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칼럼니스트“이런 이야기 싫어하실 수도 있겠지만….” A는 말을 꺼낼 듯 말 듯했다. 싫어할 리 없다. 나는 A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정보보안 전문가다. 자기 일에 충실해 성과도 좋고 취미생활도 열심히 한다. 인품도 선해 주변에 사람도 많다. 나 역시 그의 주변인 중 하나라 오랜만에 만나 안부를 나누던 중이었다. 망설이는 젊은이 앞에서 괜찮다고 세 번쯤 말하자 말이 이어졌다. “사실 제가 인공지능(AI) 박찬용을 만들어 에디터님 말투를 좀 빌렸습니다.”
A는 AI 박찬용의 생성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줬다. 나는 개인 활동의 일환으로 유튜브 등 여러 매체에 출연한 경험이 있다. A는 AI를 활용해 각종 매체에서 내가 했던 발언들을 자막 형태의 텍스트로 추출했다. 이렇게 모은 박찬용의 이야기 뭉치를 AI를 이용해 일종의 ‘말투 필터’를 만든 것이다.
‘이 데이터를 활용해 박찬용 말투로 답해 줘’라는 명령어로. 당시 호감이 있던 여성과 메신저 대화를 할 때 ‘AI 박찬용 필터’를 한 번 거쳐서 대답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 필터를 전부 쓰지는 않았습니다. 에디터님과 제 말투를 8 대 2 정도로 섞었어요.”
대단히 흥미롭지 않은가. AI 박찬용의 제조 방법과 그 창의성부터. AI로 구현할 수 있는 일종의 다차원 데이터 입출력과 방정식이 이렇게 구현되는구나 싶었다. 8 대 2라는 수치도 오묘했다. A 자신의 말투를 2 섞은 건 자존심의 반영일까 양심의 반영일까, 왜 그 비율은 9 대 1이나 7 대 3이 아닌 8 대 2일까. ‘내 화술이 AI를 활용해 필터화시킬 만큼 괜찮을까’ 같은 건 너무 사소해 궁금하지도 않았다.
“젊은 소설가들이 AI를 돌리고 있대요.” 다른 곳에서 들은 이야기도 새삼 생각났다. 주제는 ‘소설 창작에서의 AI’. 실제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활용 분야는 설정이나 서사에서의 오류나 공백 확인이다. 원고 작성이 직업인 입장에서 이해가 갔다. 단편소설이면 적어도 분량이 1만6000자쯤 된다. 이 정도만 돼도 줄거리 어딘가에서 오류가 생길 수 있다. ‘AI가 쓴 소설이 문학인가’ 같은 질문은 현실에서 크게 쓸모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AI는 이미 빠르게 쓰이고 있다. 모두는 아니지만, 누군가는 하고 있다.
이런 사례를 OX퀴즈처럼 간단히 정의할 수는 없다. 이건 답이 아니라 질문을 부르는 이야기들이다. AI로 서사의 허점을 메운 소설은 문학적 가치가 떨어질까? 실망하는 독자도 있을까? AI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화술을 습득해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다면 그건 정당한 걸까? 상대방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모두 정답이 없으나 하나는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AI를 온갖 분야에서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용하는 자의 기획 의도와 방향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게 나타날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지금은 이렇게 정리하지만, A와 이야기를 나눈 날에는 조금 놀랐다. 나도 모르게 AI의 소스가 되다니. AI 박찬용의 원본(?) 입장에서 물어보았다. 그분과 연애가 잘됐느냐고. 그의 답이 인상적이었다. 연애까지는 갔는데 헤어졌다고 했다. 만나 보니 다 맞지는 않았다고 한다. AI가 해줄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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