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이야기]히딩크는 알고 있었다, ‘아킬레스건’을

  • 입력 2007년 10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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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리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다. 그런데 왜 잉글랜드는 세계 최고의 대표팀을 꾸리지 못하는가. 질문 속에 답이 있다.

세계 최고의 리그가 외국의 뛰어난 선수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대신 프리미어리그에서 성장해야 할 토종 선수들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잉글랜드대표팀은 죽을 쑤고 있다. 유로 2008(200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본선 진출도 물 건너간 듯하다.

잉글랜드가 어떤 나라인가. 세계 축구의 아이콘인 웨인 루니, 스티븐 제라드, 마이클 오언, 조 콜, 존 테리, 리오 퍼디낸드의 나라가 아닌가. 이런 대단한 선수들이 러시아대표팀에 지기까지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잉글랜드대표팀을 현재보다는 훨씬 잘 이끌 한 사람이 생각난다. 거스 히딩크.

그는 네덜란드, 한국, 호주대표팀을 그 수준에선 최고의 팀으로 성장시켰다. 이제는 러시아에서 똑같이 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히딩크 감독이 현재 모스크바가 아니라 런던에 있을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잉글랜드 축구협회엔 2006년 독일 월드컵 직전 그를 차기 감독으로 영입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러시아로 갔고 이제 모스크바에서 지략적인 전술로 잉글랜드를 무너뜨렸다.

히딩크 감독은 잉글랜드대표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는 잉글랜드의 수비 라인이 모두 중앙 수비수로만 이뤄져 왼쪽 수비가 약점임을 간파했다. 러시아는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반면 잉글랜드대표팀 스티브 매클래런 감독의 전술은 소심하기 짝이 없다. 미들즈브러 감독 시절의 그를 기억한다면 놀랄 일도 아니다. 그때 미들즈브러는 어찌나 무득점 무승부 경기가 많았던지 경기를 보다 잠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매클래런은 결코 영감을 주는 인물이 아니다. 승리를 향해 돌진하는 히딩크 같은 사람과는 정반대다. 매클라렌은 오히려 두려움을 전염시켜 소속 팀에서 맹수였던 선수들이 대표팀에선 순한 양이 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루니와 대표팀의 루니는 다른 선수다. 맨체스터에서 루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이언 긱스, 카를로스 테베스, 루이 사아, 폴 스콜스 같은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 덕분에 자유로웠다. 대표팀에서 루니는 너무 많은 것을 혼자 하려 한다. 러시아전에서 환상적인 골을 넣고도 파울로 상대에 페널티킥을 선사해 동점을 허용했다. 잉글랜드에 필요했던 것은 냉정한 머리와 침착함이었지만 선수들은 우왕좌왕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리버풀과 에버턴 전에서 의미심장한 사건이 터졌다. 이 경기에서 스페인 출신의 라파엘 베니테스 리버풀 감독이 제라드 대신 프리미어리그에서 뛴 적도 없는 20세의 브라질 출신 신참 루카스 레이바에게 주장 완장을 채운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베니테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머리를 쓰는 선수가 필요할 때 감정을 앞세운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라드가 혼자 너무 많이 뛰고 패스는 너무 적게 했다는 의미다.

제라드가 주장인 잉글랜드대표팀이 모스크바에서 했던 것이 바로 그렇다. 머리 대신 감정이 지배했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은 베니테스 감독과 마찬가지로 그 점을 간파했다.

랍 휴스 잉글랜드 칼럼니스트 ROBHU800@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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