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 시대가 온다]<1>공동소비, 삶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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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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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은 싸게 묵고 주인은 돈벌고… 빈방 ‘알찬 공유’

에어비앤비에 회원으로 가입하기는 쉬웠다. 페이스북 ID로 로그인하면 별도로 개인정보를 입력할 필요가 없었다. 적당한 숙소를 고른 뒤 예약을 마칠 때까지 10분도 채 안 걸렸다. 3시간 뒤 집주인으로부터 예약을 확인했다는 내용과 전화번호가 담긴 e메일을 받았다. 집주인의 이름은 피터 불 씨. 직업은 목수였다. 이 숙소를 이용한 사람들의 평가도 3건 있었는데 모두 괜찮았다.

지난달 말 취재를 위해 실리콘밸리를 방문했다가 처음으로 에어비앤비에 가입해 방까지 빌렸다. 에어비앤비는 실리콘밸리에서 공유 경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2008년 창업했고 지난해부터 급격히 성장했다. 투자자들이 올해 7월 평가한 기업 가치는 10억 달러(1조150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모든 예약을 인터넷으로만 해야 하고, 얼굴도 모르는 집주인에게 선뜻 방을 빌릴 수 있을까. 또 집주인도 낯선 사람을 자기 집에 들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직접 묵어보기로 했다. 서비스에 처음 가입한 한국인 여행자가 미국인 집에서 당일 예약으로 하룻밤을 문제없이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숙소는 사진과 똑같았다. 에어비앤비가 숙소를 직접 다 검증했다고 한다. 호텔처럼 개인 욕실과 사생활도 보장됐다. 집주인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직접 물어볼 수도 있었다. 관광지나 업무지구가 아닌 일반 주택가에서 하룻밤을 보내니 마치 현지 주민이 된 느낌도 받았다. 샌프란시스코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숨은 보석 같은 곳’이란 평가를 받는 버널 하이츠 공원을 본 것은 생각지 못한 소득이었다.

에어비앤비에는 선택할 수 있는 숙소의 종류가 다양하다. 샌프란시스코만 해도 나무 위 오두막부터 100년 된 목재 선박까지 다양한 객실이 있다.

여행자에게 에어비앤비는 독특한 숙소였지만 집주인인 불 씨에겐 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는 목수였다. 10여 년을 열심히 일해서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에 뒷마당이 있는 예쁜 작은 집을 샀다. 그리고 2008년 경제 위기가 닥쳤다. 지난해에는 일자리를 잃었다. 수입도 사라졌다. 집을 사면서 진 빚만 남았다. 대출을 갚지 못하면 집을 잃을 상황이었다. 그때 에어비앤비를 알게 됐다. 기자가 묵기 불과 6주 전의 일이었다. 매주 2, 3명의 손님이 들렀다고 하니 기자는 대략 15번째 전후의 손님이었다. 하룻밤 숙박비는 78달러, 이 가운데 8달러가 에어비앤비의 수수료다. 불 씨는 70달러를 받는다. 그는 지난달에만 이렇게 1000달러 이상을 벌었다고 했다. 풍족하게 생활할 돈은 아니지만 적어도 모기지 대출을 갚아나갈 수는 있었다.

캐서린 린디 씨는 자신의 차로 매월 250달러를 번다. 차를 빌려주고 돈을 받는 릴레이라이즈 서비스를 통해서다.

린디 씨의 2004년식 파란색 도요타 프리우스에는 양쪽 뒷문에 커다랗게 ‘내 차를 빌려가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릴레이라이즈의 홈페이지 주소도 보였다. 이런 스티커를 차에 붙이면 부끄럽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자신의 차가 친환경차로 분류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1세대인 프리우스였고, 이를 공유하는 건 “자원의 낭비를 막는 사회운동”이라고 했다.

린디 씨는 지난해 신문 기사를 보다가 미국 대륙 반대편인 보스턴에서 문을 연 릴레이라이즈 기사를 읽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린디 씨는 평소 친환경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업을 해보고 싶던 차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릴레이라이즈에 e메일을 보냈다. “저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캐서린이라고 해요. 혹 관심 있으면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릴레이라이즈 사업을 해보지 않을래요? 내 차를 1호로 등록할게요.” 큰 기대를 안 했지만 의외로 창업자 셸비 클라크로부터 직접 답장을 받았다. “꼭 우리의 첫 샌프란시스코 파트너가 돼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이용자가 없었다. 고객은 캘리포니아로 출장 온 릴레이라이즈 직원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순식간에 사용자가 늘어났다. 구글 벤처투자조직인 구글벤처스가 릴레이라이즈에 투자하면서 명성을 얻은 덕분이다. 린디 씨는 “걸어서 10분 이내 주변 지역에만 릴레이라이즈 차량이 4대”라고 말했다.

