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종군취재] <6신> 30년 전쟁이 망친 3000년 고도 카불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7일 03시 00분


묘지로 변한 옛 휴양지… 공포감 엄습
도시 곳곳에 공동묘지… 테러와 검문이 일상
전승기념일 앞두고 긴장감

25일 카불 시내의 한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폭탄 테러의 공포에 짓눌려 있는 카불에 생기를 불어넣는 존재다. 카불=하태원 특파원
25일 카불 시내의 한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폭탄 테러의 공포에 짓눌려 있는 카불에 생기를 불어넣는 존재다. 카불=하태원 특파원
3000년 역사의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은 1979년 옛 소련 침공 이후 좀체 끝날 줄 모르는 30년 전쟁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1989년 소련 패주 이후 1992년 무자헤딘의 ‘성전(聖戰)’에 이은 아프간 이슬람공화국 선포, 1996년 탈레반 집권, 2001년 미국 침공 등에 이르기까지 카불은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25일 찾은 카불은 언제 어디서 로켓탄이나 자살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공포 속에 가위 눌려 있었다. 특히 소련 격퇴 및 나지불라 정권 전복을 기념하는 ‘전승기념일’(28일) 행사를 앞두고 카불은 극도로 긴장한 모습이었다.

미 공군 바그람 기지를 출발해 70분 정도 달리자 고도(古都) 카불이 모습을 드러냈다. 1번 도로로 불리는 60km 거리의 이 길은 왕복 2차로 또는 3차로로 도로 상태도 비교적 양호했다. 하지만 도로에는 차선이 없었고 차들은 너나없이 추월 경쟁을 벌이며 반대편 차로를 수시로 침범하는 곡예운전을 계속했다. 멈춰 있으면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에 생긴 나쁜 운전습관이었다.

‘카불 방문을 환영한다’는 표지가 나오면서 중무장한 아프간 경찰병력을 만났다. 의심스러운 차량은 덮개를 열어 보고, 바닥까지 폭발물 검사를 철저히 했다. 이곳을 통과해 5분 정도 달리자 시가지 모습이 보였고, 야산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옥들이 눈에 들어왔다. 탈레반 정권 당시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이란 등지로 도망쳤던 하자라, 우즈베크, 판시르 족 등 소수민족들이 사유지인 시내로 들어가지 못해 2002년부터 산중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내 외곽에는 집시들의 임시 텐트촌도 곳곳에 보였다. 카불 인구는 41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시 외곽에서 본 카불의 풍경은 거대한 공동묘지 같았다. 묘지에 꽂힌 녹색 깃발은 전사자가 묻힌 곳이라고 한다. 간선도로인 사라키 첼메트라 도로를 달리는 중간중간에 펄럭이는 녹색깃발은 카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지를 짐작게 했다.


믿기지 않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카불은 유럽 귀족들의 고급 휴양지였다고 한다. 해발 1800m의 고산지대여서 여름에도 그늘에만 가면 선선한 데다 힌두쿠시 산맥의 만년설이 유럽의 알프스를 연상케 했다는 것. 18세기 영국 여행가 조지 포스터는 카불을 방문한 뒤 “아시아 최고의 도시이며 가장 깨끗한 곳”이라고 기록했다.

하루 3시간씩 3부제로 진행되는 학교수업을 마친 어린 학생들이 몰려나온 오후의 카불 시내는 자동차로 혼잡했다. 시내를 달리는 차량은 대부분 일제 중고차였고 한국차도 보였다. 한국 중고차의 경우 폐차 직전의 차가 많아 ‘메이드인 코리아’의 이미지를 흐리고 있다는 게 현지 안내인의 귀띔.

로터리를 몇 군데 지나자 검문이 심해졌다. 내무부와 정보부, 인도대사관 등이 있는 곳이다. 탈레반의 로켓포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대형 방호벽인 T월(T자 모양의 강화 콘크리트 벽) 수백 개가 서 있었다. 지난해 7월 인도대사관 차량폭탄 테러 이후 이 길은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이 됐다. 이 밖에 카불에서는 지난해만 해도 특급호텔이었던 세레나 호텔 공격(1월), 법무부 공격(2월), 전승기념일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 암살시도(4월) 등 테러기도가 끊이지 않았다.

