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구]‘중환자’ 옆에 놔두고 ‘처방전’ 싸움만…

  • 입력 2008년 12월 26일 02시 57분


“민주당은 차라리 (2004년) 대통령 탄핵 때처럼 본회의장에서 끌려가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을 것이다.”(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

“날짜를 정해놓고 협상하자는 것은 점령군이 포로를 놓고 협상할 때도 하지 않는 오만한 행동이다.”(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

한나라당이 법안 처리의 협상 시한으로 제시했던 25일에도 여야는 상대방을 향해 서로 독설을 퍼부었다.

이날 국회 한나라당 당 대표실과 원내대표실 등에는 당직자 몇 사람만 서성였을 뿐 50m 떨어진 민주당 쪽 상황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했다.

민주당도 원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회 경위들이 민주당 의원들의 농성 상황을 체크한 일지를 제시하며 “정치 사찰이 다시 시작됐다”는 공세만 폈을 뿐 대화에는 무신경한 모습이었다.

18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한나라당 단독 상정을 민주당이 막는 과정에서 해머와 전기톱이 난무한 폭력 사태가 벌어진 이래 국회 파행 8일째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정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 “대화와 타협으로 사태를 해결하라”는 등의 국민들의 원성과 촉구가 터져 나왔지만 이들에겐 쇠귀에 경 읽기였다. 대신 상대를 자극하는 말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오히려 민주당은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폭력 사태 이후 초강경 대응을 계속하면서 당 내부 결집을 이루고 당 지지율이 소폭 상승한 데 고무된 듯한 표정이다. 한나라당도 민주당과의 대화 노력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양당은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속한 국가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국가를 위해 당의 이해관계를 뒤로 미루는 대승적인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이 벌이고 있는 사생결단식의 기(氣) 싸움은 죽어가는 환자의 상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상대방 처방이 틀렸다고 우격다짐을 벌이는 ‘돌팔이’ 의사들과 닮은꼴이다.

또한 아이(국가)의 생명은 관심도 없고 내 아이라고 주장만 하는 유대의 ‘가짜’ 어머니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처방전 타령만 하다가 약 한 첩도 쓰지 못한다면 환자가 살아날 수 있을까. 내 아이를 포기하려 한 ‘진짜’ 어머니가 없었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다. 이 상황이 지나면 국민은 어느 정당이 진짜 국가를 위한 정당이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진구 정치부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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