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상대]건축코리아 발목 잡는 최저가 낙찰제

  • 입력 2008년 1월 23일 02시 51분


하늘을 향한 높이의 경쟁이 치열하다. 아랍에미리트의 ‘버즈 두바이’ 공사현장에서는 157층(580m) 바닥 공사를 마치고 앞으로도 230m(63빌딩 높이)를 더 올리겠다니 인간의 도전과 욕망에는 끝이 없다.

세계 최고층의 높이에서 느껴지는 감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구 400만 명인 이 작은 나라에서는 석유의 힘으로 온갖 실험을 하고 있다.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수도 아부다비에 재현해 건축문화를 통한 새로운 관광자원의 창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스페인 빌바오에서 연출된 바가 있다. 폐광촌이었던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통해 일약 세계적 관광명소가 돼 매년 10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잘 설계된 건축물 하나의 위력이다.

전 세계에서 100층 이상의 프로젝트를 제일 많이 계획하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일 것이다. 놀라운 국력이지만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이다. 국내에 지어질 100층 이상 건물의 건축설계와 구조설계는 외국 회사의 몫이고 그들의 잔치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다만 시공만 맡을 뿐이다. 말하자면 우리 건설사의 시공 능력은 세계적이지만 건축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건축설계와 구조설계는 여전히 외국의 신세를 지고 있다.

미국은 이미 1920년대 말에 102층을 설계했다. 대만도 현재 세계 최고층 건물인 ‘타이베이 101’의 건축설계를 스스로 했다. 다만 지진과 태풍 영향의 어려운 구조설계 문제를 외국 회사와 협력했다.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인 우리가 100층 이상의 모든 건축설계를 외국에 의존한다는 점은 불명예스럽다.

대형 건축설계가 외국으로 가는 이유는 기술 사대주의와 설계 기술력의 격차 때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건축문화 발전을 저해하고 기술력 축적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는 ‘최저가 낙찰제’라고 생각한다. 경제논리로는 최저가 낙찰제가 맞을지 모르지만 세상은 그렇게 이상적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국가의 대형 프로젝트도 창의성과 기술력에 의한 수주 경쟁보다는 덤핑에 의해 결정되는 게 현실이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주경기장, 수영장 등을 새로 건설 중이다. 국영 CCTV도 본사 건물을 짓고 있다. 모두 세계적인 명작이요, 중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될 훌륭한 작품들이다. 우리처럼 최저가 낙찰제로 경쟁을 붙였으면 그런 기념비적인 건물이 나올 수 있을까.

장기적으로 건축문화는 국가적 문화유산이고, 관광자원이다. 새 정부는 장기적으로 이런 관점에서 건축행정이나 문화에 접근했으면 한다.

김상대 고려대 교수 건축사회환경공학과 대한건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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