차량 안에서 기자가 정보부 건물을 찍으려 하자 경비요원이 즉각 제지했다. 얼마 안돼 현지 안내인은 카르자이 대통령궁인 ‘아르기 줌 후리’가 가까워졌다고 설명했다. 대통령궁 주변에는 미국 대사관을 비롯한 주요국의 공관, 국제안보지원군(ISAF) 사령부와 유엔 등 국제기구가 밀집해 있다.

카불에서 바그람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2001년 10월 시작된 아프간전쟁은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의 대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게릴라들에게 전쟁은 지지 않으면 이기는 것이다. 하지만 정규군에게는 이기지 못하면 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탈레반은 여전히 게릴라전을 펼치고, 미국이 주도하는 ISAF는 탈레반의 근거지를 소탕하고 있다.

과연 이 전쟁은 언제 끝날까. 전쟁이 끝난다면 아프간은 이번에야말로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 뉘엿뉘엿 해가 떨어지는 바그람 기지에서는 전투기 2대가 굉음을 내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카불(아프가니스탄)=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 “재건 망치소리-글 읽는 소리서 희망을 듣는다”
이라크 이어 아프간 근무 박해윤 대사 “매력 많은 곳”
한국대사관 직원들, 현지인 영어 교육 등 의욕 넘쳐


수도 카불의 중심가에는 대한민국 대사관이 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단교했다가 2002년 외교관계를 재개하면서 청사와 대사관저, 직원숙소 등 4개의 주택을 빌려 쓰고 있다.

대사관 사람들은 매달 한두 건씩 일어나는 자살폭탄테러나 무장반군과의 총격전으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지만 모두 의욕적이고 밝은 얼굴이었다. 가족 없이 홀몸으로 근무하고 위험한 치안상황 때문에 외부출입을 삼가다 보니 이제는 어느덧 한 식구 같은 사이가 됐다. 이날도 대사관 직원들은 관저에서 점심을 같이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2월 말 부임한 박해윤 대사는 외교부 내에서 분쟁지역 전문 외교관으로 불린다. 직전에 이라크 대사관에서 1년 반 동안 근무하고 곧장 카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박 대사는 “이라크도 그렇고 아프간도 그렇고 알고 보면 매력과 흥미가 넘치는 곳”이라며 “전쟁의 폐허 속에서 희망을 찾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보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 부임한 박영규 참사관의 숙소에는 벌써 1년 넘게 떨어져 산 두 아들이 정성스레 보내온 편지와 그림이 걸려 있다. 늘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을 되뇌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는 “아프간 사람들이 재건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나 방과 후 학교 밖으로 걸어 나오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이 나라의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여성 외교관으로는 ‘가장 험난한’ 공관에 근무하게 된 강주연 서기관은 밤에는 공관에 있는 아프간 사람들의 영어교사로 활동한다.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에서 개발업무를 보다가 이곳에 온 그는 “10년 후 아프간의 달라진 모습이 기대된다”고 했다.

전직 경찰관으로 대사관 경호팀장에 채용된 권용준 씨 부부는 공관의 안전과 맛있는 식사를 책임진다. 권 씨의 부인 김순덕 씨는 지금까지 10여 명의 아프간 고아를 데려다 교육하고 돌봐줬다.

대사관 사람들은 업무가 끝나면 테니스를 하는 게 유일한 낙이다. 7월 파르완 주의 지방재건팀(PRT) 파견에 맞춰 해병대 요원 11명이 공관에 배치되면 족구를 해볼 생각도 하고 있다. 이날 대사관 사람들은 관저와 직원숙소에서 폭탄테러에 대비해 유리창에 방폭 필름을 붙이는 작업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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