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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월 17일 20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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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전격적으로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한 고건 전 국무총리는 2004년 5월 대통령권한대행에서 물러난 뒤 2년 가까이 대선예비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면서 줄곧 ‘양 꼭짓점’의 가운데 서려고 애썼다. 처신으로는 ‘관료와 정치인’, 지역으로는 ‘서울과 호남’, 이념적으론 ‘보수와 진보’의 중간을 지향했다. ‘탈(脫)정치’를 명분으로 여권 및 민주당과 일정 거리를 두며 ‘국민후보’를 꿈꾸었고, 연고가 있는 호남에서 40% 넘는 지지를 받았지만 ‘서울 출생’임을 강조했다. 산업화세력의 공신(功臣)임을 강조하면서도 진보개혁세력의 입맛도 맞추려 했다. 이 때문에 자문그룹에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다수 포함됐다. 내건 구호도 ‘중도(中道)개혁실용주의’였다. ‘토털패션’이라 할 만했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한가운데서 양쪽을 끌어당기겠다는 계산이었지만 그러기에는 자기 동력(動力)이 부족했다.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노무현식 정치’에 대한 안티테제로 잠시 떠올랐을 뿐, ‘양김(兩金)’ 같은 카리스마도, 지역기반도, 자기브랜드도 없는 현실을 인식 못한 탓이다. 그 결과가 정체성 혼란과 지지율 하락이었다.
한 참모는 “정치적 사안을 보고해도 예상되는 부작용을 붙이도록 요구했다. 추진력이 생길 수 없었다”며 관료적 의사 결정 스타일을 지적했다. ‘민주당 정도는 언제든 수중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지지율이 떨어지자 측근처럼 굴던 의원들마저 민주당 탈당 요청을 거부했다. 결정적으로는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그를 따르면 잃어버린 10년이 끝나겠구나’ 하는 믿음을 창출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낙마(落馬)는 ‘중도의 비극’이자 자기브랜드 없이 떠 업힌 ‘무(無)동력 정치’의 한계를 보여 준 것이다.
그런데도 고 전 총리가 퇴장하자 정치판은 ‘이삭줍기’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인다. 불과 얼마 전까지 ‘고건 대망론’을 외치던 한 민주당의원은 한나라당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범(汎)여권 신당 참여 가능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념이고 명분이고 상관없이 오직 ‘대선게임’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태도다.
열린우리당 주변에서는 ‘당원 생활을 하루도 한 적이 없는’ 대학 총장, 중견기업 경영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의 영입설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책임정치가 실종된, 영락없는 붕당(朋黨)의 모습 그대로다. 한 중진의원은 “여권에 유력한 대항마가 사라진 만큼 야당의 빅3가 독자 출마해도 이길 수 있다는 유혹을 더 느끼지 않겠느냐”며 야당의 분열 가능성을 은근히 기대했다.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의장 등 그동안 “신당 창당에 백의종군하라”는 압력을 거세게 받았던 예비 후보군도 반사이익에 희망을 걸며 캠프 추스르기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여권은 국민의 진정한 소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한 어떤 인기도 ‘지나가는 바람’임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국민은 달을 가리키는 데 정치판은 그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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