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Opinion]“우성이 형이 욕하면 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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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0월 17일 14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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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혁의 B급 살롱

정우성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아수라’.
정우성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아수라’.


사람마다 청춘의 유효기간은 다르다. 어떤 사람의 청춘은 전역과 함께 바라고, 누군가의 청춘은 불혹을 지나도 빛을 뿜는다. 정우성은 후자다. 우리나이로 마흔 넷의 이 사나이에게서는 아직도 ‘비트’의 민이 얼핏 보인다. 민은 욕 대신 담배를 물었고, 지포 라이터를 주먹에 쥐고 휘두르는 성격이었다. 과묵한 청년의 인상은 꽤 오래 갔다. 그리고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정우성의 또 다른 초상이다. 순애보 가득한 멜로 주인공. 털털하면서도 웃긴 구석이 있는 로맨티스트 철수는 우리가 예능에서 본 정우성의 모습과 싱크로율이 잘 맞는다.

하지만 정우성은 같은 이미지만 반복하며 CF로 연명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것 같진 않았다. 다양한 캐릭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멜로와 액션을 오가면서 다른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는 액션과 멜로가 차례로 이어진다. ‘좋은 놈’을 연기한 다음해에는 ‘호우시절’에 출연했고, 그 다음에는 ‘아테나: 전쟁의 여신’과 ‘검우강호’로 액션을 선보였다.

다시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로 멜로를 연기한 후 ‘신의 한 수’ ‘마담 빵덕’에 출연했다. 그리고 올해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 기억을 잃은 남자로 출연해 김하늘과 로맨스를 선보이고, 논란의 느와르 ‘아수라’에 한도경을 연기했다. 한도경을 제외한 정우성의 캐릭터들은 욕을 잘 안 한다. 아니 욕설이 필요 없는 캐릭터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욕하는 정우성이 낯설다.

최근 정우성은 친근하고 웃긴 형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가 남긴 명대사, 아니 유행어 “짜릿해! 늘 새로워! 잘 생긴 게 최고야!”는 많은 정우성 팬을 양산했다. 그런데 이 형이 갑자기 욕을 했다. 그것도 순수 표준어로 구사했다. 영화 속 욕은 진한 사투리와 결합해야 덜 어색한 법이다. 사투리의 억양이 욕의 조미료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 억양의 높낮이가 현저히 적은 조곤조곤한 정우성의 어조는 찰진 욕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어릴 때부터 난 꿈이 없었다”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비트’의 민이 자연스러운 건 그런 발성 때문이다. 많은 관객이 정우성의 욕에 어색함을 표했다. ‘아수라’의 화려한 개봉 후 정우성 욕설 연기를 지적하는 글이 눈에 띄게 많았다. 사람들의 반응은 정우성은 한도경과 같은 역할을 소화하기에는 부족하다거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욕이 어설펐다는 등의 비난이었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나는 정우성만의 억양 없는 욕이 한도경의 상황을 잘 표현했다고 본다. 한도경에게 욕이란 그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연기이며, 위장이다. 작대기(김원해)와의 심문 장면에서 한도경은 자신의 죄가 밝혀질 것 같은 위기에 쳐하자 욕설을 하며 작대기를 구타한다. 그 장면에서 한도경의 욕은 어색하다.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의 범죄를 숨기고, 정당함을 감정으로 호소하기 위해 욕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 어색함이 납득된다. 만일 그때 정우성이 욕을 구수하게 구사했다면 한도경의 불안감을 증폭하지 못 했으리라는 추측도 해본다.

욕설이 어색하게 느껴졌던 장면은 더 있다. 특히 후배 문선모(주지훈)의 외제차에서 욕을 할 때다. 여기서 잠깐 스포! 한도경은 문선모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다는 위기감을 가졌고, 이중 스파이 노릇이 발각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자신이 더는 문선모의 형이 아닌 그의 수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한도경은 후배에게 ‘쫄아’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한도경은 센 척을 하며 “양복 입고 외제차 타고 다니니까 인생이 존나 아름답니?”라고 욕한다. 그러자 후배 문선모는 그런 한도경을 ‘빙신’ 취급 한다. 이 부분에서도 정우성의 어색한 욕은 한도경의 불안한 심리에 깊이를 더한다.

영화 ‘그랜 토리노’나 ‘사선에서’에서 노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큰 액션 없이도 강해 보였다. 그건 그가 영화 ‘더티 해리’의 칼라한 형사와 서부 영화의 건맨이라는 과거의 강렬한 존재감으로 현재의 캐릭터를 물들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그랜 토리노’의 월트 코왈스키와 ‘사선에서’의 프랭크 호리건에서 ‘더티 해리’의 칼라한 형사를 떠올린다. 이스트우드의 이러한 연기는 다른 배우가 대체할 수가 없다. 그건 44매그넘을 들고 구겨진 표정으로 한 시대를 주름잡은 사람이 그밖에 없기 때문이다.

너무 거창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한도경에게서도 ‘비트’의 민과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철수, 그리고 ‘잘 생긴 게 최고야’라고 외치는 정우성을 발견한다. 20여 년 동안 톱스타로서 사람들 뇌리에 새겨진 과묵하고 선량하며 친절한 꽃미남의 이미지가 한도경 캐릭터의 근간을 이룬다. 정우성은 그가 어떤 역할을 맡든 이 이미지를 떨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정우성은 그런 존재로 대중에게 각인되었으니까.

‘아수라’에서 한도경의 과거는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착한 남편 철수와 싸움 잘하는 미남 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게 우리가 아는 정우성이니까.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나빠지기 전까지 한도경은 욕을 입에 달고 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할 것이다. 그런 한도경이 갑자기 욕을 하면 관객은 당연히 어색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도경은 욕설을 통해 자신의 불안함을 감추려 하지만 어색한 탓에 번번이 실패한다.

다행인 점은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한도경은 상황을 극복할 의지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 포기해가는 지점부터 정우성의 연기는 자연스러워진다. 때마침 욕도 줄어든다. 대신 다른 감정연기와 액션연기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지만 어색함은 없다. 이러한 캐릭터 분석을 통해 ‘아수라’에서 한도경이 내뱉은 거의 모든 욕을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 ‘좆이나 뱅뱅’은…, 대체 왜? 십여 년 전 동네 ‘아재’들이나 하다가 사라진 욕을 다시 꺼내 관객들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radioplay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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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혁은 사춘기 이전부터 대중문화에 심취했다. 어른이 되면 고급문화에 심취할 줄 알았는데, 더 자극적인 대중문화만 찾게 되더라. 현재는 인터넷 문화와 B급 문화뽕까지 두루 맞은 상태로 글을 쓴다.
#아수라#영화#매거진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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