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성국]납북된 베트남전 국군포로 하루빨리 조국에 데려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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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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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국 전 경민대 도서관장
조성국 전 경민대 도서관장
5월 25일 북한 지역에서 발굴된 국군용사의 유해 12구가 국내로 봉환됐다. 이들은 국군으로 입대해 미군 7사단에 배속됐던 카투사(KATUSA)로 1950년 12월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미국은 2000∼2004년 북한 지역에서 유해를 발굴한 뒤 미합동전쟁포로실종자사령부(JPAC)에서 신원확인 작업을 하던 중 이갑수 일병은 인식표가 함께 발굴돼 유족을 찾았고, 김용수 일병은 한미 합동으로 유전자(DNA) 감식을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들의 유해 봉환은 카투사였기에 가능했다. 대한민국은 ‘국가원수급’ 의전으로 정중하게 맞이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거수경례로 직접 이들을 마중했고, 21발의 조포가 울려 퍼졌다.

베트남전 참전자들의 전사와 포로도 살펴보자. 35년간 베트남 정글에 방치됐던 박우식 소령의 유해가 2002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역시 JPAC는 미군 헬기 잔해에서 발굴한 시신이 한국군 박우식 소령임을 밝혀냈다. 미군 헬기를 타지 않았다면 결코 귀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귀환은 우리 사회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조국의 이름으로 싸운 군인들을 잊지 않고 세상 끝까지라도 찾아가 유해를 수습하는 미국에 부러움과 경의를 표한다.

우리 군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1월까지 베트남전에 총인원 30만여 명이 참전했다. 그때 소수의 한국군이 적군에게 포로가 돼 월맹(공산진영)으로 끌려갔으며, 이들 중 극소수가 북한으로 강제 압송돼 북한에 생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 실정이다. 200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61차 유엔인권위원회에 참가했던 이두아 변호사가 이 사실을 처음 거론했다.

안학수 하사는 베트남전에 참전해 귀국을 한 주 앞둔 1966년 9월 9일 사이공(현 호찌민)에서 실종됐다. 이듬해 3월 북한 방송에 출연해 자신을 ‘자진 월북자’로 소개하면서 그 가족들의 고난사(苦難史)가 시작됐다. 그러나 안 하사가 실종된 지 43년 만인 2009년 진실이 밝혀졌다. 안 하사의 동생 안용수 목사(60)는 형의 행적을 집요하게 추적한 결과 안 하사가 베트남에서 월맹군에 납치된 뒤 북한에 넘겨졌고, 1975년 탈북을 시도하다 붙잡혀 총살됐다는 증언과 증거들을 확보했다. 육군으로부터 전사통지서를 2009년 12월 1일 받았다. 정부는 2010년 베트남 현지 합동조사를 벌여 마침내 안 하사를 납북자로 인정했다. 안 목사는 “전사통지서를 받았을 때 40여 년간 가족들의 숨통을 조여 온 올가미가 풀리는 느낌이었다”며 “형 말고도 납북된 베트남전 국군포로가 20여 명 되는데 이분들도 빨리 누명을 벗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실종된 뒤 북한 체류가 확인된 사람은 안학수 하사를 비롯해 김인식 대위, 정준택 하사, 박성렬 병장 등이다. 재북 베트남전 국군포로는 유골이 아니고 생존자이므로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갖고 속히 데려올 것을 호국보훈의 달에 간곡히 호소한다.

조성국 전 경민대 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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