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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6일 2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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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으로서의 아파트는 산업혁명과 이민의 부산물이었다. 19세기 영국 스코틀랜드 산업도시에 몰려든 공장 근로자들을 위해 아파트가 처음 생겼다. 미국에서는 1840년대 이민자가 뉴욕에 물밀듯이 몰려들면서 등장한 것이 아파트였다. 국내에는 1932년 일본인이 5층짜리 아파트를 처음 지은 뒤 30년 만에 서울 마포아파트가 대를 이었다.
1980년대 부동산 붐은 중·후반에 일시적인 미분양 사태도 있었지만 아파트 인기를 증폭시켰다. 투기도 원인이었지만 산업화와 도시 인구 집중, 핵가족화와 개인주의 생활방식의 확산 때문이었다. 전국의 주택 가운데 아파트 비율은 지난해 53%로 절반이 넘어 가히 아파트 전성시대가 됐다.
2002년 대선 당시 집은 선거 판도의 중요한 변수였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토론회에서 ‘옥탑방을 아느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가 혼이 났다. 수십만 표가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는 귀족 이미지를 바꾸려고 집을 몇 번이나 옮겼지만 소용없었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이 후보와 대비되는 서민 이미지의 덕을 톡톡히 봤다.
이 후보가 당선되면 집값이 오르고, 노 후보가 당선되면 폭락할 것이라고 양당은 주장했다. 한나라당 대변인은 투표 이틀 전에 “노 후보가 집권하면 서울 이전으로 상권 붕괴와 부동산 폭락의 대란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과는 정반대다. 서민들의 지지로 당선된 노 대통령이 잘못된 정책으로 집값을 폭등시켜 서민들이 살맛을 잃게 만들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사글셋방이나 전셋집에서 시작해 작지만 내 집을 마련하거나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소박한 꿈이다. 주부들이 결혼 후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첫 아이를 낳았을 때이고, 그 다음이 내 집을 마련했을 때라는 조사 결과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내 집 마련에 걸리는 기간은 갈수록 길어지고 서울에서 월급을 저축해서 32평 아파트를 사려면 27년 이상 걸린다는 시대가 됐다. 서민들이 수도권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돼 버렸다.
집 없는 서러움을 겪는 사람들은 내년 대선에서 누구를 찍을까. 지금은 노 대통령과 정부 및 집권당에 비난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대란은 서민들의 불만을 증폭시켜 빈부 갈등과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정책 실패도 문제지만 돈 있는 사람들 때문에 집값이 더 오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화살은 다른 곳을 겨냥할 수도 있다. 부자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도덕적 의무)가 왜 절실한지 알아야 한다.
지난 주말 전남 나들이를 했다. 그 덕에 순천의 민속촌 ‘낙안읍성’ 초가집 벽에 이런 명심보감 글귀가 걸려 있는 줄도 알게 됐다. “심안모옥온(心安茅屋穩·마음이 평안하면 초가집도 안온하고) 성정채갱향(性定菜羹香·성품이 안정돼 있으면 나물국도 향기롭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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