내외 아트페어와 미술경매시장에서 인기다. 학고재는 올해 2월에 이어 아홉 달 만에 그의 개인전을 다시 열었다. 학고재가 한 해에 같은 작가의 개인전을 두 번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학고재는 그의 인물그림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서라벌예대 회화과를 나와 1984년 프랑스 파리 아트페어인 피아크(Fiac)에서 박서보 이우환 등과 함께 작품을 선보였던 그의 미술인생 40년을 관통하는 주제가 인물이다. 1970년대 빛바랜 색감의 반(半)추상, 1980년대 백묵 낙서, 1990년대 색채와 숫자 도입, 2000년대 높은 채도 등 화풍 변화가 보인다.

공통된 것은 입체파 화가들의 시선처럼 신체 부위마다 전망이 따로따로라는 점이다. 얼굴은 왼쪽, 팔은 정면, 다리는 오른쪽으로 향해 있는 식이다. 또 인물의 다리 또는 눈을 하나만 그릴 때가 많았다. “한쪽만 있어도 다른 한쪽을 상상해 볼 수 있잖아요.”

이번에 전시된 32점 중 12점이 작가가 올해 그린 그림이다. 한눈에 봐도 달라졌다. 그림 속 인물의 눈과 팔이 두 개가 됐고, 색감도 더 따뜻해졌다. 작가가 여유로워졌나 보다.

12월 17일까지. 02-720-1524∼6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오세열#무구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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