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출근해요/1부]<1>‘스타의사’ 신의진 씨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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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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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스트레스에 정신과의사인 나도 정신과 찾아가”

《신의진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45)는 ‘스타 의사’다. 그의 진료를 받으려면 최소한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 10여 권의 서적을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 주치의를 맡아 더욱 유명해졌다. 적어도 정신과에서 그만큼 유명한 의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출산 축복, 육아 지옥

직장 옆으로 집 옮겨도 잠 하루 4시간이상 못자
도우미 2명… 가계 적자

남편탓보다 사회탓

‘육아와 살림은 엄마 몫’ 사회적 편견에 더 힘들어
2년간 매주 정신과 상담

저출산 대책 어떻게

장려금으론 출산율 못올려
직장보육시설만 있다면 둘째 셋째도 낳지 않겠나


‘나영이 주치의’로 유명한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 대부분 화려한 커리어우먼, 의사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육아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신 교수는 “엄마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기까지 참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박영대 기자
‘나영이 주치의’로 유명한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 대부분 화려한 커리어우먼, 의사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육아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신 교수는 “엄마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기까지 참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박영대 기자
신 교수는 두 아이의 엄마다. 스타 의사도 아이를 키울 때의 스트레스는 일반 엄마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했다. 오죽하면 정신과 의사가 정신과 상담을 받았겠는가. 신 교수가 속내를 털어놨다.

전공의 시절이었던 17년 전, 첫째 아이 경모가 태어났다. 아이는 하늘의 축복이지만 육아는 지옥이었다. 병원 안에 보육시설이 있었다면 아이를 곁에 두고 볼 수 있어 그나마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설은 상상도 못하는 시절이었다. 변변한 어린이집도 없었고, 친정과 시댁 모두 멀었다. 보모를 들였지만 믿을 수 없어 환자를 볼 때도 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다음 날 새벽까지 아이에게 매달렸다. 기저귀를 갈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남편은 소아과 의사였어요. 하지만 아이가 열이 펄펄 끓어올라도 남편은 자기 논문 쓰기에만 몰두했죠. 도와달라고 하면 ‘육아와 살림은 여자의 몫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밤샘 간호는 나 혼자서 감당해야 했어요.”

그렇게 반년이 지났다. 육아 스트레스는 분노로 바뀌었다. 훌륭한 의사가 되려고 그렇게도 공을 들였는데,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남편과 싸우는 횟수가 늘었다. 이런 결혼생활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가 들었다. 환자를 진료할 때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를 치료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결국 아이를 낳은 지 6개월 만에 정신과 의사가 정신과를 찾았다. 신 교수는 매주 두 차례씩 2년간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엄마’라는 힘든 ‘직업’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남편을 미워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아이 키우기는 엄마의 몫이고, 사회활동은 그 다음이라고 여기는 사회가 문제였죠. 아이는 키워야겠기에 억울해도 부조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포기하고 나니까 그나마 숨통은 트이더군요.”

돌이 지난 후 경모에게서 다른 아이와 다른 점이 발견됐다. 새 옷을 사서 입힐 때마다 심하게 거부했다. 왜 이렇게 아이가 힘들게 하나 짜증이 났다. 나중에야 아이가 틱장애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틱장애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 아이들이 반복적으로 몸의 특정 부위를 움직이거나 새로운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신과적 질환이다.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신 교수는 3년 터울로 둘째를 낳았다. 경모가 동생을 갖고 싶다고 졸랐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정말 아이 키우기가 힘들었지만 큰아이가 원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둘째 아이 정모를 낳을 무렵 신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었다. 두 아이의 육아를 담당하려니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다. 집을 병원에서 10분 거리로 옮겼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두 아이를 돌볼 도우미 2명을 구했다. 가계는 적자로 돌아섰다.

“병원 안에 보육시설이 있다면 좋겠다고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때가 없었어요. 만약 그랬다면 아침 회의에 지각도 덜 했겠죠. 가까운 곳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을 거예요. 심리적 부담도 한결 덜했겠죠.”

이제 아이들은 다 컸고 틱장애도 완치됐다. 그러나 17년간 여성이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신 교수의 평가다.

신 교수는 출산장려금과 같은 일회성 대책만으로는 출산율을 올릴 수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그보다는 일과 육아를 모두 즐겁게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 직장 내 문화도 출산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신 교수는 임신부가 출산휴가를 가려고 해도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직장 분위기를 지적했다.

“출산휴가를 내자 동료 의사들이 당직을 앞당겨서 다 하고 가라고 했어요. 물론 일이 많은 것은 이해하지만 임신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것 같아 무척 서운했어요. 어쩔 수 없이 일주일간 꼬박 밤을 새우며 당직을 했어요. 그 때문에 첫째 아이는 9개월 만에 조산을 했죠.”

신 교수는 직장보육시설이 지금보다 더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부모가 옆에 있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게 안 되면 보육 교사와 시설의 품질이 보장되는 직장보육시설이 있어야 한다는 것. 다만 근무 시간 등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단서를 붙였다. 후배들이 즐겁게 아이를 키우면서 일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 그게 바로 신 교수의 바람이다.

<특별취재팀>
▽ 팀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 교육복지부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 사회부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산업부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 오피니언팀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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