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일본 20대 여성 공격적… 30대 남성은 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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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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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30대 남성 역동적… 20대 남성은 ‘경쟁’ 부담

일본의 30대 남성은 높은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변했다.
일본의 30대 남성은 높은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변했다.
한중일 마음지도 프로젝트에 등장한 세 나라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온 시대상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보였다. 인정받기를 열망하지만 마음은 허한 20대 한국 여성. 안정돼 보이지만 일탈을 꿈꾸는 50대 한국 남성. 이처럼 의표를 찌르는 ‘문제적 세대’도 존재한다. 중국인과 일본인도 이를 비껴가지는 못했다.(기사에 등장하는 미치코는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가상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실제 인물 여러 명의 발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 ‘하이에나’ 20대 일본女

미치코(美智子)는 얼마 전 TV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다 쓴웃음을 지었다. 내용이 자신의 얘기와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만든 다큐는 하이에나에 관한 실험을 소개했다. 제작진은 암컷 하이에나가 있는 우리에 수컷을 집어넣었다. 놀랍게도 암컷은 바로 수컷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사람으로 치면 거의 무차별 폭행 수준이었다. 하지만 수컷은 피를 흘리면서도 암컷에게 반항을 못 했다. 하이에나 무리에서는 암컷이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한다. 하이에나 암컷은 수컷보다 덩치가 크며 심지어 생식기 모양도 수컷과 비슷하다.

미치코는 얼마 전 남자친구 마사하루(雅治)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초식남(草食男)을 자처하는 그의 꼬락서니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마사하루는 무엇이든 자기가 먼저 결정하는 일이 없다. 미치코에게 물어보거나, 심지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해 달라고 한다. 여자친구에게 한턱 제대로 쏘지도 못하는 인간이 조립식 장난감에는 아끼지 않고 돈을 써댄다.

일본의 20대 여성은 하이에나를 닮아가고 있다. 한중일 3국 조사에서 일본의 20대 여성의 남성적 성향 지수(3.39점)는 동년배 남성(3.22점)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공격 성향도 남성을 능가했다. 20대 일본 여성의 공격성향 지수는 2.63점인 반면 20대 남성은 2.51점에 그쳤다.

2009년 말 일본 NEC가 25∼35세 미혼 여성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신이) 수컷화되고 있다고 느끼나’란 질문에 응답자의 무려 63%가 ‘그렇다’(그렇다+매우 그렇다)고 대답했다. ‘자신보다 남자답지 못한 남자가 주변에 있나’란 질문에는 70%가 “그렇다”고 말했다. 일본 TV 드라마 ‘워킹맨’에는 남자 직원의 몇 배 몫을 하느라 ‘남성화’된 여주인공이 자신에게 부족한 여성 호르몬을 보충하기 위해 낫토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낫토에는 천연 여성 호르몬인 이소플라빈이 들어 있다.

일본의 젊은 여성은 왜 남성화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들의 삶이 팍팍해졌다는 데 이유가 있다. 일본에서는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여성이 강해져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상대적 약자인 여성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일본 가쿠슈인(學習院)대에 재학 중인 이인숙 씨(21)는 “꿈을 잃은 남성들이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현상에 대한 반작용”이란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일본 여성의 남성화는 중국과 무척 대조적이다. 20대 중국 여성들의 남성적 성향 지수(2.62점)는 동년배 남성(3.65점)보다 매우 낮다. 썬자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국 여성은 굳이 독해져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주의 정권하에서 여성은 직업을 갖고 지위도 높아졌기 때문에 남성성을 강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는 “오히려 요즘 중국에선 전업주부를 선망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 ‘다이내믹’ 30대 중국男

중국인 왕더장(王德江·35) 씨는 산둥(山東) 성 허쩌 출신이다.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10여 년 전 지역의 전문대 격인 직업훈련과정원을 졸업하고 베이징(北京)으로 사실상 무작정 상경했다. 아직까지 고정된 직장을 갖지 못한 채 임시직이나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다. 베이징에 자신이 할 일이 분명히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뭔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에게 중국은 기회의 땅임에 분명합니다.”

