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한 정철大君의 ‘원더풀 투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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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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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는 동생 정은이 하면 되고… 난 에릭 클랩턴 블루스나 즐기련다?■ 싱가포르 외유 포착 의미는

“늦은 저녁, 그녀는 무슨 옷을 입을지 망설이네요. 화장을 하고 긴 금발을 빗어 내리며 내게 묻네요. ‘내가 괜찮아 보이나요?’ 그래서 내가 말했죠. ‘그래요 당신은 오늘 밤 너무 멋지네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차남 김정철(사진)은 14일 싱가포르에서 영국 가수 에릭 클랩턴의 ‘원더풀 투나잇’ 등을 들으며 하룻밤을 만끽했다. 북한이 타도 대상으로 삼아왔던 자본주의 아이콘 중 하나인 블루스 음악의 대가를 쫓아다니는 권력자 아들의 모습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미 페이지, 제프 벡과 함께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불리며 슬로 기타 주법의 대가인 클랩턴의 음악세계는 식량난에 신음하는 북한의 현실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 클랩턴이 너무 좋아서?

정철이 클랩턴의 열혈 팬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그가 2006년 클랩턴이 독일에서 가진 4회의 공연에 모두 참석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싱가포르에 나타난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시각이 많다. 김 위원장의 생일(16일)을 불과 이틀 앞두고 한가하게 해외에서 공연이나 관람하는 ‘낭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이를 통해 정철이 권력에서 멀어졌음은 분명히 드러났다. 따라서 이번 여행은 김 위원장이 권력에서 밀려난 아들을 위로해 준 것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탈북자 출신 정치학 박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후계자에서 탈락한 정철은 김 위원장의 생일 행사에 참석할 자격이 안 되니 취미생활이나 즐기라고 아량을 베풀어 준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즐길 수 있는 행동반경을 인정받은 ‘허락된 외유’로 보인다”며 “동생 정은으로의 권력승계가 안정적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아버지의 생일에 맞춰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싱가포르는 북한 공관원들이 많이 나가 있고 일본에서 만든 고가의 전자제품 등이 깔려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정철은 싱가포르의 특급호텔 스위트룸에 약 1주일간 머물며 해양수족관과 놀이공원이 있는 센토사 섬을 비롯한 관광지를 돌아다녔으며 쇼핑몰에서 고가의 보석 등을 구입한 뒤 15일 귀국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 같으면서 다른 두 아들의 미래

정남과 정철은 후계구도에서 탈락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앞으로 북한 내부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분석이다. 북한을 비판하고 나선 정남과 달리 정철은 후계자인 동생 정은을 후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철이 경호원과 여성들을 대동하고 다니는 것은 북한 지도부가 김 위원장의 아들에 상응하는 대우를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리더십 부족 등의 이유로 후계자에서 탈락했지만 그도 정은과 마찬가지로 무용수 출신 고영희의 아들이다.

정 위원은 “정철은 현재 노동당에서 인사관리를 맡는 핵심 자리인 조직지도부 당생활지도과장을 맡고 있다”며 “김 위원장이 사망한 뒤에는 동생을 위해 더 큰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이 허심탄회하게 김 위원장에게 조언하는 역할을 정철이 맡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남의 위상은 이와는 확연히 다르다. 안찬일 소장은 “정남은 이른바 ‘곁가지’라던 김 위원장의 배다른 동생 김평일보다도 훨씬 못한 처지”라며 “외신을 통해 연평도 도발을 두고 정은에게 쓴소리를 했던 정남은 북한에도 못 돌아갈 처지”라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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