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기자의 히트&런]“승짱, 너를 믿는다”

  • 입력 2006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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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고,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했던가.

보비 밸런타인 일본 롯데 감독과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감독. 이승엽은 일본에서 이 두 감독의 밑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롯데에서 30홈런을 친 2005년 말. 롯데는 이승엽에게 잔류를 요청했다. 연봉도 2억 엔(약 16억 원)에서 조금 오른 2억 5000만 엔(약 20억 원)을 제시했다.

그 때 이승엽이 요구한 것은 돈보다는 ‘수비 보장’이었다. 밸런타인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한 포지션에 두 명 이상의 선수를 교대로 기용하는 것) 아래에서는 안정적인 경기 출장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밸런타인 감독은 이를 거부했고, 이승엽은 요미우리로 팀을 옮겼다. 당시 이승엽은 롯데 잔류 의사를 밝혔다가 요미우리로 이적했는데,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배신자’ 소리를 듣기도 했다.

2006년 이승엽은 그 어느 해보다 편하게 야구를 했다. 개막전부터 이승엽에게 4번 타자의 중책을 맡긴 하라 감독은 시즌 내내 이승엽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잘할 때건 못할 때건 무한 신뢰를 보냈다.

이승엽이 잠시 부진하던 5월의 어느 날. 하라 감독은 이승엽을 따로 불러 “요미우리의 4번 타자답게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다녀라. 네가 풀이 죽으면 선수단 전체가 무너진다”고 했다.

일본뿐 아니라 어떤 나라 야구에서도 하라 감독처럼 행동하긴 쉽지 않다. ‘국민타자’로 군림했던 삼성에서조차 이승엽은 감독으로부터 종종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승엽은 올해 경기에 나갈 때면 한 번의 예외도 없이 4번 타자로 출장했다. 이는 전통을 중시하는 요미우리의 분위기와 이승엽의 표현대로 하면 “인간으로, 감독으로 최고”라는 하라 감독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메이저리그 진출과 요미우리 잔류를 두고 장고를 거듭하던 이승엽은 5일 역대 일본 프로야구 최고 대우(4년간 30억 엔 추정·약 240억 원)에 재계약했다. 등번호 변경(33번→25번)과 한국인 코치 연수 등의 조건도 받아들여졌다. 그 배경에는 이승엽의 잔류를 누구보다 바랐던 하라 감독이 있었다고 한다.

이승엽은 계약서에 사인한 뒤 “잔류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하라 감독이다”라고 말했다. 하라 감독이 내미는 손을 냉정하게 뿌리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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