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Opinion] 밥 딜런, 소낙비, 그리고 전두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7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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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 저항정신의 상징 밥 딜런.
1960년대 미국 저항정신의 상징 밥 딜런.
‘밥 딜런’이 올해 노벨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은 나를 30년 전으로 잠시 소환했다. 1986년 대학 1학년 이맘때쯤인 것 같다. 그 시절 대학 캠퍼스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학생들은 화염병과 짱돌을 앞세워 캠퍼스 밖으로 진출을 시도하고, 경찰은 시위 주동자를 체포하려 캠퍼스로 난입했다.

‘전두환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뜻을 같이한 몇몇 선배와 친구들은 조그마한 카페를 아지트 삼아 매일 밤 모였다. 마치 일제강점기에 비밀 독립결사대나 된 것처럼. 모이면 자연스레 막걸리 한 사발에 암울한 시국을 한탄하며 이념서적을 돌려봤다. 자연스레 카페 주인장도 한 패거리가 됐다.

한때 통기타 가수였다는 카페 주인은 음악에 박식했다. 특히 해외 팝송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었다. 당시 국내 판매가 금지됐던 불법 LP 복사판(일명 ‘빽판’)이 수천 장에 이를 정도로 수집광이었다. 막걸리 몇 순배가 돌아가면 자연스레 카페 주인의 음악 이야기로 이어졌다.

가을비가 내리는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카페 주인은 양병집이라는 가수의 ‘소낙비’라는 노래를 틀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이나 김광석이 부른 민중가요가 대세였던 그 시절, 처음 듣는 노래였다. 양병집이라는 가수가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가사를 듣는 순간, 뭔지 모를 전율 같은 게 흘렀다.

‘무엇을 보았니 내 아들아, 무엇을 보았니 내 딸들아/ 나는 늑대의 귀여운 새끼들을 보았소/ 하얀 사다리가 물에 뜬 걸 보았소/ 보석으로 뒤덮인 행길을 보았소/ 빈 물레를 잦고 있는 요술쟁일 보았소/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노래를 듣는 내내 광주가 떠올랐다. 총칼로 무수한 시민을 난도질한 군인들,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참히 짓밟힌 시체들, 그리고 무력으로 찬탈한 권력을 뻔뻔하게 향유하며 독재를 이어가는 전두환과 그 하수인들의 모습이 노래 가사에 따라 오버랩됐다.

이 노래의 원곡이 바로 밥 딜런이 1962년에 만든 ‘A Hard Rain’s Gonna Fall‘(세찬 비가 쏟아지네)이다. 쿠바의 미사일 위협으로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미국의 상황을 노래한 것인데, 마치 광주의 참혹한 모습을 담은 것처럼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그 노래를 들은 이후 난 밥 딜런의 열렬한 팬이 됐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다니 감회가 새롭다. 세계 평화와 반전, 그리고 인종차별과 독재, 억압에 대한 저항정신을 담은 그의 음악세계를 보면, 어쩌면 ‘노벨평화상’을 줬어도 될 만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음악을 통해 세상은 많이 변했다. 전쟁은 줄고 독재정권과 인종차별도 많이 사라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여전히 “광주사태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며 단돈 29만 원으로 남부럽지 않은 '아주 특별한‘ 세상을 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 1000억 원대의 추징금 미납도 모자라 최근 5억 원의 지방세까지 체납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과연 그가 밥 딜런을 알기나 할까?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만약 좋아했다면 지금처럼 살지는 않을 테니까.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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