그녀는 창업을 위해 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뒀다. 릴레이라이즈가 동기 부여를 해줬다. 이웃과의 공유 경제가 사업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최근 ‘모푸즈’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모푸즈는 음식을 공유하는 회사다. 자신의 뒷마당에서 자란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을 온라인에 올리면 다른 사람들이 가져다 잼이나 술 같은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판매한 뒤 수익을 나눈다. 최근 그녀는 이런 가공식품을 전문적으로 만들 수 있는 ‘셰어키친’이라는 일종의 부엌 공유 사업도 시작했고, 만든 음식을 유기농 슈퍼마켓 체인인 홀푸드를 통해 판매하는 계약도 했다.

린디 씨는 “공유 경제는 제품을 만들고 유통시키며 소비하는 모든 과정을 쉽고 편하게 만들고, 필요한 비용도 줄여준다”며 “다음 목표는 좋은 투자자를 만나 사업을 더 크게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190개국 숙소 56만개… 3년만에 ‘힐턴’ 규모 성장 ▼

에어비앤비의 공동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 씨(왼쪽)와 조 게비아 씨.
에어비앤비의 공동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 씨(왼쪽)와 조 게비아 씨.
에어비앤비의 시작은 단순했다. 2008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의 동창생이었던 브라이언 체스키 씨와 조 게비아 씨가 “뭐가 됐든 우리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온 게 시작이었다. 하지만 어떤 사업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고 심지어 아파트 월세도 못 낼 지경에 이르렀다.

때마침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제 디자인 콘퍼런스가 열렸다. 행사에 참석하려던 두 사람은 행사 홈페이지를 보다가 숙소를 못 잡은 참가자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때 ‘우리 아파트의 빈 방을 빌려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결국 세 명의 낯선 디자인 전공자가 찾아와 소파와 침대를 빌렸고, 체스키 씨와 게비아 씨는 주말을 이들과 함께 보내면서 약 1000달러를 벌었다.

이때 경험이 나중에 에어비앤비의 특징이 됐다. 바로 신뢰와 입소문이다. 당시 집주인인 체스키 씨와 게비아 씨는 손님을 고를 수 있었다. 숙박하려는 손님은 모두 디자인 콘퍼런스에 참여하려는 학생들이었고 인터넷으로 확인한 게 전부였지만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또 이들의 집에 묵었던 사람들이 “유쾌한 사람들이 싸게 집을 빌려 준다”고 인터넷의 디자이너 커뮤니티를 통해 입소문도 내줬다.

체스키 씨와 게비아 씨는 내친김에 사업을 키워보자며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던 네이선 블레차치크를 끌어들였다. 그는 공동창업자가 됐다. 이후 아파트의 방이나 소파를 빌려주던 사업모델은 점점 모든 종류의 숙소로 확대됐다. 집 전체를 빌려주는 사람부터 유럽의 고성, 배를 개조한 수상가옥을 빌려주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에어비앤비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가 있는 소비자만 계약을 하도록 했다. 결제를 확실하게 하고, 손님이 강도로 돌변하는 걸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또 에어비앤비는 투숙객이 예약을 마치면 바로 숙박비를 받지만 계약된 숙박기간이 끝난 뒤에야 집주인에게 전달한다. 투숙객이 약속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돈을 집주인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사업이지만 지난달 말 기준으로 에어비앤비의 전체 직원은 200명이 조금 넘는다. 이 가운데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75명뿐이다. 이들이 창업 이후 지금까지 중개한 숙박 계약이 벌써 200만 건을 넘어섰다. 약 190개 국가, 1만9000여 개 도시에서 56만 개 이상의 방이 매일 예약 가능한 곳으로 올라온다. 이 수는 계속 늘어난다. 에어비앤비는 내년이면 예약 가능한 객실 수가 세계 최대의 호텔 체인인 힐턴보다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사용자가 늘고 있다. 지난달 말 현재 한국에는 129개의 숙소가 에어비앤비에 올라와 있다. 해외 이용도 많아져 2010년 1월 이후 총 8000건 이상의 숙박 계약이 한국인에 의해 이뤄졌고 매달 평균 30%씩 증가하고 있다.

정진욱 기자 cool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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