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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9월 2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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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대학에서는 학기말이면 학교 벽면이 온통 학생들의 과목별 성적표 게시로 뒤덮인 지 오래다. 교수 회의실 게시판에는 신임 교수를 채용할 때 채점 교수별로 응모자의 점수를 도표로 정리해서 공개한다. 법원의 판례명은 ‘원고 대 피고’로 공시되고 판결문에는 당사자의 실명(實名)이 그대로 노출된다. 그만큼 공적 정보에 관한 한 개인정보 보호보다는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정이 딴판이다. 학생 성적은 개인정보로 취급해 당사자에게만 알린다. 교수채용 평가도 인사에 관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각급 법원의 판결문에 원고와 피고의 실명이 공개됐다. 그런데 사건 당사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의가 제기된 이후 모든 판결문에서 원고와 피고는 익명으로 처리된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적 정보의 공개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을 넘었다. 정보공개제도는 주권자인 국민의 국정에 관한 알 권리를 충족하고 행정비밀주의를 극복해 행정의 투명성도 제고한다. 그렇다고 모든 공적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공개법 제9조에서는 국가기밀, 개인정보 같은 비공개 대상 정보를 명시한다. 하지만 비공개 대상 정보를 지나치게 확대하면 정보공개법은 정보비공개법으로 전락한다.
한편 헌법상 명시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도 보호돼야 한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과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정보의 수집 관리 처리는 허술하기 그지없다. 정유회사에 등록된 10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심지어 개인정보는 상거래의 대상으로 악용된다.
정보공개와 정보보호라는 두 법익은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려운 갈등과 긴장관계를 형성한다. 그만큼 그 경계 획정도 어렵다. 특히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교육 관련 정보는 모든 국민의 눈과 귀를 쏠리게 한다. 이에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과는 별도로 특별법으로 ‘교육관련 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해 학교정보공시제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현실적 적용 과정에서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첫째, 교육정보시스템(NEIS)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다만 학생의 신상에 관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 입력한다는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둘째, 수험생들은 자신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획득한 원점수를 정확하게 알 권리가 있다. 원자료 공개가 학교와 지역 간 학력차를 드러냄으로써 고교평준화 정책에 어긋난다는 교육당국의 설명은 주객이 전도돼 있다. 셋째, 교사의 교원단체 가입 현황도 공개돼야 한다. 학부모와 학생은 교사의 공공적 사회 활동에 대해 알아야 할 정당한 당사자이다. 교육당국과 학교에서는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을 교육 수요자에게만 비밀로 해서는 안 된다. 이제 열린사회에 순응하는 과감한 정보의 공개와 공시를 통해 교육 현장의 자율성과 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정보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 보호할 가치가 있는 공익, 개인정보 보호 사이에서 조화롭게 이뤄져야 한다. 시대적 흐름은 공적 정보의 국민적 공유를 위한 정보공개의 확대로 나아간다. 더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해서는 안 된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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