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판단능력 부족-선입견 이유… 흑인들 배심원단서 대부분 제외
전원 백인 배심원단 유죄판결 비율… 흑인 81%-백인 66%로 큰 차이
“이번 재판은 미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사법 정의의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조지 지머먼이 쏜 총탄을 맞고 숨진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 가족의 변호사는 지머먼 무죄 판결 직후 이렇게 말했다.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항의시위에서도 “사법시스템은 실패했다”는 구호가 자주 등장한다. 지머먼 사건을 계기로 미국 사법제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논란이 또다시 불붙고 있다.
가장 큰 논란의 불씨는 백인 위주의 배심원단 구성이다. 사건 발생 지역인 플로리다 주 샌퍼드에 흑인 인구가 30%나 되는데도 배심원단에 흑인은 한 명도 없었다. 배심원단 후보에 흑인 3명이 있었지만 최종 단계에서 모두 탈락했다고 CNN방송은 전했다.
미 헌법은 배심원 선정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실제 재판에서 흑인은 배심원에서 제외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흑인들은 지적 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선입견이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배심원 선정 때 흑인 후보의 90%는 백인과 똑같은 조건이어도 탈락한다는 것이다.
흑인 배심원 유무는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01∼2010년 플로리다 주 재판 700건 중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의 경우 흑인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비율이 81%였다. 반면 배심원단 중에 흑인이 1명이라도 포함됐을 경우 흑인 유죄 판결 비율이 71%로 떨어졌다.
흑백 차별은 기소와 재판 과정에서도 일어난다. 흑인이 백인을 살해했을 때 사형 판결을 받는 비율은 흑인이 흑인을 살해했을 때보다 22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캘리포니아의 최근 형사사건 70만 건 중 백인 피의자의 20%는 기소 과정에서 형벌이 가벼워졌지만 흑인 피의자의 감경(減輕) 비율은 11%에 머물렀다.
흑인단체들은 “지머먼 재판에서 인종 요인이 범행 동기 논의에서 배제된 것 자체가 사법부의 인종차별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재판을 진행한 데버러 넬슨 판사는 검찰 측이 “지머먼이 마틴을 쫓아간 이유가 흑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지 못하게 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지머먼이 마틴을 ‘추적했다’는 단어는 사용했지만 ‘인종적 이유로 추적했다’는 표현은 쓸 수 없었다.
도널드 존슨 마이애미대 법대 교수는 “사법부는 증거 제시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인종을 범행 동기에서 제외시키려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소재 저커먼스페이더 법률회사의 로버트 와이히 변호사는 “지머먼 재판은 사법 시스템의 ‘색맹(color blind·피부색으로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며 “인종차별적 요소를 없애려면 법조인들의 뿌리 깊은 편견도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머먼에게 무죄 평결을 내린 한 여성 배심원은 15일 CNN방송에 출연해 지머먼이 마틴과의 격투 막판에 ‘의심의 여지없이(no doubt)’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며 이 점이 평결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번 재판의 배심원이 언론을 통해 발언한 것은 처음이다.
얼굴을 가린 채 ‘앤더슨 쿠퍼의 360°’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심원 B37’은 “마틴이 먼저 지머먼을 때렸으며 911 전화로 들린 비명도 (그의 어머니 주장대로) 지머먼의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지머먼에 대해서는 “동기는 순수했지만 올바른 판단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자경단이라는 임무에는 충실했지만 경찰의 충고를 어기고 차에서 내려 마틴을 따라간 것은 잘못이었다는 설명이다.
흑인 인권운동가인 앨 샤프턴 목사는 흑인 라디오쇼인 ‘톰 조이너 모닝쇼’에 출연해 평결 일주일째를 맞는 20일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지머먼의 부모는 15일 ABC방송과의 독점 인터뷰에서 “우리도 아들이 법원을 떠난 이후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며 “수많은 살해 위협 때문에 지머먼은 풀려난 뒤 곧바로 몸을 숨겼다”고 밝혔다. 그들은 “아들뿐만 아니라 우리, 변호인단, 경찰 등 지머먼의 DNA를 지닌 모든 사람들이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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