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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7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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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돈이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된 삼성 측은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산(遺産)’이라고 설명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법적으로는 큰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남의 이름으로 주식을 사놓는 과정에서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정도가 논란이 될 것 같다.
삼성의 해명은 옛날 기사 두 건을 상기시킨다. 하나는 ‘이병철 씨 상속세 150억 신고’(본보 1988년 5월 18일자 6면) 기사다. 이 회장이 세상을 뜬 지 6개월 후 이건희 회장이 대표상속인으로서 상속재산 237억 원에 대한 상속세 150억 원을 국세청에 신고했다는 내용이다.
세간에선 국내 최고 부자의 상속 재산은 얼마나 될지, 후손들은 세금을 얼마나 내고 얼마의 재산을 물려받을지 관심이 많을 때였다. 삼성 측은 당시 국세청을 담당하고 있던 필자에게 “재산 추적팀을 가동해가며 국내는 물론 일본 재산까지 모두 찾아 신고했다”고 설명했다. 여론까지 감안해 당시로선 국내 최고액을 신고했다는 거였다. 이어 국세청은 7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신고 누락 재산 36억 원을 찾아내 26억 원의 세금을 더 매겼다고 발표했다(본보 1988년 12월 28일자 6면).
성실 신고와 철저 조사로 마무리됐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차명 유산이 나왔다고 한다. 국세청이 발표 때 “경기 용인의 잣나무, 서울 이태원 주택의 정원석 등이 신고 누락됐다”고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이제는 더 나올 것이 없다고 판단해 조사를 종결했다”고 큰소리친 게 무색하다. 2조 원으로 불어난 차명 유산이 애초에 얼마였는지는 몰라도 국세청 조사도 별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최근의 해명처럼 삼성이 차명 유산의 존재를 뒤늦게 알았다면 어떻게 처리했어야 옳았을까. 당시 상속재산 신고 누락분에 대한 세금 징수시효는 5년(1999년 이후엔 최대 15년으로 변경)이었다. 1992년 말 이후 발표하면 세금 추징이나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해석도 있고 추징세액이 1조 원에 이를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삼성은 특검팀의 수사가 일부 성과를 낸 뒤에야 차명 유산을 말했다. 자발적으로 사전에 털어놓을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사람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부친 윌리엄 게이츠 시니어가 2003년 뉴욕에서 미국 정부의 상속세 폐지 법안에 반대하며 한 강연은 흥미로웠다. 그는 전국을 돌며 “미국에서 상속세는 재산이 많은 전 국민의 2%에게만 부과되는데 이것이 공평하지 않다면서 없애려 하면 안 된다”고 외쳤고 상속세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키가 큰 그는 강연장에선 더 커 보였다.
1000명 중 7명이 상속세를 내는 한국에서 이 회장이 특검 조사를 받은 4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상속세 폐지론을 꺼냈다. 손 회장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상속 주식 등을 팔면 경영권 유지마저 위협받는다”고 했지만 문제 제기 시점을 잘못 잡은 느낌이다. 또 같은 내용이라도 대기업 오너보다는 중소사업자들이 말하는 게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