1970년대 초∼1980년대 초에 태어난 중국의 30대 남성은 중국인 사이에서 복 받은 세대로 통한다. 40대 중반 이후 세대가 문화대혁명(문혁)의 기억에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돼 있다면 이들 30대 남성에게 그런 트라우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전 세대는 문혁이 초래한 사회적 혼란 때문에 공부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지만 이들은 개혁개방이 급물살을 탈 즈음인 1990년대 대학에 들어가 상대적으로 나은 실력을 갖췄고 일부는 유학 기회도 잡았다. 대우증권에 근무하는 가오싱 씨는 “이들 30대가 사회에 진출할 무렵인 2000년대는 중국의 고도성장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이 잘 형성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승진이 빠른 편인 중국 기업에서 이들 30대 남성은 이미 부장급 등 주요 보직을 맡아 사회적 지위도 높고 수입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첩을 뜻하는 얼나이를 둔 이도 적지 않다. 이런 30대 남성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워쥐(蝸居)’라는 TV 드라마가 선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30대 중국 남성은 자신감(70.6% 긍정)에서 중국인 평균(61.5% 긍정)을 웃돈다. 남성 성향(74.7% 긍정)과 공격 성향(9.4%)에서도 중국의 다른 연령대보다 가장 마초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새롭고 자극적인 경험을 적극 추구(81.2% 긍정)하며 시기와 질투심(50.6% 긍정)도 전체 평균(45.4%)을 상회했다. 한마디로 강한 욕망으로 무장해 역동성을 가지고 사회를 이끌어 간다고 볼 수 있다.

다이내믹한 30대 중국 남성이 빛이라면 그늘도 있는 법. 바로 20대 남성이다.

이들은 ‘한 자녀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태어나 가정에서는 소황제로 군림했다. 그러나 사회에 진출해서는 30대만큼 수혜를 보지 못했다. 이미 사회에는 대학 졸업생이 득시글하던 때라 경쟁이 더 치열해졌으며 취업난과 물가고, 주택난이 엄습했다. 결혼이라도 하면 자신의 부모, 처의 부모, 그리고 자기 자녀까지 모두 부양해야 하는 애처로운 세대가 됐다. 동국대에서 유학 중인 20대 중국인 대학원생 니레이 씨는 “지금의 20대는 잘나가는 30대와 자유로운 10대 사이에, 그야말로 낀 세대”라며 “좌절감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30대 남성의 역동성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주장도 있다. 경제적 혜택을 받으며 개인주의적 가치를 극대화하고픈 욕망과, 이를 위해선 공산당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이데올로기가 그들의 머릿속에서 이율배반적으로 공존한다는 것이다. 임대근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중국 30대의 역동성은 결국 체제 내에서의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 ‘스트레스’ 30대 일본男

2008년 일본에서는 남성용 브래지어가 출시돼 불티나게 팔렸다. ‘위시룸’이라는 회사에서 판매하는 이 브래지어는 시판 14개월 만에 8000장이 나갔다. 놀라운 사실은 주요 고객이 대부분 30대 남성이었다는 것. 마사유키 쓰치야(監督土屋) 위시룸 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들 고객은 대부분 직장 상사에게 들볶여서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인 사람들이었다”며 “브라를 착용한 뒤 평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들 말한다”고 밝혔다.

복장 도착자가 아닌 정상인임에도 브래지어를 입어야 마음이 고요해지는 30대 일본 남성의 슬픈 자화상은 이번 조사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들은 일본의 다른 어느 연령층보다도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외로우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시간에 쫓겼다.

‘다른 사람이 나를 가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할까 염려된다’ ‘다른 사람에게 바보처럼 보일까 걱정된다’는 질문에 이들의 33.3%와 32.6%가 ‘그렇다’고 답했다. 일본 전체 평균은 각각 21.4%와 22.0%였다.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는 질문에도 전체 평균 30.8%를 크게 넘는 43.3%가 ‘그렇다’고 답했고,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는 문항에도 57.4%가 긍정적 응답을 했다. 조사 결과를 비교해 보면 일본의 30대 남성은 야심과 희망에 불타는 중국 30대 남성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버블시대에 유년을 보내며 나름대로 풍족한 생활을 했다는 점 말고는 비슷한 구석을 찾기 어렵다.

이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는 ‘잃어버린 10년’의 암흑기였고, 사회에 나설 때 일본 사회는 ‘잃어버린 20년’으로 접어들었다. 이전 세대가 구인난에 허덕이던 대기업들의 구애 경쟁 속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직장을 구했다면 이들은 입사원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전쟁을 치르며 겨우 자리를 잡았다. 평생직장의 안락함과 애사심이 사라진 직장에서는 옛 생각에 사로잡힌 상사의 꾸지람과 개인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20대 신입사원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야말로 치인 세대다. 하코다 데쓰야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은 “이들은 자라오면서 현실을 다 알아버렸다. 세상살이가 너무 어렵다는 인식을 한다. 그래서 자신감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이 희박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코다 지국장은 일본의 30대가 ‘일본은 완전히 끝났다’ 혹은 ‘대영제국같이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자신감은 결여됐지만 절망만 하고 있진 않다는 것이다. “일본의 30대는 지금 일본이 저공비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속도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앞으로 속도를 조절해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순 있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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