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두원]정치력 발휘하면 ‘경제’ 풀 수 있다

  • 입력 2008년 5월 28일 03시 01분


곧 취임 100일을 맞는 이명박 정부의 각종 경제정책이 제 자리를 못 찾고 표류하고 있는 느낌이다. 취임 초 의기양양하게 전봇대를 뽑았던 현 정부는 그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문제에 막혀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이 대통령 정부가 이와 같은 난관에 빠진 이유는 어디 있을까.

우선 이 정부가 제시한 정책의 방향과 내용은 전체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규제완화와 민영화 등을 통해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 기능을 활성화하겠다는 방향은 이미 두 차례의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또한 한미 FTA 등을 통한 개방정책은 지난번 참여정부가 수립했던 정책이므로 사실상 여야 간의 공감대가 이미 형성된 정책이다. 그러므로 정책의 내용이 잘못돼서 이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결국 현 정부의 정치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정책을 홍보하고, 야당 등과 협의하며, 각종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드러난 대표적인 것이 한미 FTA 비준문제이지만 그 밖에도 수많은 경제현안이 결국 정치력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 규제완화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규제완화의 핵심은 현재 과도하게 묶여 있는 수도권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다.

규제완화-민영화 방향 옳아

그러나 아직도 많은 지방자치단체는 수도권 규제가 풀릴 경우 상대적으로 지방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와 같은 불안감을 잠재우고 수도권과 지방의 발전이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는 비전을 심어주는 것은 결국 정치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부동산정책도 그렇다. 과거 야당시절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비판하며 종합부동산세 및 양도세 등을 조정하겠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역시 소수의 부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가 위화감이 조성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그 시행이 미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심각하게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책들을 조속히 시행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용적률 및 고도제한 규제 등도 완화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논리적으로 타당하며 또한 경제적으로 필요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위화감 조성이 두려워 시행을 못한다면 이 역시 결국 정치적 설득력이 부족해 생긴 결과다.

이와 같이 중요한 경제정책들이 정치논리의 포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과거 집권세력의 반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한미 FTA의 경우 참여정부 시절 추진했던 정책이며, 현재 비준에 동의하려 들지 않는 많은 야당의원도 당시에는 지지했던 정책이다. 이런 정책을 과학적 근거가 모호한 광우병 때문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인터넷에 나도는 터무니없는 괴담과 점차 확산되는 불법시위를 보고 있자면, 현재 한미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배후에는 반미(反美)에 기초한 반체제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야당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의 정치적 스타일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당선 직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포용하는 데 실패했으며, 대표적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공무원사회를 적대시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모든 현안을 본인이 직접 챙기면서 주변 사람들을 새벽부터 주말까지 독려하며 강행군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포용심과 설득력을 지닌 정치인이라기보다는, 1970년대 건설현장을 진두지휘하던 이명박 사장의 모습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스타일은 개인적으로 큰 장점이 될 수 있으나, 모든 사람을 포용해야 하는 정치인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는 하기 힘들 것이다.

포용심 갖고 국민-야당 설득을

그러나 아직 실망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서 밝혔듯이 현 정부의 전반적인 정책방향은 여전히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규제완화와 민영화 등 굵직굵직한 정책들이 그 시행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와 같은 정책들 역시 경제논리를 떠나서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아무쪼록 이 대통령은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 얽힌 실타래를 풀듯이 하나씩 인내심을 가지고 야당과 국민을 설득해 나가기 바란다.

이두원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leedw10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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