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컨테이너로… 종이로… 건축이 貧者를 구한다

  • 입력 2009년 4월 18일 02시 58분


한때 ‘러브하우스’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보듯이 건축가의 역할은 아름답고 멋있는 건축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건축가는 마치 사회사업가처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현대 사회는 제3세계의 빈곤, 환경 파괴에 따른 가뭄 홍수 지진 등 천재지변, 그리고 전쟁과 테러 등의 재해에 노출돼 있다. 거주 환경이 극도로 열악할수록 ‘사회적 건축’에 대한 요구는 더욱 높아진다. 건축은 단순히 물리적 환경을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니다. 건축은 도시와 환경, 문화를 이해하며 어떻게 사회적 역할을 할지 고민한다.

일본의 건축가 시게루 반은 ‘종이 프로젝트’에서 임시 재료를 재활용해 만든 사회적 공간을 보여줬다. 그는 종이로 커뮤니티 시설과 주택을 창조해 가장 손쉽고 값싸게 만드는 건축의 전형을 제시했다. 특히 1995년 일본 고베 지진이 일어난 후 종이 튜브로 만든 임시 주거는 겨울과 여름에도 잘 견디는 내구성까지 갖췄다.

건축학계에서는 빠르고 쉽게 지을 수 있는 건축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텐트 구조나 간단한 조립식 구조에 대해 연구해 왔다. 특히 컨테이너는 운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스템 박스인데, 다양한 형태의 간편한 건축물로 활용되고 있다. 즉 컨테이너는 공사장의 현장 사무실이나 농가 창고 등으로 사용되며, 일반적으로 건축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부분을 건축으로 치환해 낼 수 있다.

컨테이너는 사회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로도 변모한다. 건축가 그룹 오피스 오브 모바일 디자인(Office of Mobile Design)이 제안하는 ‘포터블 하우스(Portable House)+에코빌(Ecoville)’은 개량된 컨테이너의 새로운 시스템을 활용해 생태 마을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도어 시스템, 바닥 시스템, 태양열 시스템 등 다양한 아이템이 기본적인 컨테이너와 결합한다. 이는 거주와 대피소 기능이 모두 갖추어져 있던 선사시대의 건축 모델을 참고로 한 것이다. 이동식 집과 생태공원이 결합된 새로운 주거 형태다.

건축가 그룹 슈필만 엑슬레가 제안하는 ‘프라이타크 플래그십 스토어(Freitag flagship store)’는 27개의 컨테이너박스를 수직으로 쌓아 만든 26m 높이의 타워다. 오직 선박 산업의 재료로 쓰이는 컨테이너만 사용해 겹쳐 쌓은 뒤 고정했다. 완성된 건축물은 녹슬고 속이 빈 화물 컨테이너를 재생하고 재창조한 하나의 모델이 된다.

건축가 다쿠야 오니시가 제안하는 ‘페덱스(Fedex) 포장지 프로젝트’는 건축이 더욱 진보적으로 사회에 개입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건축물 구축보다는 국제적 시스템을 만드는 방식을 제안한다. 어린이 구호를 위한 기증품을 페덱스 포장을 통해 받고, 페덱스 포장지를 이용해 건축물의 외관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페덱스 포장 상자는 재활용 재료와 방수재로 만들어져 실용적이다. 이 상자는 기증품을 운송하는 수단이기도 하고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필요한 병원, 어린이 시설, 회의실, 시민회관 등을 구성하는 레고 블록과 같은 장치가 된다.

장윤규 건축가·국민대 건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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