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소영]용돈보다 일자리를 다오

  • 입력 2008년 4월 29일 02시 58분


새 정부는 ‘잘사는 나라’ 간판을 걸고 출범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노인이 행복하게 잘사는 실천안으로 노인 일자리 8만 개 창출계획을 발표했다. 참여정부의 노인 일자리 정책과 비교해 ‘사회참여형 일자리’는 전년 수준으로 11만7000개를 유지하지만, ‘시장참여형 일자리’를 올해 2만 개 만들어 시장중심적 접근책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노인들 채용박람회 몰려

그동안 참여정부에서 노인 일자리 수십만 개를 만들었다고 자랑하던 일등공신이 바로 ‘사회참여형 일자리’다. 비교적 건강한 노인이 육체적 부담 없이 경로당 강사, 동료 노인과의 건전한 여가 활동, 문화재 지킴이, 환경관리 등에 참여했다. 활동경비 명목으로 월 20만∼30만 원 정도씩 지급했다. 이 사업은 비교적 반응이 좋았고, 노인복지관과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활발하게 전파됐다. 사업의 성공 요인은 ‘과로하지 않는 가벼운 일자리’라는 점과 자긍심을 충족시킨다는 점 때문이다.

‘돈보다 자긍심이 더욱 중요하다’는 취지에 입각한 것이다. 노인이 적당히 사회활동을 하면서 노인 문제인 고독과 사회 격리를 방지하는 한편 이웃 노인과 사회와의 긍정적 관계를 형성해 그 보람으로 노인의 자긍심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노인들은 과연 돈이 없어도 되는 것일까? 경제활동과 실질적 일자리를 원하지만 우리 정부는 너무 쉽게 적은 돈으로 실적만 수십만 개를 만들어 치적을 대신하는 것은 아닐까. 노인 취업박람회에 수만 명의 노인이 몰려드는 것은 무엇인가. 수만 명의 노인은 진정 눈 뜨면 즐겁게 나와 참여하는 일자리를 원한다.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거나 동네 뒷골목에서 뒹구는 신문뭉치와 종이다발을 놓고 노인들끼리 서로 먼저 발견해 임자라고 싸우고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고는 한다. 허리가 다 꼬부라져서 혼자 몸을 지탱하는 것도 어려워 보이는데 리어카에 짐을 잔뜩 싣고 땀을 흘리는 노인은 그나마 행복하다. 오늘의 일거리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하철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서 굵은 주름이 잡힌 손으로 반찬거리를 조금 놓고 앉아 있는 노인도 행복하다. 길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독거노인의 30%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결식을 하며, 한국노인의 거의 절반이 한 달에 30만 원 정도로 생활하고 있고, 용돈은 한 달에 10만 원 정도다. 이들이 자긍심을 충족할 정도의 경제활동만 있으면 되는 것은 진정 아닐 것이다.

2008년 환갑을 맞이하는 노인들은 착잡하다. 이들은 1997년 50세로 외환위기 때 명퇴해 벌써 10년 이상 사회경제적 노인으로 살아 온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는 집은 있어도 현금 수입이 없거나 창업이나 기타 일자리 마련에 돈을 다 날린 사람도 있다. 과거 노인들과 달리 건강과 교육, 활동경험이 있으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노인들이다. 이들은 자긍심이 아니라 아직도 사회경제활동이 필요하다.

제2인생 재취업 지원 제도화를

이제는 우리도 준노령기 시대부터 노후준비를 체계적으로 마련하도록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다. 사회가 중고등학생에게 대학 진입을 안내하듯이 중년계층이 노년기로 진입하는 것에 대한 대비체계를 제공해야 한다. 준비 없이 허둥지둥 살다 보니 노인이 됐다는 넋두리가 나오지 않도록 노인에게도 준비 과정을 안내해야 한다.

선진국처럼 직장에 다닐 때부터 은퇴 후 수입과 건강, 장애 방지, 또 다른 제2의 인생 준비를 위한 신기술 교육 등에 대해 배워야 한다. 또 본인이 평생 다져온 기능이나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재취업과 경제사회활동 연장을 제도적으로 제공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앞으로 노인복지정책은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노후 준비’가 될 수 있도록 노후 일자리를 마련하는 복지제도가 되어야 한다.

조소영 강남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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